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현대차 노조위원장)이 지난 20일 울산 현대차 노조 사무실에서 곽정수 <한겨레> 논설위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울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의 이상수(55) 신임 지부장(현대차 노조위원장)이 합리적인 노동운동과 조합원 실리 확보라는 ‘실용 노선’을 내걸고 출범한 지 50일이 됐다. 이 위원장은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사회적 조합주의’를 표방한다. 그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현대차가 코로나19 사태로 임시휴업에 들어가는 등 생산에 차질을 겪고 있지만, 부품협력사도 연쇄도산 불안 등 어려움이 크다”며 “현대차가 협력사에 1조원을 긴급지원하기로 한 것은 노조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변화에 따른 고용위기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적극 대응하겠다”며 연내 구체적인 대안을 먼저 내놓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회사가 고용을 보장하고 공정한 성과배분을 약속하면 임금인상 투쟁 대신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할 수 있다”며 “노사가 협력하면 해외공장도 국내로 유턴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현대차 공장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동안 노조가 소극적이었던 인력과 생산물량 재배치에도 적극 협조할 뜻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에게 노조의 이런 생각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궁금하다”며 “정 수석부회장이 추진하는 모빌리티(이동수단)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노조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울산 현대차 노조위원장 사무실에서 했다.
- ‘사회적 조합주의’는 어떤 취지인가?
“노동운동을 하면서 위원장이 되면 경제적·전투적 조합주의를 넘어 사회적 조합주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이루고, 국민에게 사랑받고, 지역주민에게 신뢰받는 노조를 만들겠다. 노조의 목적은 조합원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지위 향상이다. 조합원의 고용과 복지가 중요하다. 1998년 외환위기 때 36일 동안 공장을 세우고 투쟁했지만, 결국 1만2천명의 정리해고(희망퇴직 포함)를 막지 못했다. 회사가 고용을 확실히 보장하고, 노동자가 노력한 만큼 분배해주면 노조가 굳이 파업할 필요가 없다.”
- 경제적·전투적 조합주의를 넘어선다고 했는데.
“노동자 대투쟁 직후인 1987년 현대차 노조를 만든 것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다. 초기에는 회사가 요구를 안 들어주면 생산라인을 세우는 전투적 조합주의였다. 이후 노조의 힘이 커지자 경제적 조합주의를 선언하고 성과분배를 요구했다. 당시 위원장 선거 때마다 모든 후보들이 성과금 몇백 퍼센트 더 받아주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와 부품협력사 간 임금격차가 심해졌다. 자기 배만 불리는 귀족노조라는 나쁜 인상을 심어주고, 사회적으로도 고립됐다.”
- 앞으로 계획은?
“매년 임금협상을 하지만 매출액 대비 노무비(인건비+복지비) 비중은 5.8%로 비슷하다. 더이상 임금 때문에 소모적인 투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임금인상 방식을 바꿔야 한다.”
- 대안은 있나?
“임금은 물가상승률에 따라 올리면 된다. 대신 생산성을 높여 이익이 더 많이 나면 주주 배당, 노동자 임금, 회사 연구개발 투자에 3:3:4의 비율로 배분하면 된다. 임금인상을 위해 투쟁하는 대신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대신 회사는 고용보장과 성과배분을 약속해야 한다.”
- 새 노조의 키워드도 ‘변화를 통한 노사 윈윈’이다.
“그동안 노사는 서로를 믿지 못했다. 회사는 낮은 임금과 관세를 찾아 해외에 공장을 세우면서도 불안정한 노사관계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이제는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한 고용안정이 핵심공약이다. 현대차의 주력모델이 전기차로 바뀌면 2025년까지 파워트레인(엔진과 변속기) 분야를 중심으로 40%의 인력이 남아돈다고 하는데.
