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연 | 사회정책팀장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정교사 그거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요.”
드라마 <블랙독>의 기간제 교사 고하늘(서현진)의 대사엔 분노가 묻어났다. 1년도 아니고 5개월짜리 ‘쪼개기’ 계약을 감수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나서, 수업시간에 ‘기간제 선생님들은 행정실로 오라’는 방송이 버젓이 흘러나오는 걸 듣고 난 뒤였다. 무심결에 방송을 내보낸 정교사는 “누가 시험에 붙지 말라 그랬나, 억울하면 붙으면 될 거 아니냐”며 선을 긋는다.
지난 몇년간 우리 사회에서 기간제 교사 차별 문제가 부각된 두개의 기억이 아직 또렷하다. 한번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다. 제자들을 구조하다 숨진 단원고 교사가 ‘기간제’라는 이유로 사망보험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후 기간제 교사에 대한 복지 처우가 일부 개선됐지만, 김초원·이지혜 교사에게 소급적용되지는 않았다. 차별을 없애달라는 유족들의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또 다른 기억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기간제 교사를 제외한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다. “청년 선호 일자리인 정규 교원 채용”에서 “사회적 형평성”을 맞추려면 ‘임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취지의 정부 발표를 놓고, 이내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기간제 교원은 정교사 휴직에 따른 빈자리를 채우고 특정 교과를 한시적으로 담당한다는 목적으로 1997년 도입됐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상시적으로 필요한 자리에도 기간제 교사들로 채워지면서 정규직 전환에 대한 요구도 점차 높아져왔다.
지금, ‘고하늘 샘’들의 사정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사립고등학교 교사 ㄱ은 올해로 기간제 11년차다. 언제부턴가 ㄱ은 해마다 학교를 옮겨서 일하고 있다. ‘자리’가 있는데도 학교들은 기존에 일하던 기간제보다는 신규 교사를 뽑고 싶어 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3년차 정도일 때 담임 경력도 없었는데 (정교사들이 기피하는) 생활기록부 작성 관련 업무를 떠맡은 적이 있다. ㄱ 교사는 “새로운 기간제 교사를 선호하는 것은 기피 업무를 맡기더라도 군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당장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기간제 교사들은 12~2월에 뜨는 채용 공고를 보면서 움직인다. 기간제 교사 채용이라고 해서 경쟁률이 낮은 건 아니다. 100 대 1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많다. 기간제 교사를 거쳐 지난해 정교사가 된 ㄴ은 “기간제로 일할 때는 12월이 되면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의 미래가 불투명한 시절이다 보니, 학교에서 장기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할 중요 과제를 논의할 때는 자연스레 배제되곤 했다”고 털어놨다.
기간제 교사의 고용 안정성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 않는 동안 이들의 비중은 급속도로 늘었다. 사립고를 기준으로 2000년만 해도 4.1%에 그치던 기간제 교사 비중은 2018년 23.2%로 높아졌다. ‘학교 알리미’를 통해 본 지난해 비정규직 교원 비중도 무려 25%를 웃돈다. 정년퇴직자가 나와서 정교사 자리가 생기더라도 학교들이 그 인원을 보강하는 대신 기간제 채용을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해법은 뭘까. 정교사로 가는 문을 갈수록 좁혀 놓고서 ‘시험’을 보고 오라는 말만 되뇌어선 안 된다. 일부에선 사립학교에서 임의로 교사를 뽑는 것이 아니라 시·도교육청 단위로 그 선발 범위 내에서 채용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거론되기도 한다. 쪼개기 계약 등 눈에 보이는 차별부터 해소해나가자는 목소리도 높다. 기간제 교사들은 무엇보다 20년 이상 제도가 지속되면서 이를 직업으로 삼는 일단의 직업군이 형성될 정도라는 데 주목해달라고 호소한다.
원인을 파악하고 해법을 찾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로 간다. 교육의 질과 교사의 고용 안정성이 동떨어진 문제가 아닌 탓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한주에 4시간씩만 강의를 하고 가는 시간제 교원도 적잖이 보인다. “사회과 샘 한분은 매주 월요일에 두시간씩 몰아서 연강을 하고 바로 다른 학교로 가시더라고요. 질문을 하고 싶어도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했어요.” 서울의 한 사립학교 학생 ㄷ의 이야기는 곱씹어볼 대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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