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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라진 학자·예술가·아이들…민족을 개조하라

등록 2020-09-15 16:12수정 2020-09-16 02:40

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06
라힐라 다우트 교수(카메라를 든 여성)가 2005년 신장의 한 마을에서 위구르인 주민들과 함께 현지 조사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작가 리사 로스(Lisa Ross) 제공
라힐라 다우트 교수(카메라를 든 여성)가 2005년 신장의 한 마을에서 위구르인 주민들과 함께 현지 조사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작가 리사 로스(Lisa Ross) 제공

중국 당국은 신장에서 극단주의·분리주의와 치르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신장 모델’은 다른 소수민족들까지 덮칠 기세다. 위구르인들의 깊은 슬픔과 원망, 비극 위에 나부끼는 승리의 깃발이란 무엇일까. 21세기에 벌어지는 ‘민족 개조’ 작업이 장기적으로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위구르 학자였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신장·新疆) 곳곳을 다니며 위구르인들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기록해 연구하고, 세계에 알렸다. 위구르 여성 가운데 처음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선구자이기도 했다. 신장대학교 교수인 라힐라 다우트(54)다.

2017년 12월12일 그가 사라졌다. 긴급한 회의가 있으니 베이징으로 오라는 당국의 연락을 받고 신장의 중심 도시 우룸치(우루무치) 공항으로 서둘러 간다며 딸에게 메시지를 남긴 뒤 연락이 끊겼다. 라힐라 교수로부터는 아직 어떤 소식도 없다. 가족과 지인들은 라힐라 교수가 중국 당국이 위구르인들을 가두는 ‘재교육 캠프’에 수감되어 있다고 짐작한다.

라힐라 다우트는 1966년 우룸치의 위구르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베이징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신장대학교에서 강의와 연구를 해왔다. 그가 신장 전역의 마을과 마자르(성자의 무덤)들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위구르 농민들의 구술과 전통 의식·순례·음악은, 사라져가고 훼손되어가는 위구르인들의 삶을 보존하려는 끈질긴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는 2011년 중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민속 문화의 전통을 보존하고 기록해서 그것이 박물관의 전시실에만 보관되지 않고 사람들 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라힐라 교수는 신장 곳곳의 마자르 수백 곳을 찾아내 그곳에 깃든 역사와 신앙, 순례 여정을 정리한 책을 2002년에 펴냈는데, 이는 연구자들뿐 아니라 위구르 농민들 사이에서도 애독서가 되었다. 마자르에는 위구르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돼 있다. 지역마다 성자들이 묻힌 마자르를 중심으로 한 토착 무슬림 신앙이 깊이 뿌리를 내렸고, 주민들은 이곳을 순례하며 기도하고, 축제를 열며 공동체의 전통을 지켜왔다. 중국 당국은 위구르인들이 급진적 이슬람에 점점 더 빠져들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라힐라 교수는 위구르가 극단주의와는 다른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을 따르는, 영성에 기반한 포용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라힐라는 중국과 전세계 학계에서 존경받는 학자였고, 위구르인 대학생과 젊은 학자들의 영웅이었다. 그는 위구르 사회에서 여성이 전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롤모델이었다.

2017년 초부터 중국 당국이 신장 지역에 ‘재교육 캠프’를 세워 위구르인들을 가두기 시작하고, 대학 등에서 ‘극단주의 반대’ 관제 집회가 열렸지만, 라힐라 교수에게까지 위험이 미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라힐라 교수는 30년 넘게 중국공산당 당원이었고, 그의 연구는 중국 문화부의 지원도 받고 있었다. 2017년 1월 라힐라 교수는 관영 언론 <신장여성>의 표지인물로 등장했고, 11월에는 베이징대학에서 위구르 여성에 대한 강연도 했다. 완벽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한족 동료들과도 원만하게 지냈다.

라힐라 교수처럼 위구르와 한족 사회를 잇는 역할을 하던 온건한 학자마저 탄압의 대상이 되자, 많은 위구르인이 절망과 공포를 느꼈다. 라힐라 교수 개인의 비극으로 끝난 것도 아니다. 그 무렵부터 위구르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려 한 지식인, 예술가, 언론인 등 많은 위구르인 엘리트가 잇따라 ‘재교육 캠프’ 또는 감옥으로 끌려갔다.

신장사범대학에서 위구르 문학을 연구하던 압둘카디르 잘랄 앗딘이 2018년 잡혀갔고, 신장대학교 총장이었던 위구르인 지리학자 타슈폴라트 티이프는 2017년 독일 학술대회에 참가하고 귀국하는 길에 체포된 뒤 사형 판결을 받았다. 작가이자 26년 동안 당이 발행하는 잡지 <신장문명>의 편집장으로 일했던 70대의 쿠르반 마무트도 실종됐다. 재교육 캠프로 끌려갔거나 수감된 것으로 짐작되는 위구르 지식인들은 명단이 확인된 이들만 해도 150명이 넘는다고 국외 위구르인 단체들은 집계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테러·극단주의·분리주의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면 왜 이런 온건한 지식인들까지 붙잡혀갔는가? 당국의 설명대로 강제수용소가 아닌 ‘직업교육 프로그램’이라면, 학자·언론인·작가들에게 왜 직업교육이 필요한가? 위구르 엘리트들을 감옥·수용소에 가둠으로써 위구르인 전체의 문화와 정체성을 약화시켜 한족으로 동화시키려는 ‘민족 개조’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고 많은 이가 우려한다.

