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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형의 여담] ‘최초의 현대 기상학자’ 데카르트

등록 2020-08-19 16:33수정 2020-08-20 02:39

철학자 데카르트. <한겨레> 자료사진
철학자 데카르트. <한겨레> 자료사진

민형 ㅣ 워릭대 수학과 교수

극심한 장마 때문인지 지난주 강연 중 어떤 분이 일기예보의 수학에 대해서 물으셨다. 나는 인공위성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무식한 답을 현장에서 한 후 나중에 찾아보니 요새도 여전히 기상대나 라디오존데(전파를 이용한 기상 관측 기계), 즉 대기 상층으로 보내는 풍선 안의 기기로 온도, 압력, 습도, 바람의 속도 등을 측정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일기는 상당히 수학적으로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일기’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면 ‘어느 날의 대기 상태’인데 대기는 일종의 유체이기 때문에 상태의 시간 변화를 결정하는 유체역학의 방정식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런 방정식은 대기의 현 상태를 충분히 정확하게 입력하면 앞으로의 변화 양상을 정확하게 예측한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지구 표면 전체의 상태를 알아야 하니까 되도록 많은 장소에서 알아낸 대기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 정보를 모으는 데 재래식 방법과 첨단 테크놀로지가 복합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기를 관할하는 방정식은 ‘카오스’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정확도가 과도하다. 그래서 현재의 예보는 수학적 모델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론의 적당한 융합을 사람이 결정해야 하는 종류의 작업이다. 많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렇듯이 기상학에서도 인공지능의 역할이 중요한 관건이다. 굉장히 많은 데이터의 패턴을 파악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은 인공지능에 특히 적합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일기예보의 역사를 찾아보니 ‘최초의 현대 기상학자’가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였다는 약간 색다른 주장이 들어 있는 학술 논문도 눈에 띄었다.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명제가 들어 있는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 과학 논문 세편에 대한 일종의 서론이었다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잘 안 알려져 있는 것 같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철학의 실용성을 강하게 믿었기 때문에 서론에서 근본적인 방법론만 제시하면서도 그 방법론의 심각한 응용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철학 입문 강좌에서 필수적인 <방법서설>을 정독한 사람 중에 세 논문을 하나라도 읽은 사람은 상당히 소수라는 인상이다. 그중에서 과학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하학’일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좌표축’의 개념이 처음 소개돼서 많은 기하적인 문제를 대수적인 방법으로 서술하고 풀 수 있는 체계가 바로 거기에 기술돼 있다. 따라서 요새 학생들이 ‘원’이라는 기하적인 객체를 x²+y²=1로 생각하는 관점의 기초가 그 논문에 들어 있는 것이다. 나머지 두 논문 중 하나는 ‘광학’인데 17세기 과학에서 광학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당연히 데카르트의 관심사였을 것이다. 그 논문에는 빛의 굴절 법칙을 잘못 설명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지금 기준으로 판단하면 빛의 속도가 무한하다는 중요한 오류 탓이기도 하다. 세번째 논문은 묘하게도 ‘기상학’이다. 꽤 광범위한 기상 현상을 열개의 담화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이 글에는 현대 열역학의 초기 버전도 들어 있고 무지개의 형성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이론도 나온다.

2011년 12월 제주시 한경면의 고산기상대 연구원들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달린 고공관측장비인 라디오존데를 띄우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2011년 12월 제주시 한경면의 고산기상대 연구원들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달린 고공관측장비인 라디오존데를 띄우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그런데 어째서 하필 그 중요한 <방법서설>의 본론에 기상학이 포함됐을까? 나는 읽어보지도 않고 오랫동안 이 사실을 이상하게 여겨왔다. 데카르트의 비판 대상이던 스콜라 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을 여전히 믿었던 사실과 관계 있을 것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읽어보니 단서는 사실 논문 첫 페이지에 들어 있었다. 기상 현상은 예로부터 신의 영역으로 여겼는데 그것을 자연 원리로 설명할 수만 있으면 세계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기본 철학이 실현되리라는 기대가 표현돼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워낙 복잡하면서도 신기한 것이 기상 현상이기 때문에 자기의 이론으로 기술하는 도전을 그는 받아들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과학이 발달한 현재까지도 기상 현상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유체역학의 정밀한 이론도 수학적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고 이론적으로 이해된 부분들도 현실적인 계산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온갖 난관에 부딪힌다. 데카르트의 가장 유명한 집착이 어쩌면 되도록 적은 가정들로부터 많은 실질적인 추론을 해나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예측할 수 있는 미래 기간을 늘리는 데 필요한 현재 정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 카오스라는 현상의 요점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일기예보는 기계적이면서도 인간의 두뇌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공지능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많은 정보, 즉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추론하는 과학에 대해서 자신의 존재만을 공리로 여기고 싶었던 데카르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관중의 시의적절한 질문이 불러일으킨 이상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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