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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독일 훔볼트포럼 한국관의 미래 / 이진

등록 2020-08-27 18:22수정 2020-08-28 02:38

이진(Dr. Jean YHEE) l 독일 정치+문화연구소 소장

‘기회를 위기로?’―‘위기를 기회로’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뒤집어보면 독일 훔볼트포럼 한국관을 둘러싼 문제의 핵심이 보인다. 독일 내 가장 중요한 대형 문화 프로젝트에서 한국이 제 목소리를 낼 특별한 기회를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의 이미지를 오리엔탈리즘이 왜곡하고 중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전체를 과대 대표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구에 비친 한반도 문화는 단편적이거나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기 십상이었다. 이를 극복해보려던 노력도, 식민주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 지역 유물을 전시하는 유럽 대형 박물관의 관행과 사회적 인식의 빈곤함에 가로막히곤 했다.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반환하려던 당시의 우여곡절을 떠올려보면 그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훔볼트포럼은 다르다. 이 기획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반성을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했다. 두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분단과 통일이라는 집단적 기억이 집약된 독일제국의 궁궐터 전체를 오로지 비유럽권에서 빚어진 문화유산에 헌정하는 훔볼트포럼은 한국을 포함한 식민주의 경험 국가에 더욱 특별한 공간이다. 상위기관인 프로이센문화재단은 독일 수도의 문화·역사적 청사진을 아예 새로 그렸다. 즉, 서구 문명을 선보이는 기존의 베를린 관광명소 ‘박물관섬’에 버금가도록 바로 그 맞은편에 비서구 문명을 대표하는 훔볼트포럼을 건립하며 거칠게나마 균형점을 모색했다. 특히 수장품의 단순 전시가 아니라 그 노획의 어두운 역사를 성찰하고 정당한 방식의 반환까지 공론화하는 기억의 장소로서 자신을 정의하며 과거를 현재 속에서 직시하려 한다. 열강의 이해 속에서 망각되고 왜곡되던 문화와 전통이 마침내 제 목소리를 낼 주빈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알려진 것으로는 현재 한국관은 인접한 일본관이나 중국관에 비해 단지 약 10분의 1정도의 면적만을 배정받았을 뿐 아니라, 주위를 둘러싼 중국관과 구분되기 어렵게 배치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에서 대여된 조선시대 유물 일부가 한반도 문화 전체를 대표할지도 모를 상황도 문제이다. 현대미술 기획으로 이를 보완하자는 좋은 제안도 있지만, 그것으로 역사성 결여라는 태생적 한계를 넘기는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 제대로 공론화가 이뤄지지 못했다.

한국과 독일 간에 양해각서가 체결된 지 이미 6년이 지났지만, 전체 개관이 거듭 연기된 지금이라 시도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안으로는 태부족한 전시물을 순회 대여 등으로 보강할 계획을 마련하면서, 밖으로는 현재 계획보다 진전된 진정성을 담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한국관이 훔볼트포럼이라는 기획의 전체 뜻에 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독일 쪽에 차분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것은 이상론도, 구태의연한 민족주의적 감정의 발로도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는 오랜 애장품이었던 아프리카 배냉 문화유산의 반환이 논의되고, 특별전에서는 유럽 식민주의가 중·남아메리카 문화에 끼친 영향이 전면에서 다루어진다. 식민주의가 비서구 문화를 타자화하고 학문적 인식까지 지배하던 과거의 인습을 깨려는 뜻이라는데 우리가 발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과거를 향한 논란이 아닌 구체적인 결과를 지향하면서 전시예술, 고고미술학, 박물관학 그리고 기억문화 연구자 간의 소통 창구를 만들자. 그 논의를 더 훌륭한 한국관의 내용과 형식으로 녹여내자. 위기를 다시 기회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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