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09

선멍위가 2018년 여름 자스커지 공장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 셔츠에는 ‘단결이 힘이다’라고 쓰여 있다. 웨이보 갈무리
시진핑 사상을 ‘21세기 마르크스 사상’으로 떠받드는 중국공산당이 불평등에 맞서 노동자들을 지원하려는 좌파 학생들을 탄압하는 현실은 기묘한 질문을 던진다. 시진핑 지도부가 든 마르크스주의 깃발과 대학생·노동자들이 든 마르크스주의 깃발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인가.2015년 6월 선멍위(沈夢雨·28)는 중국 남부 광둥성 광저우의 명문 중산대학에서 수학·컴퓨터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최첨단 정보통신(IT) 기업에 취직해 화려한 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스펙이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공장노동자였다. 선멍위는 “순간의 흥미 때문이 아닌, 내 삶의 여정에 깊이 뿌리를 둔 선택”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면서 노동자들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농민공들의 현실에 대한 강좌를 듣는데,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우리 대학생들도 기득권자라고 할 수 있나요?” ‘기득권자’라는 말이 그는 너무나 아팠다. 여유 있는 집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미래가 창창한 자신과 너무나 다른 처지의 젊은이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 동남부 공업지대에서 청춘을 바쳐 중노동을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2억9천만 농민공들의 처지를 그는 떠올렸다. 그는 노동법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공단, 농민공 거주지역, 공사현장 등을 다니며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아갔다. 2014년 여름 광저우 대학가에서 일어난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관리회사가 임금과 복지비를 떼어가고 사회보험을 체납하는 등 부당한 행위를 해온 것을 노동자들이 고발했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선멍위를 비롯한 학생들이 20여일간 노동자들과 함께 싸운 끝에, 관리회사로부터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앞으로도 계속 노동자들과 함께 빼앗긴 존엄과 권리를 되찾아야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선멍위는 광저우의 자동차부품 회사인 르훙기계전자 공장에서 엔진과 변속기를 생산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간단한 훈련을 받고 처음 작업장에 들어갔을 때 기계의 굉음이 고막을 찌르고 기름 냄새가 훅 끼쳤다. 작업장에는 금속 먼지가 가득했다. 나는 벤젠 등 화학물질의 위험을 알리는 표시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른 노동자들은 얇은 일회용 마스크를 쓰거나 그것조차 쓰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비염, 기관지염, 난청, 백혈구 감소 등 온갖 질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노동자들에게 선택의 권리란, “임금이 너무 낮아 주말에도 휴일근무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산재를 신청하면 보너스가 깍이기 때문에 산재신청을 포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관리자의 학대와 욕설에도 묵묵히 참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깨닫았다. 2018년 3월 말 동료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아 임금협상 대표로 선출된 선멍위가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자, 회사 간부들은 그를 위협하고 협박한 끝에 해고했다. 이 무렵 광둥성 선전의 기계 제조회사인 자스커지(佳士科技·Jasic)에서 노동자들이 독립노조 설립에 나섰다. 휴일 없는 매일 12시간 노동, 식사시간 이외 휴식 금지, 벌금과 초과근무 강요 등 억압적 노무 관리에 불만을 느낀 노동자들이 독립노조 결성에 나섰다. 사측은 선수를 쳐서 어용 노조를 설립했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급하게 1000여명 직원 가운데 89명의 서명을 받아 당국이 관할하는 중화총공회 지역사무소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냈지만 거부당했다. 독립노조 설립을 주도한 노동자 10여명은 해고되고 체포됐다. 7월 말 선멍위는 전국 각지의 좌파 대학생들과 ‘자스커지 노동자 지원단’을 구성했다. 선멍위와 50여명의 대학생은 경찰서와 자스커지 공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리는 글과 사진 등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전국적인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이들의 작은 날갯짓은 무자비한 탄압에 짓밟혔다. 8월11일 선멍위는 정체불명의 남성들에게 끌려갔다. 8월24일 새벽 무장경찰이 숙소에 들이닥쳐 베이징대 학생 웨신을 비롯한 대학생들과 자스커지 노동자 50여명을 한꺼번에 체포했다. 이를 시작으로, 당국은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 중국 각지에서 좌파 학생 조직과 노동운동 조직의 뿌리 뽑기에 나섰다. 2018년 11월 자스커지 지원활동에 나섰던 학생들이 관련된 베이징대, 인민대, 난징대 등 전국 주요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학습 조직들의 등록이 금지됐다. 당국은 마르크스주의 학회 학생들을 불러, 선멍위·웨신 등 체포된 학생 10명이 강제로 죄를 자백하는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노동자들과 관련된 어떤 행동에도 참가하지 말라고 위협했다. 체포된 동창생 웨신의 석방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이던 베이징대 학생 수십명도 체포됐다. 2019년에는 광둥성의 대표적인 노동 관련 엔지오 활동가들, 노동자들의 소식을 알리는 독립언론을 운영하던 이들이 잇따라 체포돼 ‘국가정권전복’ ‘사회소란’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선멍위와 웨신 등은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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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커지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들과 학생들. 자스커지지원단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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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중국 광둥성 혼다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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