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좌파 학생들이 묻다 ‘중국은 과연 사회주의인가?’

등록 2020-10-27 15:35수정 2020-10-28 02:35

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09
선멍위가 2018년 여름 자스커지 공장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 셔츠에는 ‘단결이 힘이다’라고 쓰여 있다. 웨이보 갈무리
선멍위가 2018년 여름 자스커지 공장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 셔츠에는 ‘단결이 힘이다’라고 쓰여 있다. 웨이보 갈무리

시진핑 사상을 ‘21세기 마르크스 사상’으로 떠받드는 중국공산당이 불평등에 맞서 노동자들을 지원하려는 좌파 학생들을 탄압하는 현실은 기묘한 질문을 던진다. 시진핑 지도부가 든 마르크스주의 깃발과 대학생·노동자들이 든 마르크스주의 깃발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인가.

2015년 6월 선멍위(沈夢雨·28)는 중국 남부 광둥성 광저우의 명문 중산대학에서 수학·컴퓨터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최첨단 정보통신(IT) 기업에 취직해 화려한 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스펙이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공장노동자였다. 선멍위는 “순간의 흥미 때문이 아닌, 내 삶의 여정에 깊이 뿌리를 둔 선택”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면서 노동자들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농민공들의 현실에 대한 강좌를 듣는데,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우리 대학생들도 기득권자라고 할 수 있나요?” ‘기득권자’라는 말이 그는 너무나 아팠다. 여유 있는 집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미래가 창창한 자신과 너무나 다른 처지의 젊은이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 동남부 공업지대에서 청춘을 바쳐 중노동을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2억9천만 농민공들의 처지를 그는 떠올렸다.

그는 노동법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공단, 농민공 거주지역, 공사현장 등을 다니며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아갔다. 2014년 여름 광저우 대학가에서 일어난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관리회사가 임금과 복지비를 떼어가고 사회보험을 체납하는 등 부당한 행위를 해온 것을 노동자들이 고발했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선멍위를 비롯한 학생들이 20여일간 노동자들과 함께 싸운 끝에, 관리회사로부터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앞으로도 계속 노동자들과 함께 빼앗긴 존엄과 권리를 되찾아야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선멍위는 광저우의 자동차부품 회사인 르훙기계전자 공장에서 엔진과 변속기를 생산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간단한 훈련을 받고 처음 작업장에 들어갔을 때 기계의 굉음이 고막을 찌르고 기름 냄새가 훅 끼쳤다. 작업장에는 금속 먼지가 가득했다. 나는 벤젠 등 화학물질의 위험을 알리는 표시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른 노동자들은 얇은 일회용 마스크를 쓰거나 그것조차 쓰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비염, 기관지염, 난청, 백혈구 감소 등 온갖 질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노동자들에게 선택의 권리란, “임금이 너무 낮아 주말에도 휴일근무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산재를 신청하면 보너스가 깍이기 때문에 산재신청을 포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관리자의 학대와 욕설에도 묵묵히 참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깨닫았다. 2018년 3월 말 동료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아 임금협상 대표로 선출된 선멍위가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자, 회사 간부들은 그를 위협하고 협박한 끝에 해고했다.

이 무렵 광둥성 선전의 기계 제조회사인 자스커지(佳士科技·Jasic)에서 노동자들이 독립노조 설립에 나섰다. 휴일 없는 매일 12시간 노동, 식사시간 이외 휴식 금지, 벌금과 초과근무 강요 등 억압적 노무 관리에 불만을 느낀 노동자들이 독립노조 결성에 나섰다. 사측은 선수를 쳐서 어용 노조를 설립했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급하게 1000여명 직원 가운데 89명의 서명을 받아 당국이 관할하는 중화총공회 지역사무소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냈지만 거부당했다. 독립노조 설립을 주도한 노동자 10여명은 해고되고 체포됐다.

7월 말 선멍위는 전국 각지의 좌파 대학생들과 ‘자스커지 노동자 지원단’을 구성했다. 선멍위와 50여명의 대학생은 경찰서와 자스커지 공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리는 글과 사진 등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전국적인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이들의 작은 날갯짓은 무자비한 탄압에 짓밟혔다. 8월11일 선멍위는 정체불명의 남성들에게 끌려갔다. 8월24일 새벽 무장경찰이 숙소에 들이닥쳐 베이징대 학생 웨신을 비롯한 대학생들과 자스커지 노동자 50여명을 한꺼번에 체포했다.

이를 시작으로, 당국은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 중국 각지에서 좌파 학생 조직과 노동운동 조직의 뿌리 뽑기에 나섰다. 2018년 11월 자스커지 지원활동에 나섰던 학생들이 관련된 베이징대, 인민대, 난징대 등 전국 주요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학습 조직들의 등록이 금지됐다. 당국은 마르크스주의 학회 학생들을 불러, 선멍위·웨신 등 체포된 학생 10명이 강제로 죄를 자백하는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노동자들과 관련된 어떤 행동에도 참가하지 말라고 위협했다. 체포된 동창생 웨신의 석방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이던 베이징대 학생 수십명도 체포됐다. 2019년에는 광둥성의 대표적인 노동 관련 엔지오 활동가들, 노동자들의 소식을 알리는 독립언론을 운영하던 이들이 잇따라 체포돼 ‘국가정권전복’ ‘사회소란’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선멍위와 웨신 등은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다.