“회사가 미래사업구조 개편을 담은 ‘2025 전략’을 외부에 공개하기 앞서 노조에 먼저 설명했다. 앞으로는 자동차 생산에만 목매지 않고 드론·로봇·플라잉카 등 모빌리티 사업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인력감축 규모를 단정하긴 어렵지만, 내연기관차 공장 대신 전기차 공장이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 노조의 대응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변화에 따른 고용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회사가 고용보장을 하면 노조도 인력 재배치와 이를 위한 기술교육을 받아들일 수 있다. 지난해 전임 노조는 회사 설립 50주년과 노조 설립 30주년을 맞아 변화된 노사관계를 만들자는 취지로 회사와 ‘5030 합의서’를 작성했다. 기존 단협에서는 노사 합의가 안 되면 신차를 생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합의서는 신차 투입 90일 전에 노조에 계획을 통보하고 성실히 협의하면 노조가 반대할 수 없도록 했다.”
- 인력과 생산물량 재배치에 소극적이던 과거와 비교하면 큰 변화다.
“현장 대의원들도 힘들어한다. 하지만 이미 울산1공장에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가 그런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변화는 급격히 오고 있다. 회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대응계획을 세울 때부터 미리 노조를 참여시켜 고용안정을 이뤄야 한다. 회사는 2025년까지 정년퇴직자가 1만5천명에 달하기 때문에 추가 고용을 하지 않으면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력과 물량 재배치는 불가피하다.”
- 결국 노사가 상생하려면 회사는 고용을 보장하고, 노조는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을 강화하는 ‘빅딜’이 필요한 것 같다.
“신형인 제네시스 GV80의 연간 생산능력이 2만4천대다. 주문을 받은 지 이틀 만에 1년치 예약이 끝났다. 요즘 고객은 1년씩 기다리지 않는다. 잘 팔리고 이익률이 높은 차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 공장별 물량 재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노사가 협력하면 고용도 지키고, 회사 수익성도 높일 수 있다.”
- ‘해외공장 유턴’을 공약으로 내놨는데.
“해외공장 중에서 이익이 나지 않는 공장을 국내로 유턴하면 조합원들의 고용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현대차 국내공장의 경쟁력이 해외공장보다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차 조합원들의 하루 노동시간이 10시간이라고 해도 실제 일하는 시간은 5.8시간 정도다. 이를 편성효율이 58%라고 말한다. 회사의 목표인 90%와 차이가 크다. 그동안 노조가 신차 투입에 대한 합의를 무기로 인력 증가를 계속 요구했다. 회사가 고용안정과 분배정의를 약속하면 노조는 생산성 제고에 협조할 수 있다.”
- 구체적인 복안이 있나?
“회사는 연간 품질향상(개선) 비용이 3조원이라고 주장한다. 회사가 고용안정과 분배정의를 약속하면 노조가 앞장서서 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비용 절감분을 노사가 나누면 서로 윈윈이다. 예를 들어 품질향상 비용을 1조원으로 줄이면 2조원의 여유재원이 생긴다. 1조원은 회사 연구개발에 쓰고, 1조원은 조합원에게 분배할 수 있다. 1조원이면 현대차 직원 6만5천명에게 1인당 1500만원씩 더 줄 수 있다.”
- 회사와 합리적 소통을 강조하며 정의선 수석부회장, 하언태 사장과의 3자회담을 제안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기다리고 있다. ‘2025 전략’을 노조에 먼저 설명한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회사도 고용 책임이 있다. 노조는 지난 33년간 성공하지 못한 노사신뢰관계를 만들고, 고용안정을 이루려고 한다.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속옷 바람으로 춤추라고 해도 응할 것이다. 대신 회사도 권위주의를 벗고 노조와 직접 대화해야 한다. 정 수석부회장에게 노조의 이런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는지 궁금하다.”
-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차 위기 극복을 위해 모빌리티 사업을 추진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는 점은 모두 인식하고 있다. 성공 여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만, 성공하려면 노사협력이 꼭 필요하다. 회사가 모빌리티 사업 추진의 후속 계획과 대책도 노조와 함께 세워야 한다. 조합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고용안정과 분배 정책을 내놔야 한다.”
- 자동차 랜드마크 건설 공약은 무엇인가?
