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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디플레이션 우려 대신에 / 장민

등록 2019-10-31 18:14수정 2019-11-01 02:05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9월 -0.4%를 기록한데다 당분간 낮은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면서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디플레이션이란 통상적으로 물가 수준의 하락이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지칭한다. 따라서 경제가 디플레이션 국면에 들어가게 되면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이 전반적으로 내려가는 가운데 디플레이션 심리 확산으로 임금이 낮아지고 이로 인해 수요가 감소하면서 물가가 더욱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다행히 우리나라가 당장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최근의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은 기본적으로 지난해 크게 상승했던 농산물 가격의 기저효과가 작용하는데다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는 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편제 대상 품목 중 가격 하락 품목 비중이 평균 28% 수준에서 지난 9월 34% 수준으로 올라선 것도 대부분 농산물 가격 하락에 기인한 것이었다. 개인서비스나 석유류 외 공업제품 등 60%의 품목에서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가격 하락이 제한된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상교육 확대,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등 정부정책도 물가 하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공급 쪽 요인과 정책적 요인 등 일시적 요인으로 물가가 하락했다는 것은 언제든 물가가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의 물가 하락이 자산 가격 하락을 동반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디플레이션 위험이 크지 않음을 시사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부분의 디플레이션에는 자산 가격도 같이 하락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물가와 자산 가격 하락이 동시에 나타날 경우 가격 하락의 품목별 확산 속도가 빠르고 성장률 둔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것도 자산버블 붕괴로 인한 대규모 수요충격에 의해 디플레이션이 발생한 뒤 10년 넘게 임금상승률과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경제활동을 크게 위축시킨 데 있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진입하고 있다는 주장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계속 안심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저출산과 함께 급격히 진행되는 고령화, 가계부채 누적 등 구조적 문제가 지속되면서 성장잠재력이 약화되면 디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또한 국내 물가의 움직임에 대한 글로벌 요인의 영향력 증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와 기술발전이 진전될수록 수출 주도형인 우리 경제의 특성상 글로벌 가치사슬에 더욱 깊게 연계됨에 따라, 공업제품을 중심으로 글로벌 요인이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온라인거래 확산, 공유경제 활성화 등은 국내 경기 여건과 관계없이 추세적으로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디플레이션 우려가 빈번하게 나타나면 경제주체들의 기대심리를 통해 경제활동에 악영향을 주게 되고 결국에는 실제로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디플레이션 우려 자체를 차단해야 하는 이유이다.

경제주체들이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면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당분간 가계와 기업의 심리와 내수회복을 지원하고 경제의 활력이 제고되도록 확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중장기 계획하에 고령화와 저출산, 주택시장과 가계부채,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나가는 정책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경제에 활력이 돌려면 경제주체들이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벗어나 우리 경제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정부의 일관되고 신뢰성 있는 정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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