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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형의 여담] 원자론과 세균론?

등록 2020-09-16 17:11수정 2020-09-17 10:34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볼츠만의 무덤. 그의 흉상 위로 엔트로피 정의가 적혀 있다. 위키피디아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볼츠만의 무덤. 그의 흉상 위로 엔트로피 정의가 적혀 있다. 위키피디아

몇년 전에 옥스퍼드대학의 보들리언 도서관에서 대량의 헌 수학책들을 수학연구소로 배달해서 공짜로 배포한 일이 있었다. 책보다 공간이 귀한 시대에 계속 늘어나는 장서를 도서관들이 이런 식으로 처분하는 일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내 소유의 책들도 귀찮은 짐으로 여긴 지 오래됐기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한두 번쯤 연구소 바닥에 널려 있는 먼지 덮인 고서들을 지나면서 훑어보다가 루트비히 볼츠만이 쓴 ‘맥스웰의 전기와 빛 이론 강의록’ 초판이 눈에 띄어서 재빨리 차지해버렸다. 19세기 중반에 전자기학의 체계적인 이론을 정립한 맥스웰은 다른 한편으로 기브스, 그리고 볼츠만 자신과 함께 통계 물리의 창시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볼츠만이 설명하는 맥스웰의 이론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통계 물리는 수많은 미세 원자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부터 일상적인 물체의 성질들이 어떻게 발현되는가 설명하는 이론이기 때문에 현재의 원자론, 즉,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가설이 받아들여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본 물질이 물 한 컵, 우리의 몸, 더 나아가 지구 전체나 태양 같은 별을 형성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한 수학적 프레임워크 없이 지금도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서양 사상사에서 원시적인 원자론이 기원전 5세기경에 데모크리토스에 의해서 창시되고 에피쿠로스에 의해서 기원전 4세기쯤 어느 정도 체계화됐다고 전해지지만 믿을 만한 과학이 되는 데는 수천년이 걸린 것 같다.

볼츠만의 책을 집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표제지에 저자의 서명이 돼 있다는 조금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 책은 20세기 초에 도서관에 기증된 기록이 붙어 있기 때문에 볼츠만이 1894년 명예학위를 받으러 옥스퍼드에 왔을 때 소유자가 서명을 부탁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해가 볼츠만 커리어의 절정기였을 것도 같다. 지금은 일반인에게도 알려진 ‘엔트로피’의 개념을 확률론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그의 이론이 영미권에서 인정받고 있었으나 대륙에서, 특히 그가 일하던 빈에서는 원자론에 대한 거센 비판이 주류를 이루어서 볼츠만은 상당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당시 많은 독일권 철학자들은 감각의 세계를 초월하는 원자의 존재를 믿지 않았고 대륙 과학 철학계의 거장 마흐가 그의 이론을 회의적으로 보며 개인적으로도 심한 공격을 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흐를 비롯한 동료들과의 갈등 때문에 그는 1900년에 라이프치히로 자리를 옮겼다가 마흐가 은퇴한 1902년에 빈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도 계속된 철학적 비판과 열악한 건강 상태를 견디지 못한 나머지 볼츠만은 1906년에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가족과 휴가 중 목매달아 자살했다. 볼츠만의 종말은 우리 시대에 누구에게나 당연시되는 원자의 존재 이론이 얼마나 험난한 역사적인 난관을 통과해야만 했는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원자론의 초기 발전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책이 어쩌면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질>(De Rerum Natura)일 것이다. 7400행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시 형식을 갖춘 이 책은 기원전 1세기에 로마 독자들에게 에피쿠로스 철학을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저술되었기 때문에 원자의 성질과 작용에 대한 상세한 가설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책은 9세기 이후로 거의 읽히지 않다가 15세기에 완전본이 재발견되면서 르네상스 사상가들을 통해 17세기 과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시에서 원자를 일컫는 말 중에 ‘씨’라는 뜻의 semina가 자주 사용된다. 책은 마지막 장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일어난 아테네의 페스트 이야기를 상세히 다루다가 갑작스럽게 끝나는데 그 대목에서 질병 또한 씨를 통해서 전염된다는 놀라운 가설이 나온다. 눈에 안 보이는 세균이 병을 옮긴다는 이론은 19세기 중엽 파스퇴르가 백신의 개발을 체계화한 이후에 과학적 정설이 되었지만 초보적인 버전은 수천년 전에 이미 나와 있었다는 이야기다.

최근에 코로나에 대한 대화를 하던 중 지인이 “과학이 발전했다는 현대에도 코로나를 이기는 방법이 마스크 같은 원시적인 도구밖에 없다”는 유감을 표현하기에 마스크의 유용성을 발견하기까지 필요했던 수많은 개념적 비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크레티우스로부터 볼츠만과 파스퇴르에 이르기까지 원자론과 세균 이론이 상당히 비슷한 경로를 따라서 전파된 것 같기 때문에 두 이야기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과학 역사의 관점에서 탐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민형 ㅣ 워릭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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