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이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코로나19 이후 고용 충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노동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사실상 150만개 이상 일자리(일감)가 줄었다. 대부분 영세기업, 자영업자, 특수고용직에 집중됐다. 우리 노동시장의 취약한 구조가 그대로 확인된 것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코로나 이후 고용 충격이 “조직화되지 못해 고통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 취약층에 쏠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용 부진의 장기화 가능성이 높은 만큼, 고용보험 확대 등 이들에 대한 지원이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에 대해서는 “워낙 청년 취업이 힘든 상황이어서 ‘불공정 코드’가 작동한 것 같다”며 “인천공항은 정규직이 전체 인력의 10% 남짓했던 기형적인 고용 구조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정규직화 정책의 민간 확산이 지지부진한 데 대해서는 “국가보안법을 페지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공공부문에서 시장임금보다 10~20% 정도 높은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 민간에서도 유인이 생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최근 노사정 합의 무산은 “민주노총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변해야 할 절박한 시기에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며, 현재 민주노총 의사결정 구조로는 다시 대의원대회를 열어도 의미있는 결정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내다봤다. 배 원장은 산업경영학을 연구했으며, 특히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천착해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수립에도 관여했다. 인터뷰는 지난 9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른바 ‘노량진 취준생’들과 경쟁하는 일자리는 아니지 않나?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보안검색직은 과거에는 용역회사 소속이었고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불안한 일자리였다. 이직률도 높았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아니다. 인천공항 이외에 다른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대상 직종도 비슷하다. 주로 청원경찰, 시설관리, 사무보조, 경비, 연구보조, 조리사, 전화상담원 등이다. 조사를 해보면 전체의 66%가 청년 선호 직종이 아니다. 정규직(무기계약직)이 되고 처우도 개선된다고 하니 청년들이 ‘괜찮은 일자리’로 보는 것 같다. 청년 고용률이 뚝 떨어진 상태이니, 그만큼 자신들이 경쟁을 통해 취업할 공간이 좁아지는 데 대한 우려는 이해한다.”
―정부와 공사가 협상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며 갈등을 키웠다는 지적이 있다. 여전히 정규직 노조의 반대가 심한데.
“인천공항 고용 구조는 애초에 비정상적, 기형적이었다. 정규직이 전체 운영 인력의 20%가 안 된다. 소수의 정규직 노조가 있고, 비정규직 노조도 3개로 갈라져 있다. 또 정규직 전환 대상 중에서도 전환 결정(2017년 5월) 이전 입사자와 이후 입사자의 처지가 다르다. 노조 쪽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해 노조 간 합의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직접고용 방안은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노사와 전문가 협의체에서 거의 100차례 이상 협의한 결과다. 단체협약처럼 노사 합의가 의무 사항은 아니다. 정규직 노조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반대했다. 전환 노조의 덩치가 더 커져 인천공항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자신들은 제2 노조가 될 것이란 우려였다. 기존 정규직 노조와 전환 노조는 한데 묶어도 문제가 된다. 서로 임금 격차가 워낙 커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연봉·승진 등은 별개 트랙으로 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 성과는 어떻게 평가하나? 애초에 무리한 목표가 아니었느냐는 지적도 있는데.
“이 정부에서 전혀 없던 걸 새로 시작한 게 아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꾸준히 전환해 21만2천명이 무기계약직이 됐다. 이 정부에선 기간제뿐 아니라 파견용역직도 상시·지속 업무는 최대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공공부문이 민간보다는 낮지만 상시·지속 업무에 비정규직을 꽤 써왔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을 ‘비정규직 제로’라고 강하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5~2배 높다. 지난해 말까지 정규직 전환 대상 20만5천명 중 17만4천명의 전환이 완료됐다. 최소한 상시·지속 업무는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정책 목표는 유의미했다고 본다.”
―정규직화 정책이 민간 영역에선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애초 민간 확산의 디딤돌로 만들겠다는 취지 아니었나?
“안타깝지만 민간까지 흐르지 않았다. 처음엔 씨제이·에스케이 등에서 정규직 전환에 나섰다. 통신수리 기사 등 정부 방침에 따라 상시·지속 업무 중심으로 수천명씩 전환했다. 그런데 초기 움직임이 이어지지 못했다. 민간에서의 비정규직 해소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보다 더 힘든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공부문부터 적절한 전환 방식과 인프라를 만드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민간 확산이 더딘 이유는 뭔가? 정부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는 문제 아닌가?
“공공과 민간의 시장임금 격차가 민간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시장임금보다 10~20% 정도 높은 적정임금 수준을 유지해야 민간에서도 유인이 생긴다. 공공이 너무 앞서가면 아예 쫓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직무에 따른 임금·호봉 시스템이 일관성 없고 기관마다 지역마다 들쑥날쑥한 것도 문제다.”
―공공부문의 직무에 따른 임금과 처우 수준이 너무 과도하다는 것인가?