“현대차는 울산에서 사업한 지 50년이 넘었다. 자동차 랜드마크를 울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지어서, 공업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폴크스바겐 등 전세계 유수의 자동차 생산업체들도 자체 홍보를 위해 자동차 랜드마크를 운영한다. 랜드마크 안에는 자동차 조립기술의 변천 역사, 역대 자동차 전시관, 신차 부스 등을 모두 담을 수 있다. 현대차는 이를 통해 수천억원의 홍보효과를 얻고 착한 기업으로 인식될 수 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결단해야 가능하다.”
- 전임 위원장은 2년 전 현대차와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개선하기 위해 ‘하후상박 연대임금제’를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금속노조를 처음 만들 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라 자동차산업의 원·하청 간 임금차이가 없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결을 못하고 있다. 현대차 조합원들보다 중소협력사와 비정규직의 임금을 더 올려야 한다는 취지에 동의한다. 하지만 현대차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노사와 민주노총,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이루려면 기업별 교섭 대신 산별 교섭이 필요한데.
“산별 교섭은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다만 기업노조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금속노조가 적극적으로 대안을 내놔야 한다. 금속노조가 일은 열심히 하는데 사회적 상황에 맞게 변화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조합비만 쓰는 ‘돈 먹는 하마’라는 지적도 있다.”
- 부품업체의 경영난과 고용위기가 심각하다.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부품업체 노동자를 위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노사 합의로 ‘사회공헌기금’을 매년 50억원씩 출연해 복지사업에 쓰고 있다. 이를 2·3차 협력사의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사용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다. 협력사의 경우 탈의실, 샤워장, 선풍기도 없이 일하는 곳도 많다. 현대차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협력사 지원이 필요하다.”
- 울산시가 주도하는 노사민정 기구인 ‘고용안정 선제대응 패키지 지원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불참하고 있지만, 현대차 노조는 참여할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정부의 국가균형발전계획에 따라 충주에 현대차 배터리공장이 세워졌다. 앞으로 내연기관의 부품이 전기수소차 부품으로 전환되면 울산의 부품협력사들은 줄도산 위기에 처하고, 울산 경제도 큰 타격을 받는다. 울산에 전기수소차 부품산업을 유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울산시, 민주노총, 현대차 노사, 협력사, 시민단체가 협력해야 한다.”
jskwak@hani.co.kr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현대차 노조위원장)이 지난 20일 울산 현대차 노조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울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실용 노선’ 이상수 노조위원장은 누구?
“원래 강경파 출신…정파운동 매몰에 결별 선언”
이상수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실용 노선’으로 불린다. 이 위원장은 이에 대해 “내가 당선된 뒤 앞으로 현대차가 편해지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웃는다.
현대차 노조 안에는 노동운동의 방향을 달리하는 10개 분파가 활동한다. 이 위원장은 ‘실용 노선’인 현장노동자회 대표 출신이다. “원래는 가장 왼쪽(강경파)에서 활동했어요. 그런데 너무 정파운동에 매몰되는 것을 보고 결별 선언을 했죠.”
이 위원장은 입사 3년차인 1990년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과 기술제휴로 자동변속기를 생산하는 부서 소속이었다. 한여름인데 에어컨도 없는 천막 안에서 가운을 입고 장갑과 모자까지 착용한 채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일할 정도로 작업환경이 열악했다. 머리카락 같은 오물이 부품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너무 힘들어 바람을 통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거절당했어요. 견디다 못해 천막의 줄을 잘라버렸죠. 이후 이른바 회사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변속기 생산부서의 조합활동은 이 위원장이 회원이었던 축구동아리 ‘신풍’(새로운 바람)이 중심이었다. 신풍 회원들은 노조 대의원을 도맡았다. 회사에 불만이 있으면 조합원 간 비밀신호를 통해 잔업 거부를 주도했다. 이를 눈치챈 회사가 신풍을 탈퇴하면 조장·반장을 시켜주겠다고 회유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수 위원장은 2009년 같은 실용 노선인 이경훈 위원장 노조 때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