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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우진의 햇빛] 장마 열대야

등록 2020-08-09 15:55수정 2020-08-10 02:39

이우진 ㅣ 이화여대 초빙교수(과학교육)

장마가 길어지며 하루에도 몇번씩 비가 오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한줄기 바람이라도 잡아보려고 창문을 젖혀보지만 한낮의 열기로 데워진 집 안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잠을 청해보지만 매미가 윙윙거린다. 큰비가 올 것을 미리 아는지 수증기가 손에 잡힐 듯 끈끈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 소리가 유난히 크다. 예고한 날씨를 고대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예보관의 고충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걸까? 시골 정자나무 아래 넓적한 바위에 누워서 낮잠 잘 때 들었던 매미 소리는 한여름이라도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도심의 매미는 열섬과 조명등에 스트레스라도 받은 탓인지 소리가 거칠게 들리기도 한다. 한밤에도 울어대는 장단에 익숙해지면서 한가지 버릇이 생겼다. 울음소리가 잦아들면 곧이어 후다닥 빗소리가 들리기에 창문을 닫았다가, 울음소리가 커지면 비가 그쳐 다시 열게 되는 것이다.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므로 낮보다 시원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신 습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봄이나 가을에는 습도가 높더라도 기온이 그리 높지 않아 잠자리가 쾌적하다. 하지만 장마가 물러가고 대신 북태평양 고기압이 몰고 온 열과 수증기가 우리나라를 뒤덮을 때면, 새벽이 올 때까지 기온마저 떨어지지 않아 이중고다.

우리 몸은 36.5~37℃의 좁은 범위 안에 체온을 유지해야 제 기능을 한다. 날이 더워지면 땀을 내서 체내 열을 바깥으로 내보내 체온이 오르는 것을 막아준다. 사람의 땀샘은 다른 포유류 동물에 비해 월등히 많아 독보적이다. 땀을 통한 체온 조절 기능은 더운 기후에 인류가 적응해온 결과라는 것이 진화론적 해석이다. 아프리카의 열대 지역에서 활동한 인류의 조상은 사나운 짐승이 뜸한 한낮의 뙤약볕에서 사냥에 나섰을 것이다. 밖으로는 폭염이고, 안으로는 뜀박질로 증가한 체내 열이 생존의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땀이 자유로이 체외로 나갈 수 있게 표피의 털은 짧아지고 가늘어져, 알몸의 형태로 자연이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습도가 높아지면 대기 중에 이미 수증기가 많이 차 있어, 땀이 증발하여 갈 곳이 없게 된다. 기온이 높아져 체온에 근접하면 땀이 유일한 열 배출구가 되는데, 습도마저 높으면 땀이 배출되지 않아 체온이 상승한다. 피부도 끈적거려 불쾌지수도 올라간다. 땀이 증발하는 대신 피부 위로 물처럼 흐르게 되면 가히 찜통더위 수준이 된다. 최근 10여년간 아침 최저기온이 25℃를 넘는 열대야 일수는 그 전 10년보다 50% 이상 증가하는 추세다. 다음 세기에는 지금보다 4~10배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와 있다.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 바다에서 증발하는 수증기량도 증가하고 습도도 높아지게 된다. 다음 세기에는 35℃가 넘는 고온에 상대습도 100%에 상응하는 극심한 기후조건이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지구 곳곳에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은 지난 수십만년간 진화해온 생명체에게 세찬 도전이 될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생체는 환경 변화에 더 취약해질 수도 있다. 미국인의 정상 체온이 지난 150년간 0.5℃ 떨어졌다는 연구 보고도 나왔다. 우리 몸은 체온을 높여 외부 바이러스와 싸우게 되지만, 의료 기술이 면역체계를 대신하면서 굳이 체온이 높아질 필요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우리 신체는 지구온난화에 역주행해온 셈이다. 얼마 전 솔라 오비터가 근접 촬영한 태양의 모습은 화염으로 가득하다. 크고 작은 불덩이가 만들어낸 고열의 에너지는 한결같은 세기로 지구에 다다른다. 이 에너지가 재분배되는 과정을 감시하고 관리하여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가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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