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ㅣ 기획재정부 제1차관
“오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당연한 내일은 없다.” “자네 사회적 가치가 뭔지 아나?” 요즘 미디어 광고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유명 대기업들의 광고 카피다.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대기업들이 지속가능 경영과 사회적 가치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그들의 핵심 경영철학으로 내세우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이미 시작됐음을 느낀다. 사회적 가치란 무엇일까? 한 사회의 경험과 경제·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지만, 핵심은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환경적 영향까지 균형 있게 고려한 가치이고, 개인의 삶의 질은 사회의 질과 미래에 대한 고려 없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강조이다. 이런 취지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지속가능 발전’ ‘포용적 성장’ 등과 그 궤를 같이한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국제적 논의는 역사적 연원이 깊다. 국내총생산(GDP) 지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지표 운동, 범지구적 환경규범에서 시작된 지속가능 발전 논의 등은 경제·사회·환경의 통합적 발전 개념으로 확대돼 왔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는 영원히 번성할 것 같았던 시장경제에 큰 충격과 혼란을 주었고 반성적 성찰을 낳았다. 좌우를 넘어선 담론이 본격화되고 구체화됐다. 유엔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선정했고,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조직이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지침인 아이에스오 26000을 제시했다. 유럽연합(EU)과 영국 정부 등은 사회책임조달을 위한 법·지침을 제정했다.
한국은 전후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 경제개발에 전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깨끗한 공기, 과정의 공정성, 인권 등을 논하는 것은 사치로 여겨졌다. 지난해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진입했다. 소득이 증가한 만큼 우리는 더 행복해졌을까? 국제 삶의 질 지수에서 한국인의 행복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사회문제들은 젠더와 세대를 넘나들며 그 양상이 복잡해지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이슈가 삶의 질을 위협하고 있다. 승자독식의 경쟁구조는 유치원생까지 학원 스트레스로 내몰고, ‘혼족’과 같이 외로움과 소외가 일상이 됐다. 봄이 되면 꽃이 기다려지기보다 미세먼지가 먼저 걱정되고, 호의를 베푸는 낯선 이에게 감사함보다는 경계심이 앞선다. 이렇게 팍팍한 오늘의 삶이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사회적 가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같이’할 때 실현된다.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은 정부와 시장이라는 고전적 이분법은 오히려 양극화와 공동체 해체를 심화시켰다고 통찰한다. 그가 강조하는 시민과 공동체의 역량과 복원이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기업도 단순 생산·판매자가 아닌 소비자, 지역 등과 좋은 사회적 관계를 엮어 가는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개인, 기업, 정부, 공동체 누구나 사회적 가치 실현의 주인이다.
정부도 사회적 가치 실현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선 공공부문의 조직·재정·평가 등 전반적 운영원리에 사회적 가치가 보다 잘 고려되도록 할 것이다. 또한 기업·시민 등이 스스로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것이다. 좋은 사례는 격려, 확산하고 정부·시민·기업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유연한 거버넌스도 마련할 것이다.
변화의 시작은 문제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일회용품 줄이기, 주민회의 참여, 스쿨존 속도 준수 등 작은 실천이 모여 사회가 변화한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가치가 또 다른 스트레스로 여겨져 본질을 해치지 않을까 염려되고, 이념적 논쟁으로 변질되는 것도 우려스럽다. 긴 시간과 인내도 필요할 것이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 무엇보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만강혈성, 즉 가슴속 가득 찬 진심과 정성을 강조하고 싶다. 바로 지금 ‘같이 가는 사회,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내가 오늘 실천할 것들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