자스커지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들과 학생들. 자스커지지원단 누리집
자스커지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들과 학생들. 자스커지지원단 누리집

고작 50여명의 대학생이 노조를 결성하려다 해고된 노동자들을 지원한 ‘작은 사건’에 왜 당국은 이토록 무자비한 탄압을 벌였을까?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중국 수출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동·남부 연해 지역의 공장으로 모여들었다. 호적에 ‘농민’으로 분류된 이들은 도시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견디고 주거, 자녀 교육, 복지, 의료 등에서 차별을 받으며 ‘2등 시민’으로 살아간다. 이들 2억9천만 농민공들의 희생으로 중국이 벌어들인 엄청난 무역흑자는 공산당, 국유기업, 권력층과 연결된 기업가들에게 큰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농민·농민공들은 성장의 정당한 몫을 받지 못했다.

2010년대 들어 더 나은 처우와 독립노조 설립 등을 요구하는 젊은 노동자들의 시위와 저항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010년 혼다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신세대 농민공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서 에스엔에스를 활용해 자신들의 대의를 널리 알리면서, 결국 회사와 협상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킨 것은 중국 노동운동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 무렵 중국 남부에서 홍콩 시민단체 등의 지원을 받아 노동운동 조직들이 성장했다. 한편에서는 중국의 심각한 빈부격차와 부패 등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들이 마르크스 학회에서 마오쩌둥 사상의 영향을 받으며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조직들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중국공산당의 역사를 돌아보면, 엘리트들이 농민과 손을 잡았을 때,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듯 혁명의 불길을 일으켰다. 1989년 천안문(톈안먼) 시위의 한계는 학생들이 노동자, 농민과 제대로 연대하지 못한 것이었다. 자스커지 사건은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쩌둥 사상(마오주의)에 따라 중국 사회를 바꾸려 한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노학연대’를 이루고 함께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중국공산당에는 매우 민감한 경고음이 되었을 것이다. 그해 봄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으로 당국이 느낀 위기감도 강경탄압의 원인으로 보인다.

좌파 학생들이 노동자들과 연대에 나선 배경에는 지금의 중국을 사회주의로 볼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상황을 중국공산당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 규정했지만, 그 현실이 과연 사회주의인가, 포장만 다른 자본주의인가의 논쟁은 수십년 동안 이어져왔다.

1990년대 초 공산당 내 좌파가 덩샤오핑이 추진하던 시장화 개혁에 반대해 제기한 ‘성이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姓社姓資)란 논쟁이 있었다. 국유기업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정리해고를 당하던 1990년대에는 신좌파들이 중국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해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이들은 이후 후진타오 정부가 농업세 폐지 등으로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서구식 모델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중국 국가의 역할을 긍정하는 중국모델론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2010년 중국 광둥성 혼다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AP 연합뉴스
2010년 중국 광둥성 혼다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AP 연합뉴스

시진핑 정부 들어 중국공산당이 노동운동을 강하게 탄압하자, 2016년 좌파들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다시 논쟁이 시작됐다. 루디(盧荻) 인민대 교수 등은 중국 국가가 금융화를 억제하고 국유경제를 바탕으로 인민의 복지를 향상시켜 신자유주의에 일정하게 맞서고 있으므로 진보적 변화의 축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푼응아이(潘毅) 홍콩대 교수 등은 중국이 이미 신자유주의적 세계체계에 완전히 동화된 자본주의 국가가 됐고 노동을 탄압하고 있으므로, 노동자들과 연대해 중국의 현 체제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스커지 노동자들을 지원한 좌파 대학생들은 푼응아이 교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자스커지 노동자들과 연대한 학생들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왜 그 체제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도리어 자본가의 편을 드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이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이라며 “공산당 통치와 사회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노동자들을 조직해 혁명의 이상에서 멀어진 체제를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자스커지 운동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이들의 활동을 실마리 삼아, 당국은 온갖 어려움을 뚫고 성장해온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의 주요 인물과 조직들을 궤멸시켰다.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이상주의와 희생정신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섣부른 전략으로 너무 큰 희생을 초래했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이들이 마오주의 노선을 내세웠기 때문에 자유주의 세력과 연대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중국공산당은 “시진핑 사상은 현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이며, 21세기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발전”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학기부터 베이징대, 칭화대 등 중국 37개 주요 대학은 시진핑 사상 강의를 시작했다. 시진핑 사상을 ‘21세기 마르크스 사상’으로 떠받드는 중국공산당이 불평등에 맞서 노동자들을 지원하려는 좌파 학생들을 탄압하는 현실은 기묘한 질문을 던진다. 시진핑 지도부가 든 마르크스주의 깃발과 대학생·노동자들이 든 마르크스주의 깃발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인가.

※선멍위의 글 ‘후회 없는 선택’(2018), 중국노동통신(CLB), 궁차오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씀.

박민희 ㅣ 논설위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중국과 이란>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혐중’에 반대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공정한 이해와 동행을 희망한다. minggu@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