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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경허 스님인가, 한암 스님인가 / 김범창

등록 2020-10-22 18:21수정 2020-10-23 10:36

월정사가 한암 스님이라고 소개한 진영. 김범창 제공
월정사가 한암 스님이라고 소개한 진영. 김범창 제공
금상선사의 경허 스님 진영. 김범창 제공
금상선사의 경허 스님 진영. 김범창 제공
논란이 없는 한암 스님의 진영. 김범창 제공
논란이 없는 한암 스님의 진영. 김범창 제공

여기 정좌 자세의 진영(眞影, 조사나 고승대덕의 초상화)이 한장 있다. 진영은 또렷하게 인화되어 흑백이긴 하나 얼굴 판독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진영 속 인물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엇갈리는 주장이 있다. 한쪽은 ‘경허 스님’이라고 하는데 다른 한쪽은 ‘한암 스님’이라고 한다.

이런 논란은 두 분 스님이 우리나라의 위대한 고승이기에 간과될 수 없으며 사제지간인지라 민망하다. 양쪽 주장이 모두 틀릴 수는 있어도 모두 맞을 수는 없는 게 뻔한데도 해결의 기미가 없다. 진실이 가려지는 한, 두 분 스님에 대한 결례는 물론 의식 있는 불자들의 원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 불자로서 필자가 이 문제를 지적하게 된 배경과 소견을 피력한다.

유교의 나라 조선 말기에 혜성같이 나타나 한국 불교의 중흥조로 칭송되는 경허(鏡虛, 1849~1912) 스님의 일대기는 최인호 작가의 <길 없는 길>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09년 7월 필자는 총 4권으로 이루어져 만만찮은 분량의 그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초인적인 구도행과 기이해 보이는 해탈법문 등 비범한 소재에 작가 특유의 구성력이 더해져 흥미진진하였기 때문이다. ‘경허’라는 두 글자가 뇌리 깊이 각인되었고 스님에 대해 더 알고 싶던 차에 2017년 경허 선시 강좌를 수강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경허 스님과의 시공간 거리감이 좁혀진 데는 스님의 진영이 한몫했다.

“내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 봄날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는 말을 남기며 1925년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온 한암(寒岩, 1876~1951) 스님은 이후 입적할 때까지 동구불출한다. 네차례나 종정에 추대되기도 한 스님은 한국전쟁 당시 절체절명의 소각 위기에 처한 상원사를 목숨 걸고 수호한다. 오대산 줄기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스님에 대한 관심이 컸던 필자는 스님의 법어집 <한암일발록>을 구해 보기도 하였다. 한암 스님과의 시공간 거리감이 좁혀진 데도 역시 스님의 진영이 한몫했다.

2018년 2월 오대산 월정사 성보박물관을 관람하던 필자는 한암 스님의 괘진(벽 등에 걸린 죽은 고승의 진영) 앞에서 어이가 없었다. 필자의 인식상 그 괘진 속 인물은 한암 스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물관 측으로부터 구해 들은 설명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2016년 사단법인 경허연구소는 인천 금상선사에서 발견된 경허 스님의 진영과 월정사 쪽 진영의 여덟가지 부분을 서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논란의 진영 속 인물이 경허 스님이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불교티브이>가 방영한 월정사 성보박물관 영상자료 속에 논란의 괘 진영이 나오는 것을 본 필자는 재차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월정사 측은 경허연구소의 주장을 경청하고 이 진영 속 인물이 한암 스님이 틀림없는지 원점에서 재고해보기 바란다. 필자는 세가지 사항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 첫째, 논란의 진영이 한암 스님의 진영이 된 경위, 둘째, 논란의 진영과 논란이 없는 진영 속 인물이 같은 한암 스님인 이유, 셋째, 논란의 진영 속 인물과 인천 금상선사 진영 속 인물의 동일인 여부에 대한 입장 등이다.

관계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거나 양쪽이 공개 합동토론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류를 인정한다면 논란의 진영을 무(無)논란의 진영으로 대체하기 바란다. 언제 어디서건 누구에게나 오류는 있을 수 있지만 일방적인 자기주장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류 시정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로만 불교계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범창 | 전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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