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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삶을 무릅쓰는 시

등록 2020-10-15 15:03수정 2020-10-16 02:41

최재봉 ㅣ 책지성팀 선임기자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은 국내 영문학자들 사이에서도 그리 잘 알려진 이는 아니라고 한다. 그는 시집 열두권과 몇권의 에세이를 출간했는데, 한국에 번역된 책은 한권도 없다. 류시화 시인의 편역 시집 <마음챙김의 시>와 <시로 납치하다> 등에 그의 시가 한 편씩 소개되어 있는 정도다.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눈풀꽃’ 종결부)

“살아 있는 당신의 친구들은 서로 포옹하며/ 길에 서서 잠시 얘기를 주고받는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저녁 산들바람이/ 여인들의 스카프를 헝클어뜨린다./ 이것이, 바로 이것이/ ‘운 좋은 삶’의 의미이므로./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므로.”(‘애도’ 종결부)

류시화 시인이 소개한 두 시는 소재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지만 주제의식에서는 통하는 바가 있다. ‘눈풀꽃’은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 발표 자료에서도 인용한 작품으로, 제목이 된 눈풀꽃은 복수초처럼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이른 봄에 꽃을 내미는 수선화과의 흰 꽃이다. 이 식물의 목소리를 취한 시는 긴 겨울을 어두운 땅속에서 보낸 눈풀꽃이 추위와 두려움을 뚫고 새로운, 또 하나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의 경이와 벅찬 설렘을 담았다.

‘애도’의 이인칭 화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의 장례식에 친구들이 모인다. 평소 의견이 맞지 않던 친구들이 고인이 된 당신의 사람됨과 “운 좋은 삶”에 대해서는 한결같은 칭송의 말로 하나가 된다. 눈물까지 흘려 가며 경쟁하듯 쏟아내는 덕담에 당신은 심지어 혐오와 공포를 느낄 지경이지만, “다행히 당신은 죽었다”. 이윽고 해가 기울고 모였던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 죽은 자의 내면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혐오와 공포를 유발했던 친구들이 “고통스러울 만큼 격렬한 질투”의 대상으로 바뀌는 것. 질투의 근거는 단 하나,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다. ‘운 좋은 삶’이란 이미 살아 버린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영위되는 것이라는, 지극히 현세적인 인생관을 담았다.

삶을 찬미하고 시련에 맞선 투쟁을 고무하는 글릭의 시들은 코로나19로 지치고 낙담한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용기를 준다. 물론 글릭의 다른 시들 가운데에는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을 표현한 작품도 적지 않아서, 심지어 어느 평자는 그를 가리켜 ‘무너진 세계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런 시 세계를 통해서도 그는 어디까지나 삶과 투쟁의 편에 선다는 사실이다.

번역문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글릭의 시는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명료하고 단순한 언어로 삶과 세계의 깊은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그의 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거나 자신의 아픈 경험을 반추하는 데에서 출발한 그의 시들은 자연이나 개인사라는 한정된 틀을 벗어나 보편적 울림으로 나아간다.

‘눈풀꽃’에서 류시화 시인이 “기쁨에 모험을 걸자”고 번역한 대목의 원문은 “risk joy”다. 여기서 ‘risk’는 동사로 쓰였고 모험이나 위험을 무릅쓴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기쁨이 모험이나 위험처럼 무릅써야 하는 어떤 것으로 취급된다는 데에 이 구절의 묘미가 있다. 삶이라는 기쁨은 누리고 음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위험으로서 부담처럼 짊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반어적 인식이 이 소박해 보이는 시에 철학적 깊이를 부여한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시집 <야생 붓꽃>의 표제작은 “고통의 끝에는/ 문이 있었다”는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시의 화자인 야생 붓꽃은 눈풀꽃과 같은 구근 식물이다. 그는 “어두운 땅속에 묻힌/ 의식으로서/ 생존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는 말로 가사(假死) 상태의 고통을 표현한다. 그러나 “영혼으로 존재함에도/ 말을 할 수 없는” 죽음 아닌 죽음의 상태는 어느 순간 끝이 나고, 부활한 야생 붓꽃은 마침내 선언한다, “무엇이든/ 망각에서 돌아오는 것은/ 목소리를 찾아서 돌아온다”고. 글릭은 그렇게 되찾은 목소리를 포착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스웨덴 한림원은 우리가 미처 듣지 못했던 글릭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었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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