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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마힌드라의 노림수 / 홍대선

등록 2020-01-21 18:10수정 2020-01-22 09:50

홍대선 ㅣ 산업팀 선임기자

쌍용자동차 대주주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파완 고엔카 사장이 지난주 국책은행인 케이디비(KDB)산업은행과 정부 관계자들을 두루 만났다. 그의 방한 일정 중 주목을 끌었던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이동걸 산은 회장과의 면담이고, 다른 하나는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과의 회동이다. 산은은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이다. 지난해 시설자금으로 1900억원을 빌려줬고 이 중 900억원의 만기가 오는 7월 돌아온다. 마힌드라의 관심사는 당연히 만기 연장과 추가 대출일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위원장인 일자리위원회의 이 부위원장은 왜 만났을까? 누적된 적자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쌍용차의 최대 주주와 대통령 직속 일자리기구 책임자의 접촉을 둘러싸고 여러 추측성 얘기가 돈다. 현재 3개의 생산라인 중 ‘조립2라인’은 지난해 말 가동이 멈췄다. 생산 물량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라인을 중국 업체에 임대해 이른바 ‘반값 노동자’로 전기차를 위탁 생산하는 방안이 회사 안팎에서 논의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나 ‘군산형 일자리’를 연상케 하는 이른바 ‘평택형 일자리’가 거론된다.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도모하는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은 애초에 마힌드라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상생형 지역 일자리는 지자체가 ‘노·사·민·정 협약’을 바탕으로 적정 임금과 투자·고용 규모 등을 설정해 신청하면, 일자리위원회가 심의·선정해 각종 우대 혜택을 주는 제도다. 지금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이고 일자리위원회는 그 주무 기구다. 정부는 쌍용차에도 이런 모델을 적용해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마힌드라가 이런 정부의 관심사를 들어주고 정부가 지원을 해주는 것이라면 이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이다. 외국계 자본이 일자리를 볼모로 공적자금 지원 요청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그 일자리를 명분으로 ‘밀당’ 하는 전례를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엔카 사장은 이번 방한에서 쌍용차의 ‘2023년 흑자 전환’과 마힌드라의 ‘2300억원 직접투자’를 언급했다. 하지만 이것도 산은 지원을 전제로 한 조건부 투자·계획이다. 마힌드라는 2011년 지분 72.85%를 5500억원에 인수한 뒤 두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1300억원을 투자한 게 전부다. 쌍용차가 이 지경이 되도록 대주주로서 책임 있는 노력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힌드라가 주고받기식 거래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정부로서는 재고해야 한다. 차제에 국민 혈세가 투입된 외국계 기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정부가 다 하고 있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쌍용차는 올해 정년퇴직자 52명의 결원 자리를 메우기 위해 다른 부서에서 대체 인력을 모집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 복직 예정자 46명을 투입하면 되는데, 그걸 굳이 사내 공모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빈자리가 있는데도 복직 예정자들을 현장에 배치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앞으로 진행될 정부와의 협상을 봐가며 복직 예정자의 부서 배치를 검토하겠다는 의도는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자동차 산업은 생산·고용 유발 효과와 전후방 경제 파급력이 크다. 지금 국내 차 산업은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연간 차 생산량은 10년 만에 400만대 선이 무너졌고, 일자리도 위태로워진 게 현실이다. 고용 문제는 총선을 앞둔 정부로선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다. 마힌드라는 선거를 앞둔 시기, 정부의 가장 예민한 곳을 간파하고 들어왔다. 지방선거를 앞둔 2018년 2월 군산공장 폐쇄와 철수 카드로 정부를 압박했던 지엠(GM·제너럴모터스)의 행태와 묘하게 겹친다. 마힌드라의 노림수에 정부는 부디 덜컥수를 두지 않기 바란다. 쌍용차는 살려야 하지만, 부실의 원인과 책임, 정상화 계획을 면밀하게 따진 뒤 대주주의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게 순서다. 마힌드라는 정부와의 협상에서 10년을 기다려온 복직 대기자들을 카드로 활용할 속셈이 아니라면 당장 복직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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