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04

2020년 1월1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턴룸에서 류허 중국 부총리(왼쪽)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을 마친 1단계 무역합의문을 나란히 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중국 지도부는 국내에서는 첨단기술 자립과 국내시장에 의존해 미국의 공세를 이겨내려는 ‘지구전’을 준비하면서,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포위망에 맞서 최대한 우군을 늘리려는 합종연횡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맞서 류허는 100년 전 리훙장이 겪은 치욕과는 다른 결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미-중 무역전쟁의 중국 쪽 ‘사령관’인 류허(劉鶴·68) 부총리가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위해 2019년 5월9일 워싱턴으로 향할 무렵, 중국 인터넷에서는 류허를 청일전쟁 패배 뒤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어야 했던 청의 북양대신 리훙장에 비유하는 글이 퍼졌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은 일본에 대만을 할양하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이제 미국이 무역전쟁을 빌미로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려 하고 있으니 류허 부총리가 절대로 굴복해선 안 된다는 여론의 ‘압박’이었다. 당시 미국은 중국 당국이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미래 산업을 주도하는 대형 국유기업과 첨단산업 분야에 대규모 보조금과 금융 특혜를 주고 해외 기업에 기술 이전을 강요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중국은 미국의 요구 대부분을 수용하는 타협안에 잠정 합의했지만, 미국은 중국의 약속을 믿을 수 없다며 중국이 합의안 이행을 국내법 개정으로 보장하겠다는 내용을 합의문에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협상을 앞두고 중국 지도부가 협상안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지나친 양보를 했다”는 비난이 류허에게 쏟아졌다. 결국 시진핑 주석이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잠정 합의안 가운데 3분의 1 정도를 빼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어진 몇번의 협상 결렬과 기나긴 줄다리기 끝에 2020년 1월15일 워싱턴에서 류허 부총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해 ‘불안한 휴전’을 이뤄냈다. 류허는 애초 ‘친미적 시장주의자’로 알려져 있었다. 하버드대에서 국제금융 등을 공부한 류허는 자원 배분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이 기본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학자 출신이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하자마자 류허를 ‘경제 책사’로 발탁한 것은 ‘금융 분야 등에서 미국과 협력을 원한다’는 신호로 여겨졌다. 류허의 급부상에는 시진핑과의 긴밀한 신뢰가 있다. 2013년 5월 시 주석이 오바마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던 톰 도닐런과 만나 “이 사람이 류허입니다. 나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라고 소개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60년대 류허가 베이징 101중학에, 시진핑이 81중학에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 간부 자제들이 다니던 두 명문 학교는 교류가 많았고 시진핑은 똑똑한 학생으로 유명했던 한살 위 류허를 알게 됐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류허는 지린성의 농촌으로 보내져 농사를 짓고 이후 군에 입대했으며 1973년부터는 6년 동안 베이징 라디오 공장에서 일했다. 1979년 인민대학에 입학한 류허는 공업경제학을 전공했고, 이후 국무원 발전연구중심과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서 근무했다. 그는 1990년대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국제금융과 무역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2003년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부주임으로서 중국 경제를 연구했다. 시진핑은 2012년 당 총서기가 되자마자 류허를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으로 발탁했다. 시 주석에게 직접 보고하며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역할이다. 류허가 맡은 첫 과제는 중국의 경제구조를 대수술하는 작업이었다.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의 방만한 경제운영,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국가재정을 과도하게 투자한 결과 부채가 급증하고, 공급 과잉, 규제받지 않는 그림자금융의 문제가 심각했다. 류허는 과잉생산을 해소할 ‘공급측 개혁’, 첨단산업과 내수를 중심으로 성장모델 전환, 국유기업의 방만한 운영 개선, 부채 축소 등의 개혁 과제를 강하게 추진하고자 했다. 하지만 2015년 여름 중국 증시가 급락하고 경제성장률도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하기 시작하자, 류허의 개혁은 경제 전반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초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2018년 3월 시진핑 2기 지도부에서 류허가 경제부총리로 승진한 직후 훨씬 심각한 도전이 밀려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애초 중국 지도부는 ‘장사꾼’ 트럼프를 만만하게 여겼다. 실제로 2018년 5월과 7월 류허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 대표단은 미국 제품을 대규모로 구입해 무역분쟁을 해결하기로 미국 대표단과 원칙적 합의를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두 차례 모두 거부해 타협은 무산됐다. 중국은 그제야 미국의 핵심 표적은 무역적자 축소가 아닌, 중국의 첨단산업 전략 무력화와 ‘국가 자본주의’ 모델 자체를 바꾸라는 요구임을 깨달았다. 미국의 전방위 공세 앞에서 류허가 추진하던 개혁은 더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미국과의 전면적인 경제·기술 패권 전쟁에 대비하는 일종의 ‘전시 경제’ 지휘관으로 류허의 역할도 수정됐다.

2019년 초 류허 부총리의 미-중 무역협상을 청일전쟁 패배 뒤 리훙장의 시모노세키조약 체결에 비유한 사진. 중국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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