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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칼럼] 샌더스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등록 2020-02-24 17:57수정 2020-02-25 02:08

‘사회주의자’라는 버니 샌더스의 공약들은 유럽 국가들이 70년 전에 시행한 것들이다.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최고 소득세율은 91%여서, 사실상 부유세가 시행됐다.
기껏해야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에 불과한 샌더스를 왜 두려워한단 말인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2일 밤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아내 제인과 함께 이날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해 열린 네바다주 코커스에서 1위로 승리한 것을 자축하고 있다. 샌안토니오/로이터 연합뉴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2일 밤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아내 제인과 함께 이날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해 열린 네바다주 코커스에서 1위로 승리한 것을 자축하고 있다. 샌안토니오/로이터 연합뉴스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 22일 네바다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샌더스의 대통령 가능성을 제고했다. 샌더스는 46%를 득표해, 2위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19%)을 두배 이상이나 앞서며, 취약 지점이던 비백인과 중도층에서도 소구력을 보였다.

샌더스는 승리 연설에서 “네바다 승리뿐 아니라 전국을 휩쓸 다세대, 다인종 연합을 우리는 막 구성했다”고 포효했다. 바이든이 방화벽으로 설정한 다음 경선지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민주당 경선 유권자의 절반이 흑인이다. 2016년 경선에서 샌더스는 이곳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대패하며 동력이 빠졌다. 여론조사를 종합하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초까지만 해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샌더스는 고작 9%의 지지율로 3위에 머물고, 바이든은 38% 지지율로 고공행진했다. 23일 현재, 샌더스는 21.5%로, 바이든(24.5%)을 바짝 뒤쫓고 있다.

최대 주인 캘리포니아, 대형 주인 텍사스 등 16개 주 경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3월3일의 ‘슈퍼화요일’ 풍향도 급속히 샌더스 쪽으로 불고 있다. 민주당 전체 대의원 3979명 중 416명이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샌더스는 26.3%, 바이든은 14.8%, 마이클 블룸버그는 14.5%의 지지를 보인다. 민주당 경선에서는 15% 이상을 득표해야 대의원 표가 배분되는데, 최대 주 캘리포니아에서 바이든과 블룸버그는 빈손으로 끝날 위험에 처해 있다. 샌더스는 텍사스 등 슈퍼화요일 경선이 열리는 대부분의 주에서 선두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에이미 클로버샤 주지사의 지역구인 매사추세츠와 미네소타에서만 간발의 차로 2위를 달린다.

본선에서 샌더스는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히는데다 상·하원 선거에서도 마이너스 효과를 자아낸다는 것이 최근까지 기승을 부린 ‘샌더스 불가론’의 핵심이다. 네바다 경선 이후 샌더스의 본선 당선 가능성이 충분하니 반트럼프 진영은 단결해야 한다는 논조가 주류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

샌더스는 23일 텍사스 휴스턴대 집회에서 “기업·언론에 있는 일부 인사들은 점점 신경질적으로 되면서 ‘버니는 트럼프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며, 트럼프에 맞서는 자신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여론조사들을 제시했다. 지난해 초 이후 샌더스는 트럼프와의 맞대결 여론조사에서 평균 5%포인트의 우세를 보였다. 바이든 역시 별 차이가 없었다. 대트럼프 경쟁력 최근 조사에서 샌더스는 바이든에게 1~2%포인트 우세다. 중요한 것은 지난 대선에서 승부를 결정지은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 ‘스윙 스테이트’에서 샌더스는 적게는 2%포인트, 많게는 7%포인트 차로 모두 선두를 달린다.

지난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은 전국 득표에서 300만표를 앞섰으나, 대부분의 스윙 스테이트에서 간발의 차로 지면서 선거인단 수에서 졌다. 당시 스윙 스테이트에서 트럼프를 찍은 유권자 중 일부는 샌더스를 원래 지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힐러리라는 기득권층 후보에게 실망한 이들이 트럼프 지지로 선회한 것이다.

민주당 주류에서는 전후 민주당 대선 후보 중 가장 진보적이었던 조지 맥거번이 1972년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에게 참패한 사례를 들며 샌더스 불가론을 편다. 하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민주당 대통령들은 변화를 내세운 참신성으로 당선됐다.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지미 카터는 워싱턴 기득권층이 아니었다. 중원을 공략할 수 있다는 무난한 기득권층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존 케리, 앨 고어는 패배했다.

독일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는 1906년에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나?’라는 논문에서, 해답을 이민과 아메리칸드림에서 찾았다. 미국으로 와서 노동계층이 되는 이민자들에게 미국의 생활 수준은 본국보다 훨씬 높아서 사회주의자가 될 필요가 없었다며 “모든 사회주의 이상들은 기름진 고기와 애플파이라는 암초에 좌초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선 이민의 문이 닫히고, 노동자 등 저소득층의 계층 상승 사다리가 사라졌다. 지난 대선 때 <뉴욕 타임스> 조사에 따르면, 힐러리 지지자의 52%를 포함해 민주당 유권자의 56%가 사회주의에 호감을 보였다. ‘사회주의자’라는 샌더스가 내세운 전 국민 의료보험, 부유세, 공립대학 등록금 무료 등은 유럽 국가들이 70년 전에 이미 시행한 것이다. 미국에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최고 소득세율은 91%여서, 사실상 부유세가 시행됐다. 샌더스는 기껏해야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에 불과하다. 누가 샌더스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정의길 ㅣ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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