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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슈논쟁] 더 시급한 생계급여 지원부터 확대해야 / 구인회

등록 2019-11-25 18:55수정 2019-11-26 10:57

구인회 ㅣ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 달 전 국제 비영리기구인 옥스팸이 주최하는 국제 세미나가 있었다. 아시아 여러 나라 학자들이 1990년대 이후 각국의 사회정책을 평가하고 성공적인 경험을 담은 책, <평등해지기: 아시아의 불평등 해소를 위한 공공정책>의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한국의 여러 복지제도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정책으로 ‘기초연금’을 꼽았다.

기초연금은 2008년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가,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기초연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기초연금제도로 하여 현재 우리나라 노인 중 소득이 낮은 70%에게 다달이 최고 30만원의 생계비를 지원한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은 여전히 극심한 수준이지만, 기초연금 덕택에 지난 10년간 상당히 줄어들었다. 근래 노인 자살률이 많이 줄어든 데에도 기초연금의 역할이 크다.

이런 기초연금의 혜택에서 배제된 어려운 노인층이 있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주장이 그것이다. 노인 다수를 지원하는 기초연금의 혜택을 국민기초생활보장제의 대상이 되는 최빈층 노인들만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는 기초연금도 소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 액수만큼 기초생활보장 급여액을 삭감한다. 그렇다 보니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기초생활보장 최대 급여액인 50여만원에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깎인 돈으로 생활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사정이 이렇게 어려우니 수급 노인에게 기초연금 중 10만원이라도 남겨 주자는 ‘기초연금 부가급여 지급’ 주장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줬다 뺏는 기초연금’ 주장은 심각한 노인 빈곤이라는 ‘빙산’을 보지 않고 그 ‘일각’만 신경 쓰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은 제 기능을 못하는 노후소득보장제도 탓에 지속되고 있다. 기초연금은 그 액수가 적어 급여를 받는 노인 중 절반 이상이 빈곤하다. 이들 빈곤 노인들에게는 최후의 안전망으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전체 노인의 7%에 그쳐 사각지대가 크다. 또 기초생활수급 급여도 액수가 적다 보니 기초생활수급자의 처지도 극빈 상태와 별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급여 수준을 개선하는 것이 노인 빈곤에 대한 주된 처방이다.

기초생활보장제 사각지대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어온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일이 시급하다. 기초생활보장법에는 당사자가 빈곤하더라도 일촌 이내의 친족이 있으면 지원에서 제외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있다. 왜 이 기준이 문제가 될까? 능력 있는 부모, 자식이라면 어려운 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미풍양속으로 비치지만, 실상에서는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부모, 자식 허락을 받아오라는 명령이 되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아들, 딸과 살아온 이혼모는 생계지원을 받으려면 이혼한 남편과 친정 부모에게서 금융조사 동의서를 받아오라는 공무원의 말에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일가족은 지난 19일 숨진 채로 발견됐다. 살길이 막막해진 빈곤층에게 형편도 어렵고 관계도 소원해진 가족에게 동의서를 받는 것은 죽음보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니었을까?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들의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초생활보장 급여액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대다수 노인이 속하는 1~2인 가구의 기초생활보장 급여액은 너무 적다. 현재 기초생활보장 급여액은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액수를 정한 뒤, 이를 바탕으로 다른 가구 규모의 급여액 수준을 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규모 가구의 급여액이 매우 낮게 책정된다. 국제적 기준을 따라 제도를 바꾼다면 금방이라도 1인 가구의 급여액은 10만원 정도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소득이 조금 높다는 이유로 수급에서 제외되던 많은 빈곤 노인이 새로 수급자가 될 수 있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주장은 이렇게 중요한 개선 과제에 주목하기보다는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의 일부라도 지급하자는 다소 제한적인 문제로 주의를 돌린다. 더욱이 이 주장은 빈곤층 지원 제도의 건강한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빈곤층 지원 제도는 형평성 기준에 맞게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급여를 지원함으로써 사회의 공감을 얻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줬다 뺏는 기초연금’의 문제를 개선하자는 주장은 기초연금을 받는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에 대한 지원만 우선한다. 다른 사회보장 급여를 받아 기초생활보장 수급에 불이익을 당하는 노인들에게도 지원을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가령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도 연금만큼 기초생활보장 수급액이 깎이기는 마찬가지이니, 이들에게도 급여 일부를 추가로 지급하게 해야 한다. 또 산재보험금이나 실업수당을 받는 빈곤층에게도 급여 일부분을 지급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확대하다 보면, 많은 사회보장급여 대상자에게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추가 급여를 줘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이런 상황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검토할 만하다. 하지만 빈곤층에 대한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진 당장의 기초생활보장제도 현실을 직시한다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급여를 적정 수준으로 개선하는 제도 개선을 먼저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제도 개선이 이뤄지는 날, ‘줬다 뺏는 기초연금’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해보자.

[이슈논쟁] ‘줬다 뺏는 기초연금’ 논란

<편집자주> 지난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결산소위원회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상의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을 동시에 받는 노인에게 부가급여 형태로 내년부터 월 10만원을 추가로 지원하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65살 이상 노인 중 하위 70%에 속하는 526만명이 기초연금을 받고 있다. 그런데 약 40만명의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기초연금 30만원을 받더라도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이 삭감당하므로 사실상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정부는 공공부조의 기본 원리인 ‘보충성’을 앞세워 기초연금을 받으면 생계급여에서 그만큼 공제해야 한다는 뜻을 지켜왔으나, 결과적으로 더 가난한 노인들이 기초연금에서 배제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것이 ‘줬다 뺏는 기초연금’ 논란의 핵심이다. 최근 국회에서 심의된 예산안은 일종의 차선책으로 나온 중재안인데, 앞으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본회의 문턱까지 넘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에도 예결위 문턱을 넘지 못한 전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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