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다시 들썩이자 정부가 17일 또 대책을 내놨다. 문재인 정부 들어 21번째다. 정부는 최근 주택시장 불안 원인으로 투기 수요와 저금리에 따른 시중 유동성 증가 등을 꼽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국민의 신뢰 상실이다. 정부의 집값 안정 능력을 넘어 이젠 의지마저 의심받고 있다. 부동산 정책이 일관성이 없는데다 큰 그림 없이 시장을 뒤따라가기 급급한 탓이 크다.
집값이 다시 들썩이자 정부가 17일 또 대책을 내놨다. 문재인 정부 들어 21번째다. 투기과열지구 추가 지정, ‘갭투자’ 차단을 위한 전세자금 대출 규제, 재건축 요건 강화 등이 포함됐다. 정부는 최근 주택시장 불안 원인으로 투기 수요와 저금리에 따른 시중 유동성 증가 등을 꼽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이다. 정부의 집값 안정 능력을 넘어 이젠 의지마저 의심받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부동산 정책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42%로 “잘하고 있다”(24%)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앞으로 1년간 집값 전망에 대해서도 “오를 것”이라는 응답이 37%로 “내릴 것”(23%)이라는 응답보다 훨씬 많았다. 부동산 정책이 일관성이 없는데다 큰 그림 없이 시장을 뒤따라가기 급급한 탓이 크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집값이 치솟자 12·16 대책을 내놨다. 종합부동산세 강화, 고가 아파트 대출 규제, 청약제도 개편 등을 망라한 고강도 대책이었다. 그중에서도 종부세 강화가 핵심이었다. 정부는 올해 종부세 납부분부터 적용하기 위해 20대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려 했다. 조속한 입법을 통해 부동산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대책 발표 일주일 만인 12월23일 의원 입법으로 종부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불발됐다.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민주당은 미래통합당이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구차한 변명이다. 원래 통합당은 종부세 등 보유세 강화에 반대해왔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도, 조세소위 위원장도 민주당이 맡고 있었지만, 법안 제출 뒤 4개월 넘게 손을 놓았다. 4·15 총선 뒤인 4월29일 처음이자 마지막인 조세소위가 열렸다. 하지만 종부세법 개정안은 20분 남짓 논의하고 끝이었다. 공식 논의는 그게 다였다. 결국 종부세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집부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조세소위에서 “코로나 사태는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이 없고 오히려 저금리와 코로나 대책으로 늘어난 유동성으로 인해 집값 재상승 우려가 있다”며 법안 처리를 요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민주당은 총선 때는 종부세 강화에 찬물까지 끼얹었다. 강남 3구와 양천구, 용산구 등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이 1주택자 종부세 감면을 공약으로 내놨고, 이낙연 당시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도 거들었다. 종부세법 개정안에 이미 고령자나 장기 보유 1주택자에 대한 세금 감면 확대 방안이 들어 있는데도 발목을 잡은 것이다. 종부세법 개정안은 사실상 민주당이 통합당과 공조해 무산시킨 셈이다.
정부와 민주당이 다시 종부세 강화 카드를 꺼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종부세법 개정으로 주택 보유에 대한 과세 형평을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정부도 15일 종부세법 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과세 기준일이 지났기 때문에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내년에나 적용될 수 있다. 애초 계획보다 1년이나 늦어지게 된 것이다. 책임이 무거운데도 민주당은 사과 한마디 없이 다시 종부세 강화를 얘기한다.
부동산 대책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와 민주당은 종부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다시 제출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종부세 등 보유세 강화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정교하게 만들고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투기 수요 억제와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보유세 강화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데 이론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0.3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집값의 단기적 변동과 관계없이 보유세 실효세율을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적어도 오이시디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일정을 제시하고 이를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부동산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투기 수요도 근본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지금처럼 집값이 오를 때마다 사후적으로 대처하는 ‘땜질 처방’으론 한계가 분명하다. 집부자들이 투기로 얻는 이익보다 보유세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때 주택시장 안정이 가능해진다.
문재인 정부 임기 중에 31번째 집값 대책을 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재승 논설위원실장 jsahn@hani.co.kr
고가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 연합뉴스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