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조해진의 세계+] 코로나 시대, 공존을 향해

등록 2020-09-06 17:34수정 2020-09-07 02:39

조해진 ㅣ 소설가

영화 <밀양>(이창동 감독)의 원작이 된 이청준 작가의 중편소설 <벌레 이야기>를 읽다 보면 신앙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인다. 소설은 아들이 유괴된 뒤부터 신앙을 갖게 된 아내의 내면 변화를 남편 입장에서 그리는데, 그 신앙은 아들이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유괴범을 잡겠다는 의지와 그를 향한 복수심, 그리고 범인이 잡힌 뒤엔 아들을 잃은 상처에서 회복되고 싶다는 욕구로 변주된다. 그 과정에서 신앙은 그녀를 가까스로 살게 하지만, 유괴범 역시 그녀가 의지했던 그 신을 믿으며 구원받았다는 것이 밝혀진 순간 그녀는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벌레 이야기>는 신의 존재 유무나 인간의 구원 가능성 같은 논쟁적인 주제도 포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구원에 국한된 신앙은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소설을 읽은 뒤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의 재확산을 야기한 전국의 여러 교회 공동체의 반응과 태도를 보면서는 맹목적인 신앙이 자기 파괴를 넘어 이웃을 배타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시다시피 코로나19의 재확산에 책임이 있는 일부 교회 공동체는 늦게라도 각성하고 사과하기보다 오히려 희생자를 자처하거나 이 사태를 내부 결속의 계기로 삼았다.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는 코로나19가 교인에게는 시련이며 교회를 향한 정치적인 박해라는 식의 논리로 무장해 있고, 또다른 몇몇 목사들 역시 코로나19는 하나님의 심판이며 설혹 감염된다 해도 천국에 갈 테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무책임과 오만에 분노하고 환멸할 수밖에 없다. 건강과 생계의 위협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곁의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그들 신앙의 맹목성에….

고백하자면, 나는 신앙을 갖고 있다. 동시에 평생 교단에 저항하며 인격신이 아니라 자연(세계)으로서의 신을 이야기한 스피노자의 사상에 의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종교적인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성경을 읽거나 텅 빈 성당에 앉아 내 이중성이나 결함을 찾으려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신자 입장에서는 신앙이 아니라 명상이라 불러도 무관한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건 쉽지 않다. 요사이엔 내가 살아온 과정과 읽고 쓴 종이뭉치를 통해 형성된 내 서사, 그리고 그 서사 안에서 스스로 확신하고 싶었던 진정성이 때로는 타인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리게 깨닫는 중이다. 이 깨달음 너머에 타인과의 공존을 바라는 더 큰 믿음이 있기를, 나 역시 그저 기다릴 뿐이다.

아니길 바라면서도,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는 동안 우리 중 대부분은 예전보다 더 가난해질 것이고 더 외로워지리란 걸 확신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공존을 고민하자고 한다면 전적인 지지를 받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 고민을 저버리는 순간부터 진짜 고통은 도래할지 모른다. 공존, 함께 사는 것, 그것은 단순한 생각의 전환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가령 소비위축으로 힘겨워하는 임차인 입장에서 임대료를 면제해주거나 감면해주는 것을 고민해보는 것, 혹은 과도하게 책정된 세금에 분노하기보다 그 세금이 절박한 누군가에게는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 내 종교생활이 전염의 통로가 된다면 기꺼이 비대면으로 신앙생활을 전환하는 것, 그런 생각의 전환….

신앙은 결국 사랑이 아닐까. 사랑이 사랑답게 아름다우려면 상대의 눈물을 마주 볼 때이다. 순진한 생각인 줄 알면서도 나는 자기 구원과 자기 서사를 뛰어넘는 사랑다운 사랑으로 이 시대가 극복되길 기도한다. 공존을 추구하려는 마음과 태도, 그리고 행동만이 미래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