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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추-윤, 공직 떼고 겨루는 게 낫다 / 석진환

등록 2020-10-28 18:01수정 2020-10-29 02:40

추미애+윤석열. 그래픽_고윤결
추미애+윤석열. 그래픽_고윤결

검찰총장이 종일 법무부 장관의 ‘불법 수사지휘’ 등을 주장하며 날을 세우고, 장관도 국정감사장에서 총장을 감찰하겠다고 반격하는 장면은 낯설었다. 사정의 칼을 쥔 권력자 둘, 그 둘이 벌이는 말의 활극이 몹시 불편했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충돌이다.

힘 있는 이들 사이의 싸움은 엉뚱한 피해자를 만들기 마련이다. 사퇴한 박순철 남부지검장의 말처럼 라임 사건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1조5천억원 상당의 피해를 본” 게 사건의 몸집이지만, ‘추-윤 충돌’을 거치며 본류는 로비 수사가 됐다. 수사 결과는 어느 한쪽의 불신을 받을 것이고, 사기당한 피해자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결론부터 말하자. 나는 이 황당하고 무참한 상황이 정부를 책임진 이들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관도 총장도 모두 문재인 정부를 책임지는 공직자들이다. 이 정도면 내부 충돌이나 자중지란을 넘어 정치적 패권 싸움 수준이다. 지휘권이 법에 명시된 장관과 총장의 관계를 두고 “부하냐 아니냐”라는 동네 건달식 논쟁이 벌어진 것도 낯뜨거운 일이다. 정부는 국민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추미애 장관이 행사한 수사지휘권, 인사권, 감찰권은 대부분 윤석열 총장을 겨냥한 것이었다. 우리가 늘 검찰의 과도한 검찰권 행사를 경계하고 비판하듯이, 장관의 권한도 적절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절제된 수준에서 신중하게 행사돼야 한다. 추 장관은 그런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총장을 불신하고, 의심하고, 고립시키려다 보니 장관의 지시가 점점 과해지고 남발되고 있다.

오죽하면 여권에서조차 “장관이 윤 총장을 활용해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겠는가. 1년 가까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윤 총장을 타격했는데, 결과는 어떤가. 손에 잡히는 것은 없고, 역으로 윤 총장의 체급만 키워줬다는 지적을 가볍게 흘려서는 안 된다. 검찰개혁을 위해 갈 길이 먼데, 엉뚱한 곳에 판을 벌여 국민들 짜증만 돋우고 있는 게 아닌지 추 장관과 청와대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상대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적대적 공생의 고리는 끊어버리는 게 맞다.

윤 총장도 되도록 빨리 결단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공개적으로 그 정도 발언을 했으니, 총장으로서 앞으로 무얼 하더라도 정치적 해석과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윤 총장이 사랑하는 검찰 조직에는 치명상이다. 스스로 “식물총장”이라 선언한 마당에 외풍으로부터 홀로 검찰 조직을 지켜내겠다는 결기는 민망하다. 윤 총장은 임기와 관련해 “국민과 약속이니 소임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상황이 이 지경인 만큼 무책임하다고 비난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윤 총장은 지난주 국정감사 때부터 이미 정치인의 언어를 쓰고 있다. “사회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방법” 등 여지를 남기는 노회한 말뿐이 아니다. 총장이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말도 여러번 했다. ‘조국 수사’ 관련 박상기 당시 장관을 만났던 일을 설명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박 장관이) ‘어떻게 하면 선처가 될 수 있겠느냐’고 해서, 조심스럽게 ‘야당이나 언론에서 자꾸 의혹을 제기하는데, 만약 (조 후보자가) 사퇴하신다면 좀 조용해서 저희도 일 처리를 하는 데 재량과 룸(여지)이 생기지 않겠냐’는 의견을 드린 거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해석해도, 이 말은 ‘조건을 내건 거래나 협상’에 가깝다. 검찰총장의 공식 언어는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이지, ‘재량과 룸’이 아니다. 그건 정치인의 언어다. 조 후보자는 사퇴하지 않았고, 수사는 ‘재량과 룸’은커녕 통상보다 모질고 혹독했다. 돌이켜보면 이 사달의 시작이 ‘조국 수사’였다는 점이 윤 총장의 결단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윤 총장이 결단한다면 이후 행보는 전임 총장들보다는 훨씬 자유롭다. 정치에 나서는 게 자연스럽도록 명분을 쌓아준 건 여권이다. 거물 정치인이 되어 평소 지론인 ‘경제 정의’를 검찰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구현해볼 수도 있다. 정치판에서는 얼마든지 추 장관과 격하게 싸우고 부딪쳐도 된다. 누가 뭐라 하겠는가.

석진환 ㅣ 이슈 부국장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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