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솔 ㅣ 계명대학교 법학과 3년
지방대가 죽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선호 현상, 일자리 부족 등 지방이라서 가질 수밖에 없는 페널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나 인구절벽 문제가 치명적이다. 지난해 11월 인구자연증가율은 -0.4%를 기록했다. 주민등록인구는 1992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고, 2018년 출산율은 0.9명대까지 추락했다. 인구 자연 감소 상황에서 학령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2020학년도부터 지방 전문대를 시작으로 사상 초유의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다. 모두 익히 알고 있는 문제인 만큼, 어쩌면 해결책도 간단할지 모른다. 모범답안부터 내보자. 인구가 감소한다면 정원을 줄이면 된다. 인기가 없는 순수학문 분야부터 도태시킨다. ‘융합’이라는 이름의 유령을 내세워 난생처음 듣는 학과를 창조(?)해낸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사립대학에 정부 예산을 투입해 당장 급한 불을 끌 수도 있다. 유학생을 ‘수입’하거나, 학위 팔이 장사를 해볼 수도 있다. 이처럼 생존의 기술은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방법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여기서 어느 것 하나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 지점이 없다.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지만 수업의 질 향상과 학생 복지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며 자화자찬 일색이다. 내가 재학 중인 계명대학교의 소규모 강의 비율은 2016년 39.4%를 정점으로 매년 감소해 지난해 기준으로 33.5%가 됐다. 1인당 장학금 수혜 현황은 2015년 309만4천원에서 2019년 370만원으로 올랐지만 교내 장학금은 꾸준히 감소 추세였고 오히려 교외 장학금, 즉 국가장학금이 1인당 장학금 수혜율 상승을 이끌었다. 반면 학생식당 가격은 2019년 한해에만 최소 100원에서 최대 600원까지 치솟았고 기숙사비도 매년 상승했다.
지방대가 처한 위기의 배경은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데 있다. 학과 통폐합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필요에 따라 묵살했음은 물론, 재단 비리나 학내 부조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학생들을 회유하거나 심지어는 징계 운운하며 협박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학교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인데도, 이런 학생들은 좀처럼 인정받지 못한다. 수도권과 달리 대학 내 여론을 주도하는 의견 그룹이 사실상 전무한 지방대의 학생 사회는 자기 비하와 냉소가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히려 이런 학생들을 ‘문제아’로 규정하고 통제하는 ‘모난 돌에 정 놓는’ 식의 대응이 대학 구성원들의 무관심을 자양분으로 삼아 끊임없이 배양되고 있는 것이다. 고질적인 비하와 자책의 정서가 지배하는 지방대학이, 민주적 의사결정체계의 부재에 힘입어 자신들의 동체를 끝없는 궁지 속에 몰아넣는 셈이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졸업>은 상지대의 민주화 투쟁을 기록한 영화다. 학생들이 비리 재단의 복귀에 맞서 끈질기게 저항한 끝에 2018년 상지대는 첫 직선제 총장을 선출했고 10여년간 이어진 학내 분규는 마침내 학생들의 승리로 종지부를 찍었다. 평범한 지방사립대인 상지대 학생들은 ‘민족상지’의 이름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다른 지방대학의 구성원들도 자신이 속한 대학이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눈앞에 놓인 이익을 좇기를 멈추고, 공동체의 문제를 모두가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의 마련이 시급하다. 민주적 학문공동체의 회복이 곧 지방대학이 처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