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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거리의 칼럼] 꼰대 / 김훈

등록 2020-10-05 04:59수정 2020-10-05 09:42

<소학>의 서문인 ‘소학제사’(小學題辭)는 동양의 아름다운 문장이다. 주희(1130~1200)는 224자의 짧은 글에서 마음의 힘을 바탕으로 인의예지를 이루는 길을 청소년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물을 뿌려서 마당을 쓸고 남의 말에 공손히 응대해라.”

이것이 소학의 가르침이라고 주희는 말했다. 주희의 글은 맑아서 ‘왜 그러냐?’고 반문할 수 없다. 이 글의 맨 끝에 주희는 이렇게 썼다. “이것은 내가 노망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주희의 시대에도 젊은이들이 ‘꼰대’를 혐오하는 풍조가 있었던 모양이다. 주희보다 1500년 앞선 <시경>에도 젊은이들이 노인의 말을 조롱한다는 구절이 있으니, 노인 혐오는 인류의 오래된 정서이다.

나도 젊었을 때 꼰대를 혐오했다. 그 시대의 꼰대들은 식민지 체험, 전쟁 체험을 내세우며 젊은이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광복 후에 상해나 만주에서 돌아온 어른들은 더욱 권위주의가 심했다. 나도 이제 꼰대 세대가 되었다. 내 또래의 꼰대들은 국민소득 60달러에서 3만달러를 달성한 위업(!)과 그 과정에서 온갖 비리와 억압을 견디어낸 수용 능력을 권위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주희는 젊은이들을 훈계하는 일의 어려움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의 꼰대들을 양산해낸다. 꼰대의 집단적 특징은 듣기(listening)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지금 이웃의 비명을 듣지 못하고, 경주마처럼 시야가 가려져서 이익을 향해 돌진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나는 알고 있다. 이 ‘젊은 꼰대’들이 늙으면 나보다 더 꽉 막힌 꼰대가 된다. 이것은 내가 노망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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