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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제때, 잘 싸우는 국회로 / 서복경

등록 2019-12-04 18:08수정 2019-12-05 09:39

서복경 ㅣ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회 모습이 참 심란하다. 이번 국회 마지막 정기회는 자유한국당이 무더기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바람에 더 특별해졌다. “이번 국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었던 최악의 국회가 될 수도 있다.” 19대 마지막 정기회가 종료된 직후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이 내놓은 말이다. 사실 역대 국회는 매번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게 사실이라면 5천만 전체에게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매번 나빠지기만 하는 국회에 5천만의 생계와 생명, 생활을 맡겨야 하니 말이다. ‘더 나빠졌다’고 느끼는 건 당대 시민들의 자유인 만큼 논할 대상이 아니나, 그 근거와 이유에 대해서는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20대 국회가 일 안 하고 놀았다’는 비판은 얼마나 근거가 있을까? 정기회 외에 의무적으로 개회하게 되어 있는 2, 4, 6, 8월 임시회조차 여니 마니 논란을 벌인 터라, ‘제 할 일은 안 하고 싸움만 한다’는 느낌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런데 국회가 일한 양을 기준으로 본다면, 특별히 더 일을 안 한 건 아니다. 그 반대다. 20대 국회는 문 연 이후 2019년 정기회 개회 전까지 6350건의 법안을 처리했는데 같은 기간 19대 국회보다 947건을 더 처리해 118%의 생산성 향상을 이뤄냈다.

일부 언론에서는 법안 처리율을 기준으로 19대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하는데, 그 기준은 잘못된 것이다. 법안 처리율은 접수 법률안 대비 처리 법률안을 말하는데, 접수 법률안 자체가 19대보다 크게 늘었기 때문에 더 많이 처리했다 하더라도 처리율은 낮아질 수 있다. 또 이런 비판은 국회를 더 낫게 만드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지금 시민들이 느끼는 불만은 국회가 ‘더 많은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때 더 중요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법안들이 제때 국회 문턱을 못 넘는 이유를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할 일이지, 일의 중요도를 따지지 않고 계속 ‘더 많은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건 대책이 될 수 없다.

시민들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법안들은 ‘유치원 3법’ ‘공수처법’처럼 대개 원내 정당들이 갈등하는 법안이다. ‘유치원 3법’은 70~80%의 시민이 찬성하지만 자유한국당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이름만 ‘패스트트랙’인 국회법 절차에 따라 수백일 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금 이 법안은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에 걸려 있다. ‘필리버스터’ 제도는 소수 의견도 시민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알릴 기회를 가져야 하고 시민들도 들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한다. 문제는 이걸 왜 수백일을 기다려서 지금 해야 하는가다. 자유한국당은 그때도 반대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면 굳이 수백일을 기다리지 않고 그때 들었으면 되었을 일이다.

또 원내 정당들 간에 합의가 잘 안 되는 법안들일수록 정당들은 각자 입장을 내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시민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 법안심사 과정에서는 어찌 되었든 서로 합의되는 것만 심의 일정에 올리게 되어 있다. 그러니 갈등적인 법안들은 빛을 보지 못한 채 시간만 기다리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민들이 국회더러 ‘맨날 싸움만 한다’고 비판하지만, 그 속내는 싸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시민들도 안다. 각기 다른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사이좋기만 한 게 더 나쁜 국회라는 것을. 문제는 정작 시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법안을 두고 싸우는 게 아니라 엉뚱한 문제로 싸우는 것이고, 자기들이 만든 규칙도 안 지키면서 싸우는 것이고, 충분히 절차를 거쳤는데도 승복하지 않으며 계속 싸우는 것이다.

21대 국회는 ‘사이좋게 일만 많이 하는’ 국회가 아니라 ‘시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제때 하고, 사이가 좀 나쁘더라도 규칙을 지켜가며 잘 싸우는 국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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