“과거의 공무직 임금 체계를 주먹구구식으로 원용해 쓴다. 전환 초기에 공무직에 적용하는 호봉제를 보상의 의미로 그대로 수용했는데, 이것이 갈수록 부담이 되고 있다. 신규 채용자 초임과 장기 근속자 간 임금 격차가 크면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 내부에서부터 깨지는 셈이다. 지역 간 격차도 심하다. 예컨대, 한 지자체 시설관리직은 신입 직원과 15년 근속자 간 임금 격차가 2.3배에 이른다. 무려 30호봉까지 격차를 두기도 한다. 어떤 지자체 청소업무직은 정규직이 되는 순간 연봉이 1700만원 올라간다. 지자체마다 개별적인 협상을 통해 임금과 처우를 정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다. 이렇게 원칙 없이 임금이 책정되면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고, 지역·직종·세대 간 격차만 더 늘리게 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하나가 대기업-중소기업, 원청-하청 격차 문제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임금 인상률에 차등을 둬 조금씩 격차를 줄이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최근 10년간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 비율은 거의 그대로다. 절대 금액이 커졌으니 체감 격차는 더 심해진 거다. 우리나라의 저성장 기조는 뒤집기 힘들고, 코로나 이후 더 심해질 것이다. 이 경우 기업 내에서 매년 1~2%씩 올리는 식의 임금교섭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은 임금교섭의 상징인 ‘춘투’라는 게 아예 없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노동시장을 규율할 때 여전히 기업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조 역시 기업 울타리에 철저히 묶여 있다. 기업 이익을 노사가 독점하면서 노동자 간 연대라는 개념은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 대기업-협력업체 간 차등 임금인상을 두고 노조는 사용자 탓을 하는데, 산업별로 임금 수준 표준화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사실상 무산됐다. 민주노총이 결국 수용하지 않았는데.
“이 정부 들어 민주노총이 제1 노총이 됐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전환으로 노조 가입이 늘었고, 민간기업 노조들도 고용 불안 등에 대응하기 위해 민주노총의 문을 두드린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노사정 대화는 민주노총이 먼저 제안했던 터여서 합의 무산에 대한 실망이 더 크다. 무엇보다 노조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민주노총은 위원장을 직선으로 선출해 집행 권한을 위임한다. 그런데 매번 의사결정을 집행부나 대의원대회에서 추인받아야 한다면 직선 위원장이 존재할 까닭이 뭔가. 특히 코로나 위기로 어려운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절박한 시기에 막중한 책임을 방기한 거다. 코로나 이후는 경제·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불가피하고, 노사정이 끊임없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민주노총이 이런 변화에 동참을 거부한 셈이 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민주노총은 ‘총고용 보장’이 수용되지 않았고 ‘노동 취약층 보호’가 미흡한 점을 들어 이번 합의를 거부했는데.
“총고용 보장 주장은 현실화되기 어렵다. 이번 노사정 대화는 합의 자체가 가장 큰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고용 지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하고, 사용자 쪽은 고용 유지를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데 이런 상징적·추상적인 수준의 합의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부적인 합의로 더 나아가겠나. 현재 민주노총 의사결정 구조로는 대의원대회를 다시 열어도 의미있는 결정이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본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책무가 있는 주체가 이번처럼 대응하면 일반 시민들이 신뢰를 할지 의심스럽다.”
―코로나 이후 고용 충격은 어떤 정도인가? 다른 나라처럼 대규모 실업 사태는 벌어지고 있지 않은데.
“올해 5월까지 고용 수치를 보면, 코로나 이후 일자리(일감)가 대략 150만개가량 줄었다. 취업자 수 감소와 비경제활동인구 증가, 일시휴직자 증가 등을 합치면 그 정도 된다. 우리나라 근로자 수가 2천만명 정도이니 적지 않은 고용 충격이나, 다른 나라들에 견주면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편이다. 우려스러운 건 고용 충격 대부분이 영세기업, 자영업자,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집중됐다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고용보험 미가입자들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새 일자리를 찾는 것 또한 언감생심이다. 조직화되지 못한 이들이라 고통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릴 뿐이다. 우리 노동시장의 취약한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고용보험 확대가 시급하고 절박한 이유다. 우리나라 고용보험 가입자는 1380만명가량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전체 가입자의 52.9%가 신규 취득자(과거 가입자 포함)이고 자격 상실자가 49.1%에 이른다. 1년 동안에 절반가량이 자격을 잃고 절반가량이 새로 가입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노동시장이 유동적이고, 안정된 일자리가 적다는 의미다. 지역 공단 노동자들은 취업과 퇴사(해고)를 반복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다. 코로나 이후 이런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해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고용·실업 상황은 어떤가?
“다른 주요국들은 우리보다 고용 충격이 훨씬 크고 장기화하고 있다. 정부 재정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노동자 수를 보면, 미국은 2600만명, 영국은 940만명, 프랑스는 1220만명, 독일은 1080만명에 이른다. 독일·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로 빅4’를 합쳐 4천만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과 서유럽의 경우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막대한 재정을 고용 유지에 쏟아붓고 있다. 영국은 실직자에 대한 지원을 올해 10월 말까지로 연장했다. 미국은 실업급여를 포함해 전체 취업자 1억4560만명의 40%가 지원 대상이다. 일자리를 잃으면 의료지원(헬스케어)마저 다 끊기기 때문에 고용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코로나 이후 노동 정책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코로나 이후 노동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사람도 시간도 남는다. 노사정 모두 코로나 이후 회복기에 대응할 준비를 잘해야 한다. 코로나와 미-중 분쟁 등으로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새로운 기술을 간신히 따라가는 게 아니라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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