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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동춘 칼럼] ‘인재영입’으로 승부하는 한국 정치

등록 2020-01-14 18:10수정 2020-01-15 09:29

김동춘 ㅣ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선거철이 돌아왔는가 보다. 집권 민주당이 매일 영입 후보를 발표한다. 1호 영입인사로 40살의 여성 장애인이란 수식의 최혜영 교수를 소개한 이후, 모친에게 각막기증을 한 청년 원종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 김병주, 고검장 출신의 소병철 등을 줄줄이 발표했고, 경력단절을 딛고 성공한 여성 변호사 홍정민 대표도 영입하였다.

2016년 20대 총선의 민주당 영입 1호는 표창원 의원이었고, 정치평론가 이철희, 청년기업인 김병관, 삼성전자 상무 출신 양향자 등을 영입했다. 19대 총선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백혜련 검사, 신경민 <문화방송>(MBC) 앵커, 시민단체 출신 김기식 등을 영입했다.

1996년 김대중 대통령의 학생회장 출신 청년들의 대거 ‘수혈’과 그 이전인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의 민중당 인사 영입은 이후 한국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1988년 총선부터 시작된 여야 정당의 비정치권 인사 수혈과 매번 40%에 가까운 국회의원 물갈이를 통해 한국 정치와 정당정치는 제대로 혁신되었는가?

19대 국회에서 큰 구실을 했던 청년 정치가 김광진, 장하나는 지금 의회에 있지 않다. 지난 총선의 대표적 영입인사인 표창원 의원은 “좀비에 물린 것 같다”며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철희 의원도 “부끄럽고 창피하다”며 의회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부산의 젊은 정치가 김세연 의원도 야당인 자유한국당 해체와 의원 총사퇴를 요구하면서 출마를 포기했다.

사실 여야 정당 지도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경력단절 여성을 영입한다고 해서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장애인을 영입한다고 해서 장애인 정책이 바뀌지 않으며, 벤처기업가를 영입한다고 해서 기존 재벌체제가 혁신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결국 선거용 이벤트에 불과한 이 쇼를 30년 동안 계속하는 정당의 선거 정치야말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적폐이자 국민을 바보로 아는 눈가림용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정치는 전문직이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어떤 직업보다도 높은 수준의 열정과 식견, 비전, 애국심, 친화력, 조직력, 자금동원력 등 종합적 능력을 겸비한 사람만이 할 수 있고, 그런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훈련되지 않은 초선 정치가들은 오랫동안 한 분야의 일을 해온 관료들의 가장 손쉬운 상대가 되기 쉽다. 역설적이게도 물갈이가 많이 되면 될수록, 정치가 혁신되기보다는 관료들의 권력과 입지가 점점 더 커진다.

34살의 핀란드 여성 총리 산나 마린, 39살에 프랑스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이 있지 않으냐고 물을지 모르나 판매원 출신 핀란드 여성 총리는 이미 20살에 바닥 시민운동과 정당 활동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의 여러 사안을 파악할 전문성을 갖추었고, 마크롱은 이미 20대부터 경제부처 공무원, 기업 경력을 거쳐 36살에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을 지냈다. 의회정치는 현장 대중의 고통과 눈물을 접해보지 않았거나, 국가의 재정과 예산부처의 강고한 논리의 벽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이들이 좌충우돌하는 데가 아니다.

물론 여야 정치권이 선거 때만 되면 정책보다는 새 인물로 승리하려는 것은 ‘판갈이’와 정책경쟁이 어려운 한국 정치구조에 기인할 것이다. 사회의 특정 세력이나 계층의 요구를 반영하는 계급정치가 거의 무망하며, 새 정당이 등장할 수 있는 관문을 의도적으로 틀어막아 놓았으니, 독점 이익을 누리는 거대 여야로서는 인물 정치, 이미지 정치로 승부를 걸자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그래서 이런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을 것이다.

정당이 청년 정치가를 기르려는 노력은 시작도 하지 않고, 정책 싱크탱크 하나 만드는 일에 투자하지 않으니 정당의 전문성과 정책역량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선출권력에 여전히 기대하는 국민들을 계속 좌절시키게 되고, 정치권의 문제 해결 능력의 부재는 국민들을 언제나 거리에서 찬바람 맞거나 저 높은 굴뚝으로 올라가게 만들고, 매일 3명의 노동자가 일하러 나갔다가 저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매일 37명이, 나아가 매해 70명의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언제까지 나무를 심을 생각을 하기보다 열매 따 먹을 생각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 입시 대비 실력을 기르기보다 커닝 페이퍼 만들어서 시험에 통과할 생각만 할 것인가? 이번에 선거연령도 18살로 하향되고, 선거법 개정으로 정당정치의 기반도 약간이나마 확대되었으니 이제 ‘영입’으로 승부를 거는 정치는 그만둘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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