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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동춘 칼럼] 그때는 너무 늦다

등록 2019-12-17 17:43수정 2019-12-18 09:23

김동춘 ㅣ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제가 그동안 이웃의 아픔을 보지 않아서 용균이가 죽었어요.” “내 가정만 지키면 된다 생각했어요. 못 지켰어요. 그게 결국은 내 이웃을 안 봐서 그런 거였어요.” “처음에는 개인 개인의 잘못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자꾸 확인해 들어가니까 공공기관이고 나라에서 구조적으로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게 드러났고. 여기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도 이렇게 진행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자신이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동료의 해고에 무관심했던, 김용균의 어머니가 아들 사망 1주기를 맞아 피를 토하듯이 절규한다. 24살의 생때같은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 그는 그 후 1년 동안 자신이 몰랐던 세상, 특히 수많은 일터가 남의 자식들도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되어 있다는 사실과 정부나 정치권은 그것을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너무나 믿기 어려운 사실을 알게 된 다음, ‘남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입법운동을 하고 재단을 만들었다.

어디 이게 처음인가? 택시 운전사를 하면서 딸 황유미가 삼성에 들어갔다고 좋아하던 아버지 황상기씨는 23살의 젊디젊은 딸이 백혈병에 걸려서 죽고 나서야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내 딸이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면서 ‘유미 같은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도록’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보장’을 외치고 ‘삼성에 노조를 만들자’고 데모대에 합류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바로 아들의 죽음을 통해 세상에 눈을 뜨고, 세상의 모든 전태일들을 위해 평생을 거리에서 산 사람이 아니었던가? 이들 모두는 자식의 죽음이라는 처절한 경험을 통해 세상의 구조를 알게 되었지만, 너무 늦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비록 자기 자식은 죽었지만 남의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뛰어다녔다.

수백, 수천만의 부모들이 어린 나이의 자식들을 일터에 보내지 않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일터가 어떤 곳인지 알고, 권리가 무엇인지 알고, 남의 자식과 내 자식이 함께 살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야 내 자식도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배울 수 있다면? 그러나 보통의 한국인들은 먹고살기 바빠 뉴스 볼 시간도 없어서 황유미와 김용균이 누군지도, 왜 죽었는지도 아직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들 상당수는 노동자들의 시위에 대해 욕을 하거나 자신이 돈이 없고 공부를 제대로 못 시켜서 자식이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한탄하면서 자식을 일터로 보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3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망할 것이다.

비극적 일을 겪지 않고서도 세상의 움직임을 알고, 그것에 대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바로 학교나 사회의 교육, 권리의식과 공감능력을 길러주는 시민교육이다. 민주주의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고, 시민교육이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와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배우는 것이다. 혹독한 체험을 해야 세상의 구조를 알게 되는 나라는 교육 자체가 없는 나라다. 그런 나라의 청년들은 자신의 목숨을 좌우하는 일터의 조건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전쟁터에 투입되는 총알받이 전사가 된다.

교육이란 학생의 욕망을 적절히 통제하면서 미래를 준비할 소양과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학교는 경험이 없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살아갈 세상의 구조를 가르치는 곳이다. 그런데 한국의 교육은 대입 성공을 위해 돌진하는 전사를 훈련시키고, 세상의 작동, 즉 정치와 정당, 정책, 기업, 노사관계, 복지, 기후위기 등 정작 중요한 것은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적어도 80퍼센트 이상의 학생들은 경영자가 아니라 피고용자로 살아가는 한국에서 시민·노동자로서의 권리 교육은 없고, 경제 교육과 소비자 교육이 압도한다.

설사 경영자가 될 사람이라도 인권, 노동권, 언론, 법, 정치를 알아야 좋은 경영자가 된다. 내 자식은 위험한 일터에 갈 가능성도 없고 억울한 일을 당할 가능성이 없으니 나는 일터의 현실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비상식적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를 받고 언론의 편파보도와 정치권의 무책임에 한을 품고 자살까지 한 기업인들은 뭔가? 큰 상처를 입고서야 너무 늦게 세상의 진면목을 알게 되는 사람은 이제 그만 나와야 한다.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부딪칠 일을 가르쳐야, 자신의 안전도 보장받고, 자신과 관련된 일에 직접 참여하고, 사회를 책임져 주는 정치가를 선출할 안목을 갖는다.

어떻게 34살 여성이 핀란드 총리가 될 수 있었나? 그들은 청소년 시절부터 청소년 의회에 참여했고, 20살 전후부터 사회운동과 정치를 시작하면서 세상의 구조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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