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 ㅣ 정치부장
한 편 보고 나면 진 빠질 정도로 기가 쪽쪽 빨렸는데, 도무지 끊을 수가 없었다. 욕하면서도 끝까지 다 봤다. 마지막 회는 특별히 결혼 10년 차인 친구를 초청해 함께 시청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최종회 시청률 28.4%에 나도 기여했다.
16화 내내 집착이 강한 여자들과 찌질한 남자들이 갈등하며 빚어내는 긴장과 공포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결말은 나름 긍정적이었다. 남편의 바람기에 의부증 증상까지 보였던 고예림(박선영), 남편의 사랑을 전처에게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던 여다경(한소희)은 이별을 선택했다. 울타리라 생각하고 어떻게든 지켜보려 했으나 실제론 가시덤불이었던 남자에게서 벗어나자, 여자들은 자신이 바라던 삶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카페를 연 고예림은 단골손님들을 만들며 자리를 잡아가고, 갤러리 운영이 꿈이었던 여다경은 연하가 분명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의 유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술 공부에 집중한다.
본래 비평가 기질이 다분한 친구는 논평했다.
“너, 부부의 세계가 왜 저리 질리게 질긴 줄 아니? 남녀 모두 자신의 행동 패턴을 반복하기 때문이야. 둘 다 자신의 성격과 습관이 만드는 궤도에서 벗어나기 힘들거든. 그래서 계속 서로에게 매달리고 괴롭히고 파멸을 자초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거야.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이 관성적 관계를 단절해야 비로소 진짜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지. 예림이, 다경이 쟤들 다 그렇잖아?” 그는 입맛을 촥 한번 다시곤 맥주를 콸콸 들이부었다.
친구와 건배를 하면서 <부부의 세계>를 보수를 주인공 삼은 정치극으로 만들어봐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뭣보다, 양쪽 다 중독성 있다. 갈등이 정점에 오를수록 드라마 시청률 올라가듯 보수 인사들의 말이 거칠어질수록 인터넷 조회수는 높아진다. 다른 공통점도 많다. ‘그래도 내 편’이라는 미련 때문에 음모론과 막말로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극우 유튜브를 끊지 못하는 미래통합당 정치인들. 5·18을 맞아 망월동 민주묘역을 참배하면서도 ‘북한군 개입설’로 5·18 민주화운동을 모욕하는 의원을 품고 있는 미래한국당. ‘속이는 남자’와 함께 사는 게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아 괴롭지만 그래도 ‘남편 없는 여자’라는 소리는 듣기 싫어 손톱 물어뜯는 선우와 흡사하다. 헤어지냐 고쳐 쓰냐를 놓고 이혼과 재결합 사이에서 속을 끓이는 예림과 닮았다. 이들이 ‘완벽했던’(실제론 완벽하지 않았던) 과거를 잊지 못하는 것처럼, 많은 보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은 여전히 ‘선거의 여왕’ 전성시대를 잊지 못한다.
얼마 전 만났던 통합당 의원은 한탄했다. “선거 끝난 지 한참 됐는데도 아직 현실로 못 돌아오고 있다. 자신이 믿는 것,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배울 만큼 다 배우고 똑똑하다는 소리 듣는 사람들도 단톡방에서 4·15 총선은 부정선거라고 주장한다. 동료 의원들은 선거조작 근거가 유튜브에 다 나오는데 왜 보지도 않냐고 나를 원망한다. 세대가 바뀌어야 달라지려나…. 암담하다.” 거참, 부부의 세계만큼 질기다.
최근 통합당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 시절 5·18을 폄훼했던 의원들에 대해 사과했고, 당내 여론을 다독여 ‘김종인 비대위’ 출범도 확정 지었다. 딴마음 먹는 냄새를 풀풀 피우던 미래한국당 지도부를 압박해 합당도 결론 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도 이번주 등판한다.
다시 부부의 세계로. 아들을 명분(실제론 인질) 삼아 애증을 이어가던 선우 부부. 중학생 아들은 부모의 처절한 막장극에 충격받고 집을 나간다. 그제야 정신 차린 남녀는 집착의 패턴을 끊고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아들을 기다린다.
4·15 총선 때 집토끼들을 무더기로 잃어버린 통합당. 과연 통합당은 지지자들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부부의 세계>의 마지막 장면은 1년이 흐른 뒤 누군가 선우의 집에 들어서는 것으로 끝난다. 선우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지지만, 진짜 아들이 돌아왔는지는 확실치 않다. 열린 결말이다. 과연 통합당은 1년 뒤 ‘집 나간 아들’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역시 열린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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