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연초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를 만났다.
“미국 정부 안에서 대북 정책을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등이 심하다고 하는데?”
“과장됐다. 단,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협상에 회의적인 사람의 의견 차이는 있다.” 말하자면 협상파와 회의파가 있는 셈이다.
“대사는 어느 쪽인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중간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북한이 선언했으니 믿어야겠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6자 회담이 북한의 위폐 제조·유통 논란 및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라는 암초를 만났다. 북한은 미국이 본격적인 경제봉쇄에 나섰다고 의심하고, 미국은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법 집행 차원이라고 한다. 어느 쪽이든 미국 정부내 협상파의 입지를 약화시킨 건 분명하다. 지난해 9·19 공동성명 발표 이후 별 진전 없이 넉 달이 흘렀다. 협상파는 아직 체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파는 아니더라도 다른 노선이 존재하는 북한 정권 안에서도 협상노선이 위축됐을 것이다.
미국내 회의파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많다. 북한 인권 문제는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조커와 같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거래와 재래식 대량살상 무기도 있다. 위폐 및 마약 거래 문제도 이번으로 끝이 아니다. 그러다가 협상이 지지부진해 보이면 협상 틀 자체를 문제삼을 수 있다. 폐기된 제네바 합의가 이런 과정을 거쳤다. 반면 협상파는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론 외에 뚜렷이 내놓을 게 없다. 그리고 협상 성과로 보여줘야 한다. 한국과 중국 정부 안에는 적극적인 협상파와 소극적인 협상파는 있을지라도 회의파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새로운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창의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가장 고심하는 것도 두 나라다. 이번 위폐 논란 역시 그렇다. 확실한 사례에 대해서는 북한이 잘못을 인정하고 미국이 강경 자세를 누그러뜨리는 선에서 타협안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정리하는 형식과 시기를 놓고 대화가 이뤄지는 단계인 듯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6자 회담 동력을 어떻게 회복하느냐다. 6자 회담의 우리쪽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는 비유의 달인이다. 그는 9·19 공동성명을 대문에 빗댄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지붕을 두 기둥이 떠받친다. 하나는 북한의 핵 포기이고, 다른 기둥은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와 에너지·경제 지원이다. 이 문을 넘어서면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안보협력이 기다린다. 문제는 두 기둥의 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이를 서로 가진 ‘수단의 비대칭성’이라고 표현한다. 비대칭성과 관련해 미국이 강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핵 포기와 관계 정상화, 경제 지원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지금 최대 현안은 북한의 경수로 요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북한은 미국을 믿을 수 없기에 먼저 경수로 제공을 약속받아야 한다고 하고, 다른 나라들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믿음을 준 뒤에야 경수로 제공을 논의할 수 있다고 한다. 불신이 빚어내는 비대칭성의 악순환이다. 문제를 푸는 방법은 진지한 협상을 통해 신뢰를 키우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성과를 축적해가는 길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협상파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회의파도 최소한 의심을 증폭시켜 협상파의 힘을 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협상은 어려우나 깨기는 쉬운 법이다. 버시바우 대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미국내 회의파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많다. 북한 인권 문제는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조커와 같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거래와 재래식 대량살상 무기도 있다. 위폐 및 마약 거래 문제도 이번으로 끝이 아니다. 그러다가 협상이 지지부진해 보이면 협상 틀 자체를 문제삼을 수 있다. 폐기된 제네바 합의가 이런 과정을 거쳤다. 반면 협상파는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론 외에 뚜렷이 내놓을 게 없다. 그리고 협상 성과로 보여줘야 한다. 한국과 중국 정부 안에는 적극적인 협상파와 소극적인 협상파는 있을지라도 회의파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새로운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창의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가장 고심하는 것도 두 나라다. 이번 위폐 논란 역시 그렇다. 확실한 사례에 대해서는 북한이 잘못을 인정하고 미국이 강경 자세를 누그러뜨리는 선에서 타협안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정리하는 형식과 시기를 놓고 대화가 이뤄지는 단계인 듯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6자 회담 동력을 어떻게 회복하느냐다. 6자 회담의 우리쪽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는 비유의 달인이다. 그는 9·19 공동성명을 대문에 빗댄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지붕을 두 기둥이 떠받친다. 하나는 북한의 핵 포기이고, 다른 기둥은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와 에너지·경제 지원이다. 이 문을 넘어서면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안보협력이 기다린다. 문제는 두 기둥의 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이를 서로 가진 ‘수단의 비대칭성’이라고 표현한다. 비대칭성과 관련해 미국이 강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핵 포기와 관계 정상화, 경제 지원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지금 최대 현안은 북한의 경수로 요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북한은 미국을 믿을 수 없기에 먼저 경수로 제공을 약속받아야 한다고 하고, 다른 나라들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믿음을 준 뒤에야 경수로 제공을 논의할 수 있다고 한다. 불신이 빚어내는 비대칭성의 악순환이다. 문제를 푸는 방법은 진지한 협상을 통해 신뢰를 키우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성과를 축적해가는 길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협상파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회의파도 최소한 의심을 증폭시켜 협상파의 힘을 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협상은 어려우나 깨기는 쉬운 법이다. 버시바우 대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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