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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민편집인의 눈] 수사에서 재판으로 / 홍성수

등록 2019-11-21 18:14수정 2019-11-22 02:36

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범죄 혐의가 포착된다. 언론의 보도 경쟁이 시작된다. 혐의와 무관해 보이는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실시간 보도된다. 수사기관이 흘리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보들까지 가세한다. 대부분 피의자에게 불리한 것들이다. 피의자의 억울한 사연은 거의 보도되지 않고 방어권은 무력화된다.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서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절정에 도달하고, 마무리는 공소장의 몫이다. 범죄혐의가 일목요연하게 공개되고 언론은 “~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공소장의 내용을 ‘사실’로 확인해준다.

검찰과 언론의 적폐 관행으로 지적되었던 문제들의 대략적인 스토리다. 막상 재판이 시작되면 뜨거웠던 열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식는다. 재판 과정을 건조하게 보도하는 단발성 기사가 종종 보이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은 드물다. 시민들에게 몇몇 중요 사건을 제시하고 사건 내용 중 기억나는 것들을 얘기해 보라고 하면 아마 대부분 수사 과정에서 보도되었던 것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중 상당수는 재판 과정에서 사실무근으로 확인된 것일 텐데 말이다. 좀 심하게 얘기하자면, 한국에서 재판은 수사로 밝혀진 것들을 확인하는 요식절차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현장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최근 몇년간 공판중심주의가 정착되면서 이미 수사에서 재판으로 무게중심이 이행되었다. 하지만 보도 관행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국민적 관심사도 여전히 수사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수사 과정에 대한 취재 열기가 검찰의 권력 남용을 통제하는 기능을 했던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고, 이 또한 소홀히 넘길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수사 관련 보도의 이익과 손해를 면밀히 검토해서 대안을 모색해야 할 터인데, 이른바 ‘조국 사태’를 경유하며 다소 급진적인 변화로 귀결되었다. 검찰의 형사사건 공개 금지 방침이 천명된 것이다.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되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공소 제기 전까지는 형사사건 내용 일체를 공개할 수 없고, 공개소환과 형사사건 브리핑도 사라진다. 수사 관계자들은 기자들과 개별 접촉할 수 없다. 민간위원 과반수가 포함된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예외적으로 공개된다고 하니, 실제로 공개되는 사건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조치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피의자에게 불리한 피의사실을 흘려서 만신창이로 만들곤 했던 기존의 관행은 확실히 근절될 것이다. 언론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워진 밀행 수사의 폐해가 걱정되긴 하지만, 후속 조치로 예정된 다양한 검찰 통제 방안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이제 ‘수사’에서 ‘재판’으로 초점이 옮겨간다는 점이다. 시행 과정의 여러 변수를 고려해도, 이 대세를 거스르긴 어려울 것이다.

언론 보도의 초점도 자연스레 수사에서 재판으로 옮겨갈 것이다. 재판은 수사처럼 밀실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제3자인 법관이 주재하고 방청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사와 피고인 쪽의 숨 막히는 설전이 이어지고, 증언과 증거들이 쏟아져 나와 진실을 다툰다. 재판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이 ‘알아야 할’ 정보고 공익을 위해 보도할 가치가 있는 이벤트다. 공판 때마다 벌어지는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입체적으로 분석해 보도하는 것은 수사 과정에 대한 보도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재판은 언론에도 중대한 도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위기를 말하지만,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시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한 덕에, 수사기관이 흘리던 피의사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예전에 비해 현격히 줄었다. 공판이 시작되면 검찰은 그동안 축적해 놓았던 증거자료들을 쏟아낼 것이다. 피고인 측 역시 그동안 말할 수 없었던 사연들과 증거들을 내밀며 맹렬히 맞설 것이다. 최종 판단은 이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내려도 늦지 않는다. 언론의 진짜 실력도 이 재판을 어떻게 보도하는가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방송사, 신문사 등 전통 매체들은 인사청문회나 수사 과정에 화력을 집중하곤 했지만, 이번에는 재판 보도에 언론사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형사사건 보도에 대한 새로운 규칙과 관행을 누가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경쟁해야 한다. 진짜 본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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