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택 ㅣ 여론팀장
17일은 한 소년이 떠올랐던 날, 소녀가 떠난다는 소식에 “돌아오는 길에는 열이틀 달이 지우는 그늘만 골라 디뎠다”는 <소나기>의 소년, 딱 그 소년만큼의 허무가 있던 날. 심사가 뒤틀린 퇴근길, 그러나 공원의 사람들은 해거름 햇살처럼 선했고 공원은 코로나가 맥주 이름인 줄만 알던 시절처럼 경쾌했다. 미워하고 싶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정오께 걸려온 한 학교 선생님의 전화가 발단이었다. “기자님, 신문에 나간 글 온라인에서라도 좀 지울 수 없을까요? 글 나간 뒤 지인들이 걱정을 많이 해요. 근검절약한 게 무슨 자랑이냐, 부자들이 다 투기하는 줄 아냐, 그런 비난들이 많아서 딸들도 걱정을 하네요.”
딸들의 서울 취업과 진학 때문에 3~4시간 거리 밖 집을 처분하고 대출까지 받아 지난해 수도권 전세살이―서울은 포기하고서―를 시작한 이야기를 <한겨레>에 투고한 분이었다. 1년여 만에 회사 복귀차 다시 서울 살던 곳 전셋집을 알아보다 20평대 아파트가 14억원이란 안내에 뒷목을 잡았던 지난해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딸과 동갑인 임대인의 엄마, 그러니까 자신 또래의 부모가 아파트를 몇채 소유한 걸 알고 딸에게 객쩍은 사과도 한 모양이다. 여러해 청소년들의 소망 직종 1위인 초등 교사를 수십년 해온 이 선생님의 열패감 고백은 신문 게재 하루 만에 되레 “근검절약이 자랑이냐” 따위 비꼬고 꾸짖는 이들 탓에 누리집과 포털에서 사라져야 했다.
허무가 커진 덴 이유가 있다. 지난 3월 한 중국 여성의 <한겨레> 투고도 똑같았으니까. ‘혐중’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제 나라가 된 한국에 대한 고마움을 담았던 글은 ‘왜냐면’ 발행 뒤 갖가지 욕설에 짓밟힌 투고자의 요청대로 삭제되어야 했다.
1월 말 … 마스크를 전혀 구할 수 없는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마스크를 보내려고 했다.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보내는 것을 들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욕설을 초래할까 봐 두려운 마음으로 머리를 숙여 마스크를 포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체국 직원분이 다가와 에어캡을 넣어주고 꼼꼼히 포장해주셨다. “그래도 급한 물건이니까 하루라도 빨리 도착하면 좋겠죠?”라는 말에 ….
나는 한국인과 동일한 복지 기회를 주는 … 한푼도 없이 시작하는 우리 부부를 위해 신혼부부 전세금 대출을 지원해주는 … 우리를 지키기 위해 신종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이 나라가 고맙다.(투고 일부)
며칠을 고심했다던 이 고백의 어느 자모가 ‘당신’을 자극하고 분노케 했던 걸까. 누군가의 아픔을 타박하기 바쁜 궁벽한 폭력들, 그러니까 진짜 아픈 탓일지도 모를 ‘당신’들의 연원이 궁금했고, 끝내 납득되지 않을 때 우리는 두려워하다 무기력해하다 더는 발언하길 포기하여 종국에 ‘당신’의 위험과 ‘당신’의 아픔 앞에서도 침묵만 자욱하리란 생각에 불편했다.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김현 평론가)
여러 주의·주장이 투고되고 개중 선별해 싣지만, ‘왜냐면’ 담당자로서 제 흠이나 위약한 처지까지 드러내는 고백류의 칼럼에 길게 눈이 가는 이유를 묻는다면 김현은 문학이란 낱말 대신 고백 문학을 넣어 같은 문장으로 설명할지도 모른다. 그 고백들을 포함하여 1주일에 대략 20~30편의 기고가 답지하고 고작 6~7편―최근 8편 정도로 늘렸다―을 발행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게재 불가’가 3분의 2에서 5분의 4인 셈인데도 모든 투고를 옳게 계량해낼 역량은 부족하다. 그런데 깜냥껏 선별해 독자청중 앞에 세운 글들이 제 의미를 다하도록 ‘지켜낼’ 재간은 더더욱 없어 보인다.
그러니 장삼이사 선량한 투고자에게까지 바야흐로 욕을 견뎌달라 청해야 할까. 글의 ‘자객’들을 대비하라 안내해야 할까. 17일은 딱 <소나기>의 소년만큼 허한 날이라 비뚤어진 심사로 공원에서 보이지 않을 자객들을 찾아보려 했던 날이다. 흡사 7월9일 이후의 날들처럼. “아픔들끼리 서로 물어뜯으며 또 다른 아픔을 만들어낼지, 아니면 그 아픔들이 함께 진정한 아픔들의 적과 맞서 싸울지” 묻는다는 “오늘 그 아픔”에 밑줄을 긋는다.(‘아픔’
은 없다) ‘신영전 칼럼’ 같은 글이 없다면 나는, 누군가는 기어코 병들어 아픈 자가 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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