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혁 ㅣ 전국부장
최근 서울시 서초구가 공시지가 9억원 이하 주택의 재산세를 25% 감면하는 안을 확정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지난 8월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1주택자 재산세 50% 감면 방안’을 밝힌 지 두달이 채 안 돼 이뤄진 일이다. 재산세의 절반은 서울시에서 취합해 25개 자치구가 나누는 만큼 ‘부자’ 구의 일방적인 재산세 감면은 다른 ‘가난한’ 구들에 손해를 끼친다는 비판을 받은 끝에, 감면 폭이 서초구 몫 재산세(50%)의 절반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말이다. 서초구의 감세안은 서울시구청장협의회에도 상정됐지만 조 구청장을 제외한 모든 구청장이 반대해 24 대 1로 부결됐다. 재정 여력이 떨어지고 싼 집이 많은 가난한 구일수록 세수 감소 폭이 크다는 점이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서초구의 재산세 감면이 서울시 자치구들 사이 격차 문제를 환기한 셈인데, 정작 더 큰 문제는 서울(및 수도권)과 지방 사이 격차다.
서울·부산시는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들에게 매달 참전수당 10만원을 지급한다. 대구·인천 등은 8만원이다. 하지만 전북도가 지급하는 참전수당은 월 1만원에 불과하다. 전남이나 충남은 아예 참전수당이 없다. 기초단체 지급분까지 더하면 지역별 편차는 더욱 커진다.
서울시는 2017년 저소득 국가유공자에게 매달 10만원씩 지급하기 시작한 데 이어 올해 3월엔 저소득 독립유공자 후손에게도 매달 20만원씩 생활지원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7월엔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유족에게도 매달 10만원씩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특수계층만의 얘기도 아니다. 같은 노인이라도 경제적 여건이 나은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사는 중산층은 무료 지하철을 타고 시·도 경계까지 넘나들지만, 시골 군 단위 꼬부랑 할매 할배들은 대부분 제 돈 내고 버스를 타야 한다.
그런 차이는 최근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더욱 극명해졌다. 인구수 1340만명으로 최대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가 재난기본소득(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에 ‘선방’을 날리며 중앙정부 정책을 견인했다면, 서울시는 소상공인(자영업자생존자금·고용유지지원금), 예술인(공연팀 기획제작비 지원), 청년(청년희망일자리·청년월세 지원), 스타트업(기술인력 1만명 인건비 지원) 등 취약계층별로 다양한 맞춤형 지원책을 내놓으며 다른 시·도들을 압도했다. 그제(4일)에도 서울시는 무급휴직자 5500명에게 두달 동안 한달 최대 100만원씩 지원하고, 서울형 강소기업 200곳에서 일한 청년인턴 400명에게 두달 동안 월 250만원씩 급여를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방은? 상대적으로 조용하기만 하다.
주민들 손으로 자치단체장을 뽑은 1회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 어느새 25년이 흘렀다.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뿌리내리고 발전할수록 지자체의 책임과 자율성은 커지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분권을 말하기에는 권한을 나눠 가질 주체들 사이 격차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격차를 방치한 채 분권과 자율성을 확대하면? 격차는 커지고 수도권(도시) 집중은 가속화할 뿐이다.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가 맨땅에서 경쟁하도록 방치해놓으면 누가 승리하겠는가. 위기 땐 더욱 그렇다. 누구라도 지원이 많은 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실제 고용정보원은 얼마 전 ‘코로나19가 수도권으로 인구 유입을 증가시키고 지방인구 소멸 위험을 가속화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이상호 연구위원, ‘포스트 코로나19와 지역의 기회’ 보고서)
서울시의 다양한 맞춤형 지원책에 적극 동감하지만, 거주지에 따라 사회로부터 부축을 받는 정도가 다르다는 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책 책임자 가운데 누구 하나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대안을 모색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는 사이 2014년 50.3%, 2015년 50.6%, 2016년 52.5%, 2017년 53.7%로 올랐던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2018년 53.4%, 2019년 51.4%, 2020년 50.4%로 다시 낮아지는 중이다. 공교롭게도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나타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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