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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민편집인의 눈] 인권을 위한 공익, 공익을 위한 인권 / 홍성수

등록 2020-04-16 18:39수정 2020-04-17 13:55

홍성수 ㅣ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프랑스의 한 언론이 ‘한국의 코로나19 방역대책이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고 있다’는 취지의 칼럼을 실어 논란이 되었다. 사실 인권과 공익을 대립시키고 양자택일의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검찰개혁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형사사건의 공개 여부였다. 공익적 차원에서는 공개가 필요하지만, 피의자와 피고인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비공개가 원칙이라는 입장이 맞섰다.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공개와 위치 추적, 손목밴드 착용 문제를 놓고도 방역이라는 공익과 개인의 자유라는 인권이 맞서고 있다. 서양은 인권을 중시하고 동양은 방역이라는 공익을 중시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 국가에서는 코로나 방역을 한다며 국민을 향해 통제와 폭력을 감행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평소 인권이 취약했던 나라들에서 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현실에서는 이 대립구도가 좀 더 뒤엉켜 있다. 유럽의 국가들과 미국의 많은 주는 강력한 이동 제한과 영업 중단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영업이나 시민의 이동을 강제로 금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인권 침해다. 그것이 확진자 동선 공개나 위치 추적보다 인권 침해가 덜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2만명이 넘었다. 미국의 사망자는 2만5천명을 넘어섰고,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은 1만명이 넘는다. 죽음만큼 심각한 인권 침해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생명을 빼앗기고 있다면 그야말로 중대한 인권 침해가 아닐 수 없다. 휴교 조치는 교육권을 제한하는 것이지만, 학교 문을 열었다가 전염병이 악화하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 피의자나 범죄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의 인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범죄자를 단죄하여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인권 정책이다.

그런데 인권과 공익의 문제는 한쪽을 택하면 한쪽이 반드시 희생되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공익을 내세워 인권을 무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파시즘 논리일 뿐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통치자들은 인권의 제한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신중한 판단과 엄격한 절차에 따라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다. 그 과정에서 공익과 인권의 부당한 대립은 희미해지고,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결국 공익에 부합하는 일이라는 ‘이론적’ 명제가 현실에서도 살아 숨 쉬게 된다.

확진자 동선 공개 문제가 불거졌을 때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확진자의 2차 피해를 경고하면서도, 고매한 원칙론만 강변한 게 아니라 방역에 꼭 필요한 한도 내에서의 공개는 문제가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나친 사생활 공개는 자진 신고나 검사를 회피하게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확진자에 대한 혐오가 방역에 오히려 방해된다는 점은 방역 전문가들도 수차례 지적했던 바이다. 며칠 후 중앙방역대책본부가 확진자 개인정보 공개에 대한 진전된 가이드라인을 내놓음으로써 이러한 조치에 화답했다. 그런 상황에서 신규 확진자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인권과 공익은 일견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려 깊은 조정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 충돌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는 셈이다.

인권을 고려하라는 것은 인권이 더 중요하니 공익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가치를 집대성한 것이 바로 인권이다. 그리고 인권은 늘 ‘위기’의 순간에 문제가 된다. 공익과 인권을 부당하게 대립시키는 선동은 포퓰리즘 정치인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판매 부수와 조회수에만 집착하는 황색 언론들도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인류가 발전시켜온 인권과 민주주의의 시스템들은 이런 상황에 대처하고자 준비돼온 것들이다. 팬데믹이라는 작금의 상황은 바로 그 눈부신 성과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할 순간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인권위와 방역당국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문제를 조율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동안 가다듬어온 한국의 민주적 제도들이 실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이번 총선 결과 역시 방역대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도 인권이라는 가치를 놓치지 않은 그동안의 방역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반영된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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