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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커뮤니티 테라포밍’ 맞서 음모론 거리두기를

등록 2020-03-10 17:31수정 2020-03-11 02:36

[최선영의 미디어전망대]

지난주 ‘차이나 게이트’가 반짝 화제였다. 요약하면 친중 댓글 공작 조직이 친정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황당한 음모론이다. 사건의 시발점은 ‘일베’의 2월26일자 게시 글이었다. 흥미로운 건 삽시간에 대규모로 확산한 방식이다. 국내 최대 커뮤니티 포털인 ‘디시인사이드’ 우한 마이너갤러리로 옮겨간 글은 연일 핫이슈로 다뤄졌다. 이후 이야기에 살이 덧붙여지며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서 창의적인 거대 서사로 재생산되고 공유되기 시작했다. 3·1절 검색어 띄우기에 성공한 걸 보면 일부 커뮤니티에선 대규모 동조가 발생했을 거라 짐작한다. 누리꾼들이 팩트체크를 통해 이야기의 허술함을 신속하게 알려 더 확산하지는 않았고, 결정적으로 이튿날 신천지 이만희씨의 ‘시계 게이트’라는 강력한 서사가 이 음모론을 덮었다. 여전히 잔불은 남아 있어 언제 재점화할지도 모른다.

개연성도 근거도 없는 ‘차이나 게이트’가 어떻게 5일 만에 확산할 수 있었을까? 누리꾼들은 그동안 수많은 음모론과 가짜정보 확산의 원인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의 ‘테라포밍’을 지목한다. 테라포밍(Terraforming)은 잭 윌리엄슨의 공상과학소설 <충돌 궤도>에 소개된 합성어로, 어떤 행성을 지구 생태계와 비슷하게 바꾸는 ‘지구화’ 작업을 뜻한다. 커뮤니티를 하나의 지형으로 본다면 ‘테라포밍’은 본래 커뮤니티 성격이 변질하여 완전히 다르게 바뀌는 걸 뜻한다. 테라포밍 과정은 커뮤니티에서 ‘차이나 게이트’ 같은 특정 의견 글이나 이슈가 게시판을 잠식해가면서 시작된다. 취향 공동체로 건강한 갑론을박이 이루어졌던 커뮤니티 게시판은 특정 방향으로 주목을 끄는 이른바 ‘갈라치기’ 글과 감정적 분노를 유발하는 ‘어그로’꾼에 의해 서서히 변질된다. 꾸준히 비슷한 유형의 글이 게시되면 기존 이용자들은 동조하기 쉽다. 반면 동조하지 못해 피로감을 이기지 못한 사람은 해당 커뮤니티를 떠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누군가에 의해 테라포밍된 게시판은 특정 의견으로 편향된 가짜정보의 유통경로이자 생산기지로 탈바꿈한다. 이 과정에서 막말과 욕설, 조롱과 비난의 논조가 소통 양식으로 버젓이 자리 잡는 것도 커뮤니티 게시판 테라포밍의 특징이다.

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테라포밍이 일어날까? 캐스 선스타인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 음모론은 ‘정보의 폭포현상’과 ‘집단극단화’를 통해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특히 비슷한 취향과 동질적 사고로 강한 유대감을 형성해온 커뮤니티에서 극단화 메커니즘은 잘 작동한다. 끔찍한 일을 당하면 분노가 생기고, 이를 누군가의 의도적 소행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어서 사회가 불안할 때 음모론이나 가짜정보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신뢰할 만할 집단 내에서 반복적으로 이러한 음모론과 가짜정보가 공유되면 진위와 무관하게 집단의 중간치 입장이 특정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선스타인은 ‘집단극단화’의 결과, 특정 방향의 열광적 신봉자만 남게 돼 집단의 규모는 줄어들고, 또 이들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무리하게 이중사고를 해 스스로 사실과 진실을 격리한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음모론과 가짜정보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한 때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진 어느 날 우리 사회 소통의 지형은 어떻게 변화할까. 모두에게 유익하고 안전한 환경으로 테라포밍 되기를 소망한다.

최선영 ㅣ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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