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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거리의 칼럼] 천상병과 이사야 / 김훈

등록 2020-07-27 04:59수정 2020-07-27 10:33

서울 강동구 일자산 허브천문공원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2016년 10월.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서울 강동구 일자산 허브천문공원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2016년 10월.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집값이 오르면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의 재산은 저절로 늘어나고, 집이 없는 사람들은 끝내 집이 없게 된다. 이 뻔한 이치를 유식한 말로는 ‘시장의 작동원리’라고 하는 모양인데, 하나 마나 한 소리다.

집값이 올라서 아우성이 나니까 집 없는 시인 천상병(1930~1993)의 절규가 생각난다.

“누가 나에게 집을 사주지 않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목 터지게 외친다 (…) 나는 결혼식을 몇 주 전에 마쳤으니 어찌 이렇게 부르짖지 못하겠는가? (…) 그러니 거인처럼 부르짖는다. 집은 보물이다. 전세계가 허물어져도 내 집은 남겠다.”(시 ‘내집’ 중에서)

이 시는 아파트 건설과 투기 열풍이 휩쓸던 1970년대 초에 발표되었다. 그때 무허가 주택, 불량 주택 밀집지구를 철거하고 철거민들에게 신축 아파트 우선분양권을 주었는데, 돈 많은 사람들이 전국을 돌면서 이 우선분양권을 수십장씩 매집했다. 이것은 어린애 팔목을 비틀어서 과자를 뺏어 먹는 것과 같은 약탈적 거래였는데, 부동산 투기의 모델을 이루었다.

집값이 요즘처럼 오르면 약탈적 거래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시장은 늘 저절로 굴러간다.

기원전 8세기의 구약시대에도 부동산 투기는 공동체의 토대를 파괴하는 악행이었다. 비운의 예언가 이사야는 썩어서 무너져가는 조국 이스라엘을 향해서 이렇게 외쳤다.

“집을 잇달아 사들이고, 땅을 잇달아 차지하는 자들에게 저주가 있으리니 너희가 땅 위에서 홀로 있게 되리라.”(이사야 5장8절)

치솟는 집값 앞에 천상병과 이사야의 절규는 무력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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