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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언론 불신’을 먹고 자라는 가짜뉴스

등록 2019-11-05 17:51수정 2019-11-06 02:05

한선의 미디어전망대
민주주의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서서히 허물어지기도 한다. 정치 마비, 언론 불신, 경제 불안이 지속되고 선동적 포퓰리스트가 자기 유리한 대로 진실을 기만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민주주의는 얼마든지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 이후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에 관한 고민이 깊어지던 차에 근래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책 두 권을 읽어보았다. 미치코 가쿠타니가 지은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의 공동 저작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가 그것이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정치 시스템과 제도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면 가쿠타니는 명시적이지는 않아도 민주주의가 보내는 위기 징후의 핵심으로 미디어에 주목하고 있다. 가짜뉴스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아이러니한 시대 상황은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 그리고 백인 노동자 계급의 몰락이 자양분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보기라도 한 듯 우리 상황에도 꼭 들어맞는 그 진단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렇다. 유튜브나 포털 등에서 뉴스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저널리즘 변화가 가짜뉴스의 물적 토대를 제공한다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언론 불신은 가짜뉴스가 기생하는 숙주다. 서로를 적대시하며 신념과 감정이 진실을 선취하고,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역정보가 난무하는 탈진실 시대는 언론 불신을 먹고 자라난다는 것이다.

그의 관찰대로 언론 불신을 먹이 삼아 번성하는 가짜뉴스와, 그것이 정통(레거시) 언론을 근본부터 형질 변환시키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도 관련 여론조사가 하나 더 추가됐다. <미디어오늘>과 리서치뷰가 10월27~30일에 전국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절반가량이 유튜브를 뉴스 채널로 인식하고 있었다. 진영과 연령대에 상관없이 모두 유튜브를 오락과 재미를 위한 콘텐츠를 넘어 시사 뉴스 채널, 다시 말해 언론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이 시사 유튜브 채널에 있으므로 유튜브를 언론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심지어 확증편향을 우려하는 전문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응답자들은 유튜브를 ‘공정한’ 언론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유튜브가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를 주도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시작됐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유튜브가 주도적으로 공론을 이끄는 세상이 된다면 대중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지 않는 정보는 간단히 거짓말이나 가짜뉴스로 치부해버릴 것이다. 판단이 서지 않으면 고소·고발을 통해 법으로 진위를 가리면 된다(고 믿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뿌리부터 위협받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가짜뉴스 퇴치를 위해 팩트 체크를 꼼꼼히 실시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처방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 무책임하게 불안을 조성하고, 법이 전면에 나서 우리 삶을 진두지휘하며, 갈등과 편가르기가 일상이 된 사회에 포용과 연대는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좋은 사회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실타래는 레거시 언론의 변화와 개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가죽을 벗기는 심정으로 언론 스스로 나서야 한다. 더 늦기 전에.

한선 ㅣ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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