실종된 위구르인 인류학자인 라힐라 다우트 신장대학교 교수의 석방을 촉구하는 포스터 사진작가 Lisa Ross 제공
실종된 위구르인 인류학자인 라힐라 다우트 신장대학교 교수의 석방을 촉구하는 포스터 사진작가 Lisa Ross 제공

외모, 언어, 종교, 역사, 문화, 생활 관습이 모두 중국 주류 민족인 한족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위구르인들의 독립 가능성에 대해 중국의 권력자들은 오랫동안 우려해왔다. 신장 지역은 중국 여러 왕조에 일시적 지배를 받곤 했지만 오랫동안 독자 체제를 유지했다. 중국 왕조의 지배에 완전히 장악된 것은 만주족이 통치했던 청 제국의 건륭제 시기인 1759년부터다. 1911년 청의 멸망 이후 중국의 신장에 대한 통제는 다시 흔들렸다. 군벌 지배가 계속됐고 그사이 위구르인들은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을 두차례 세우기도 했다. 1949년 중국공산당의 인민해방군이 신장에 처음 들어온 뒤, 중국 당국은 정책적으로 한족을 대규모로 이주시켰고 위구르인과 한족의 갈등과 긴장은 높아졌다. 농부나 소상점 주인, 무역업 등에 종사하는 1100만 위구르인 사회와 정부 관리나 군인으로 일하거나 대규모 사업, 자원 개발에 종사해 권력과 부를 장악한 한족들은 조금도 융화되지 않은 채 두개의 세계로 완전히 분리돼 살아왔다.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한 공존에 실패한 뒤,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21세기 최첨단 기술과 20세기 수용소 시스템을 결합해, 위구르인 전체를 중국에 충성하는 ‘착한 무슬림’ ‘한족화한 소수민족’으로 만들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위구르인들의 이슬람 종교 활동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신장 정부가 발표한 정책, 그리고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역 관리 한명당 10가구의 가정을 감시하도록 할당해 위구르인들이 기도를 하거나 모스크에 가는 것을 비롯한 ‘수상한 행동’을 상부에 보고하도록 했다. 경찰이 불시에 집에 들이닥쳐 종교 서적이나 기도용 카펫 같은 금지 품목을 수색한다. 모스크 곳곳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됐고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에 대한 충성, 민족 단결을 강조하는 구호들이 붙었다. 신장 각 지역에서 모스크와 마자르, 위구르인들의 공동묘지가 파괴되는 모습이 위성사진 등으로 뚜렷이 확인된다.

위구르인 1100만명 가운데 100만명 이상이 ‘재교육 캠프’에 수용됐다고 유엔 등이 발표한 가운데, 부모가 끌려간 뒤 남은 수많은 위구르 아이들을 중국 정부가 기숙학교나 유아원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의 고아원에 수용하고 있다는 보도들도 잇따라 나왔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가족·친지와 만남이 제한되고 중국어만 써야 한다. 위구르인의 다음 세대를 위구르어와 가족 공동체로부터 분리하려는 정책이다. 재교육 캠프에서 강제로 불임·낙태 수술을 당했다는 위구르 여성들의 증언도 잇따라 나왔다.

위구르 사회도 극과 극으로 갈라졌다. 수많은 위구르인이 경찰이나 ‘재교육 캠프’의 관리자, 간수, 검문소의 보안요원으로 고용돼 살아간다. 반면 수용소에 갇히거나 일상생활에서 끝없이 검문과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일반 주민들 사이에는 원망이 쌓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신장 모델’이 다른 소수민족 지역으로 확대되는 현상이다. 2018년 무렵부터 신장에 가까운 간쑤성, 닝샤회족자치구(닝샤후이족자치구)에서 회족 무슬림들의 기도와 예배가 제한되고, 모스크의 돔과 첨탑이 철거된 뒤 중국식 지붕으로 바뀌었다. 네이멍구(내몽골)에선 지난 9월1일 새 학기를 맞아 몽골어 교육 축소 정책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몽골어로 가르쳐온 주요 과목을 중국어로 수업하라는 정책에 맞서 몽골인 학부모·교사·학생들이 수업 거부와 시위를 벌였고,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확산됐다. 일부 조선족 학교에서도 한국어 부분이 빠지고 중국어로만 된 교과서를 쓰기 시작했다.

1949년 건국 당시 중국공산당은 지지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소련 제도를 기초로 한 민족자치를 헌법과 법률에 명시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소수민족의 종교·문화를 ‘봉건적 미신’으로 박해하는 폭력적인 파괴와 탄압이 벌어졌지만,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냈다. 이제 시진핑 정부는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변경 지역의 안보 강화를 내세워 전면적 동화정책인 ‘제2세대 민족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혁명 시대에 비해 훨씬 강해진 국가는 ‘중화민족 단결’의 깃발을 높이 들고, 첨단 감시기술까지 활용해 ‘중국화’를 강행한다.

8월28~29일 시진핑 주석은 ‘시짱(티베트)공작좌담회’를 열어 “티베트를, 분리주의를 막을 난공불락의 요새(銅墻鐵壁·동장철벽)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시 주석은 “정치·이념 교육을 강화해 중화를 사랑하는 씨앗을 청소년들의 가슴 깊은 곳에 심어야 하며, 티베트 불교가 사회주의에 적응하도록 ‘중국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중국 당국은 신장에서 극단주의·분리주의와 치르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신장 모델’은 다른 소수민족들까지 덮칠 기세다. 위구르인들의 깊은 슬픔과 원망, 비극 위에 나부끼는 승리의 깃발이란 무엇일까. 21세기에 벌어지는 ‘민족 개조’ 작업이 장기적으로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박민희 | 논설위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중국과 이란>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혐중’에 반대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공정한 이해와 동행을 희망한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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