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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탄희의 공감(公感)] 양승태와 김명수, 조국과 윤석열의 시대

등록 2019-10-20 18:07수정 2019-10-20 19:30

이탄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전 판사

내 질문은 딱 하나다. ‘대전’이라고도 부르는 이 상황이 모두 지나간 미래의 어느 시점이라고 치자. 뿌옇던 흙먼지가 충분히 가라앉았다. 그때 우리 사회엔 어떤 메시지가 남아 있을까.

조금 더 좁혀보자. 내 관심사는 특히 공직사회다. 586세대 다음 타자로 수많은 젊은 공직자들이 대기 중이다. 이번 사태를 숨죽이며 지켜봤을 그들의 의식 속에 어떤 메시지가 남았는가.

‘스펙 품앗이 하지 말아야 한다’ ‘공직자는 사모펀드를 하면 안 된다’ ‘일가친척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이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친구들이 많다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검찰에 찍히면 죽는다’ ‘내가 죄를 짓지 않았어도 소용없다’ ‘재판까지 가기 전에 언론 단계에서 모두 끝난다’ ‘개혁적인 발언을 많이 하면 안 된다’, 이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친구들이 많다면 이건 좀 곤란하다.

내 주변엔 법률가들이 많다. 판사, 검사, 변호사, 학자들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듯한 이들의 의식 속에 곤란한 메시지가 각인되어 가는 게 보인다. 안타깝고 우려된다.

이들의 생각에는 나름 근거가 있다. 검찰조직은 가까이서 볼수록 더 무섭다. 우리나라엔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범죄 의혹이 제기된 고위 공직자들이 즐비하다. 웬만한 의혹에 대해서는 고소고발장이 접수돼 있다. 그러나 검찰조직은 모든 사건을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이른바 ‘선별수사’다.

사건 배당에서부터 차별을 한다. 직접수사부서에 배당된 사건은 신속한 수사가, 형사부에 배당된 사건은 지연된 수사가 예정돼 있다. 직접수사부서 검사에겐 사건 배당을 줄인다. 수뇌부가 승인한 사건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형사부 검사에겐 송치사건을 쏟아붓는다. 사막에서 바늘 찾듯이 재주 좋으면 어디 한번 해보라는 뜻이다.

인력 운용도 차별을 한다. ‘내부 파견’이라는 수단으로 장기판의 말처럼 검사들을 움직인다. 수뇌부가 승인한 사건에는 수사 인력을 몰아준다. 과도하고 무리한 수사도 인력이 풍성하니 가능한 일이다. 인력을 뺏긴 부서에선 곡소리가 난다. 최근의 과로사와 자살사고는 모두 형사부에서 발생했다. 선별수사는 ‘차별수사’인 셈이다.

차별수사는 공정하지 않다. 차별수사 덕분에 어떤 국회의원은 임기가 끝나도록 수사를 받지 않다가 의혹이 잊힐 수도 있고, 어떤 공직자는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철저한 수사를 받을 수 있다. 수사가 일단 시작되고 나면 법원의 통제도 별 쓸모가 없다.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은 몇년째 99%다. 판사들 사이에서도 통과의례라는 말이 나온다. 이러니 판사들 스스로도 두려운 것이다.

검사들도 마찬가지다. 요직에 갈 일이 없는 평범한 검사들 얘기다. 차별수사의 칼은 ‘검사’의 칼이 아니다. ‘검찰 수뇌부’의 칼이다. 수사와 기소를 하지 않는 우리나라 대검찰청에는 90명이 넘는 검사들이 배치되어 있다. 한때 100명이 넘었던 법무부 진출 검사들, 현재 50명이 넘는 다른 국가기관 파견 검사들도 모두 대검의 영향력 아래 있다. 현직 검사인 이상 검찰조직으로 돌아갈 운명이다. 인사권과 배당권에서 자유로운 검사가 없다. 그 힘을 아는 평범한 검사들은 검찰 수뇌부의 칼이 두렵다.

법원의 무책임함이 검찰 수뇌부의 영향력에 일조하기도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8년 1월 사법농단 특별조사단장직에 법원행정처장을 임명했다. 행정처를 행정처가 조사하게 한 것이다. 외부 위원 중심의 조사단을 꾸려 스스로 자정해야 한다는 젊은 판사들의 의견을 무시했다. 특별조사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조사조차 못했다. 덕분에 검찰은 사안을 처음부터 다시 수사하게 되었다. 2018년 여름, 적시에 특수부가 축소되지 못한 배경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듬해 검찰이 비위사실 통보를 한 법관 다수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검찰의 조사가 미비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법관의 징계조사와 직업윤리 수호는 검찰이 아니라 대법원장의 직무다. 일을 검찰에 떠넘기는 듯한 대법원장의 태도가 ‘검찰공화국’을 연장시킨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 수뇌부의 힘을 분산하는 것이다. 그래야 차별수사도 줄고 검찰공화국이라는 말도 사라진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검찰의 권한 분산에 동의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노파심에 한마디 덧붙인다. 양 전 대법원장도 취임사에서 ‘재판의 독립’과 ‘투명하게 드러나는 재판 과정’을 강조했다. 하지만 양승태 행정처는 ‘불투명하게 안 드러나는 방법’으로 ‘재판 개입’을 했다. 검찰총장이 그와는 다른 역사적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 향후 대검찰청의 행보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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