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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바보야, 본질은 학급당 학생수 축소야 / 전경원

등록 2020-08-20 18:07수정 2020-08-21 13:58

전경원 ㅣ 국회 정책보좌관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는 대선 공약으로 첫째도 교육, 둘째도 교육, 셋째도 교육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놀라운 것은 “학급당 학생 수 25명 미만”이라는 구체적 정책 공약을 내걸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물론이고 많은 이가 학급당 학생 수 25명 미만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공약이 던진 의미는 이젠 영국 사회도 계층이동이 가능한 사회로 들어가는 첩경을 만들겠다는 공교육 혁신의 강력한 의지 표현이었다. 물론 블레어 총리의 교육 혁신이 결과적으로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는 별개 문제이다. 접근 방식에선 본질을 명확하게 꿰뚫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의 폭발적 증가로 대유행 우려마저 감돌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2학기 개학을 앞두고 대유행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2학기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순차 등교가 불가피하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상황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할 것인지도 예측 불가능하다. 순차 등교의 가장 큰 피해는 중산층 이하의 가정에서 발생한다. 온라인 수업의 가장 큰 피해는 가정 내 돌봄 환경이 갖춰지지 못한 취약계층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고소득층은 사교육을 통해 충분한 보완이 가능하다. 등교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면 교육격차는 심화된다. 부모 세대 소득격차가 자녀 세대 교육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어렵다.

유일하고 본질적인 대안은 공교육 질을 사교육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길이다. 이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코로나19 국가재난 상황이 아니었어도 현재 적용하는 2015 교육과정의 운영을 위해선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 미만이었어야 했다. 지난 20년이 넘게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을 위해 투입된 교육재정은 없었다. 국가 부도 사태였던 외환위기(IMF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김대중 정부는 학급당 학생 수를 35명 이하로 과감하게 감축했다. 강력한 의지로 교육 여건을 개선했다. 돌이켜보니 탁월한 정책 판단이자 결정이었다. 그 후론 교육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재정을 투입하지 않고 있다. 논리는 단순하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데 왜 교육재정을 늘리는가”라는 기획재정부 논리였다. 같은 수준과 논리로 묻는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 군 복무 인력도 줄어든다. 그럼 국방 예산도 감축해야 하는가.” 교육 예산을 줄이는데 국방 예산을 줄이지 못하면 얼마나 모순적이고 근시안적 판단인가.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교육정책은 순차 등교 일정을 짜는 것이 아니다.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그린 스마트 교육 환경 개선 정책도 아니다. ‘바보야, 문제는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이야.’ 이를 통해 공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모든 교육재정 가운데 1순위가 되어야 하는 정책은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이다. 20명 미만의 학생이 20평 남짓한 교실에 전원이 등교해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해야 한다. 매일 등교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어야 교육격차와 경제적 불평등 및 계층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 비단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어도 진작에 그래야 했다. 항상 제때 해야 했을 일을 하지 못한 결과로 값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사회적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참으로 우울하고 암울한 현실이다.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는 막바지 시점에 이르렀다. 기획재정부에서 최종 검토 중인 예산안 어디에도 내년도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을 위한 예산은 편성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얼마나 더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그저 감내만 해야 하는가. 양극화와 교육격차를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은 왜 언제나 힘없는 우리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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