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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인도-태평양’에서 인도가 말하는 것

등록 2019-12-03 08:49수정 2019-12-03 12:48

인도-태평양의 틀을 이용해 양자관계를 강화하는 인도의 행보는 한국에 시사적이다. 인-태의 중국 봉쇄 성격에 매몰되지 않고 그 틀을 이용해 동남아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한다면 인-태는 도전에서 기회로 바뀔 수 있다.

인도 임팔은 일본이 태평양전쟁 때 최대의 지상전 패배를 겪은 곳이다. 일본 남방군은 이 임팔전투(1944년 3~6월)에서 전사자 1만4천여명 등 5만5천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재기불능에 빠지면서 동남아 전역에서 전세가 기울었다. 일본군을 격퇴한 영국군의 주력은 인도 병사들이었다. 충칭에 은거해 있던 중국 국민당 정부는 연합군의 임팔전투 승리로 본격적으로 가동된 미국의 군수물자를 받는 ‘버마 루트’로 궁지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임팔은 2차대전 때 반일본 미-영-인-중 연합을 상징한다. 이런 임팔을 이달 중 인도를 찾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문을 검토한다는 소식이다. 아베의 임팔 방문 검토는 ‘인도-태평양’ 전략 표방 이후 강화되는 양국 관계개선의 상징이다. 미국이 주도하려는 ‘인-태’ 전략이 새롭고 강화된 중국 포위망 성격을 가졌음을 고려하면, 임팔은 이제 반중국 연대의 상징으로 바뀔 수 있다.

인도-태평양은 말 그대로 인도와 태평양(세력)의 연대이다. 기존의 태평양 세력들인 미국 및 아시아·태평양의 그 동맹국만으로 반중 봉쇄가 벅차지자, 인도라는 새로운 세력과 연대하려 한다. 인-태의 이른바 ‘쿼드’(4자, quad)인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 사이에서도 중국 봉쇄에 대한 온도 차는 여전히 크다. 하지만 인도를 제외한 세 나라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관계임을 고려하면 결국 이 전략의 관건은 인도이다. 인도를 인-태의 확실한 쿼드 일원으로 자리매김한 뒤 동남아 국가들을 포섭하는 것이 미국이 의도하는 이 전략의 가동과 성공 여부를 가른다.

인도 포섭의 전도사가 일본이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반대하는 인도 내의 ‘자유인도임시정부’ 세력이 일본에 가담해 임팔전투에서 싸우기도 했다. 도쿄전범재판에서 인도의 라다 비노드 팔 판사가 일본 전범 전원에게 무죄 의견을 내서 일본 우파들의 영웅이 되기도 했다. 인도는 미국이 주도한 태평양전쟁 강화조약인 샌프란시스코조약이 일본의 주권을 제한한다며 참가하지 않고, 일본과 별개의 조약을 맺었다.

‘인-태’도 구르프리트 쿠라나 인도 해군 장교가 2007년 한 군사안보 저널에 기고한 ‘해로안보: 인도-일본의 협력 전망’에서 처음 제기된 용어이다. 그해 아베 총리가 인도를 방문해 의회 연설에서 인-태 개념을 제창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17년 6월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동성명에서 인-태 용어를 사용해 미국에서도 국가 차원의 전략용어로 공식화됐다.

이렇게 본다면 인도는 인-태에서 전제적 존재이다. 하지만 인도와 미국이 생각하는 인-태는 아직 간극이 크다. 인도가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일본과 연 ‘2+2 회의’인 지난 30일의 뉴델리 양국 외무·국방장관 회의 공동성명은 미국과 일본이 주장하는 ‘자유롭고 개방된’이라는 인-태의 수식어에 ‘포용적’이라는 말이 추가됐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인도의 의도이다. 또 인도 정부 관계자는 <마이니치신문>에 “일본과 미국처럼 (인도와 일본이) 동맹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미·일은 인도가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인-태에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인도는 중국의 진출에 대처하려고 미·일과 협력을 원하나, ‘자유주의 국제질서’ 같은 미국식 질서의 확산은 관심사항이 아니라고 미국의 지정학자 월터 러셀 미드가 인도 정부 관계자의 말을 <월스트리트 저널>에 전했다. 인-태 전략의 상징이 된 미-일-인의 말라바르 합동해상훈련에서 인도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참여를 계속 거절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인-태는 “제한된 회원국 클럽”에 의해 운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후 인도가 보여준 전형적인 비동맹 정책의 연장이다.

인도는 인-태 전략의 일원이 되기보다는, 미·일이 연연하는 그 틀을 이용해 양자관계의 진전이라는 과실을 따먹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동방정책인 ‘룩 이스트’ 정책을 업그레이드한 ‘액트 이스트’ 정책을 실현하는 틀을 인-태로 보고 있다. 인도아대륙과 믈라카해협 사이의 인도양에서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를 우선시한다.

인-태의 틀을 이용해 양자관계를 강화하는 인도의 행보는 한국에도 시사적이다. 인-태의 주무대는 동남아 국가와 그 연안이다. 한국의 신남방정책도 인-태의 중국 봉쇄 성격에 매몰되지 않고 그 틀을 이용해 동남아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한다면 인-태는 도전에서 기회로 바뀔 수 있다.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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