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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산하의 청개구리] 선선한 날의 냉방에 관하여

등록 2020-09-13 15:09수정 2020-09-14 02:37

김산하 ㅣ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더위보다는 비로 기억될 이번 여름도 서서히 가을로 변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확실히 선선해진 날씨를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1년 중에 이만한 계절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더위와 추위와 습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고, 그냥 자연 상태 그대로가 쾌적한 몇 안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상쾌하게 집을 나선다. 그리고 버스나 지하철에 탑승한다. 그런데 웬걸? 냉방이 아직도 여름 수준인 곳이 많다. 가게, 식당 그리고 사무실도 마찬가지. 이것이 가을을 맞이하는 이 나라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무엇이 문제냐고? 이 시원한 가을 날씨에도 냉방을 당연시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기준점이 얼마나 멀리 이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언제부턴가 에어컨의 영어 문자 그대로 공기(air)를 적절하게 조절(conditioning)하는 의미 대신 얼음장 같은 냉기를 뿜는 것이 정상상태가 되어버렸다. 지하철에도 ‘약냉방칸’이 별도의 칸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강냉방’이 일반적 기준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와도 냉방은 가동된다. 한여름에 걸리는 냉방병조차 이젠 일상이 아닌가? 한때 단속 대상이었던 ‘냉방한 채 문 열기’는 아예 영업 방식의 표준이 돼버린 듯한 형국이다.

냉방은 작금의 기후위기 시대에 매우 상징적인 이슈라 할 수 있다. 나만 시원하면 됐고 세상으로 내뿜는 열기는 나 몰라라 하는 형국은, 경제성장에만 치중하며 배출은 무시함으로써 생긴 기후변화 문제의 본질을 잘 함축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위기를 어떤 자세로 맞이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점점 더워지는 기후로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더 강한 냉방에 익숙해질수록 바깥 더위에 대한 수용력은 더욱 낮아진다. 낮아진 수용력은 더 강한 냉방을 요구하고 악순환은 계속된다. 그래서 웬만큼 ‘빵빵’하지 않으면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봄, 가을철에도 말이다.

요즘과 같은 계절을 콕 집어 냉방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냉방으로 인한 탄소배출을 감축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매우 가시적인 시기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선선할 때도 못 줄이면 대체 언제 줄인단 말인가? 냉방은 탄소배출 감축에서 예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전세계에 9억대, 한국에도 1천만대가 넘는 에어컨이 보급되어 있다. 이 모든 냉방기가 작동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막대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냉매이다. 오존층 파괴 등의 이유로 사용이 금지된 염화불화탄소(CFC)의 대체재로 등장한 수소화불화탄소(HFCs)는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무려 140~1만1700배에 달한다. 국내 냉방 및 냉동으로 인한 탄소배출 중 냉매로 인한 부분만을 조사한 논문에 의하면 1년에 총 299만2037톤이 배출된다. 이는 부탄이나 라오스 등 국가의 전체 배출량보다 큰 규모이다. 이조차 2006년의 자료이다. 10년 이상의 폭염을 거친 지금의 수준은 상상만으로 아찔하다.

덥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우선 덥지 않을 때조차 냉방에 열중하는 우리의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냉방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을 높인다는 것이 밝혀진 마당에도 모두 마스크 얘기만 했지 냉방을 끄고 창문을 열지는 않았다. 바이러스 전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또 한가지인 더위의 문제도 고려하겠다는 우리의 선택이다. 마찬가지의 선택을 통해 불필요한 시기의 과한 냉방과 같은 데에서부터 시급한 기후위기에 맞서 당장 탄소배출을 감축할 곳을 찾아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에도 여전히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두길 원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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