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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플랫폼과 로봇에 갇힌 ‘21세기 중국의 전태일들’

등록 2020-11-10 17:35수정 2020-11-11 09:42

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10
중국 최대 음식배달 플랫폼 메이퇀의 노동자들이 베이징 시내 사무실 앞에 모여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중국 최대 음식배달 플랫폼 메이퇀의 노동자들이 베이징 시내 사무실 앞에 모여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불경기와 코로나19로 공장과 식당 등에서 실직한 노동자들, 대학 졸업 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들도 배달 노동에 뛰어들고 있다. 메이퇀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석사 학위 소지자 6만여명, 대졸자 17만명 이상이 이 회사의 배달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이 몰리면서 배송비는 더 낮아졌고, 같은 금액을 벌려면 더 많은 배달을 할 수밖에 없기에 노동자들의 사고 위험은 더욱 커졌다.

2019년 10월의 어느날, 전동 자전거 핸들을 쥔 주다허의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중국의 양대 음식배달 플랫폼 기업 어러머의 배달원이다. 이날부터 2㎞ 배송 시간이 32분에서 30분으로 또다시 줄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식당에서 음식 준비 시간이 길어져 배달이 늦어도 어김없이 무거운 벌금이 매겨진다.

한국에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있다면, 중국에는 메이퇀(美團)과 어러머(餓了麽)가 있다. 지난 9월 중국 월간지 <인물>은 이 두 플랫폼에서 일하는 음식 배달 노동자(라이더)들의 노동 현실을 6개월 동안 생생하게 취재해, 교묘한 노동착취 속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2016년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메이퇀과 어러머는 각각 초뇌(超腦)와 방주(方舟)라는 이름의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라이더들에게 배달 일감을 배분하고, 배송 경로와 시간을 지시한다. 라이더들이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면 평점이 떨어지고 벌금을 물어야 하며, 해고될 수도 있다. 라이더들은 컴퓨터 시스템이 지시한 배달 시간을 맞추기 위해 교통신호를 어기고 역주행을 하며 목숨을 내놓고 달린다. 2017년 상반기 상하이에서 2.5일마다 한명씩 배달노동자가 교통사고로 숨졌고, 2018년 청두시에서 7개월 동안 배달노동자의 교통법규 위반이 약 1만건, 사고는 196건, 사상자는 155명으로 집계됐다.

<인물>이 취재한 라이더 수십명은 교통법규를 위반하지 않는다면 배달 건수는 절반으로 줄 것이라며, “배달은 저승사자와의 경주”라고 말한다. 웨이라이라는 라이더는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동료 노동자가 서둘러 출발하다 차와 부딪혀 오토바이와 함께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동료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도 웨이라이는 멈출 수 없었다. 손에 든 음식 배달 시간이 늦었고 새로운 주문도 들어왔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플랫폼 노동 문제를 연구해온 중국사회과학원 쑨핑 연구원은 “배달노동자들은 불이익 위협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시스템의 요구를 맞추려 애쓰고 그 정보가 시스템으로 전송돼 빅데이터로 저장되면, 알고리즘은 모두 이렇게 빨리 배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또다시 배달 속도를 높이게 된다”고 분석한다. 배달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배달 시간을 맞추면 인공지능 시스템은 시간을 또다시 단축해버리는 악순환이다. 중국에서 600만명이 넘는 배달노동자들이 알고리즘 시스템의 통제 속에서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거리를 달린다.

불경기와 코로나19로 공장과 식당 등에서 실직한 노동자들, 대학 졸업 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들도 배달 노동에 뛰어들고 있다. 메이퇀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석사 학위 소지자 6만여명, 대졸자 17만명 이상이 이 회사의 배달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이 몰리면서 배송비는 더 낮아졌고, 같은 금액을 벌려면 더 많은 배달을 할 수밖에 없기에 노동자들의 사고 위험은 더욱 커졌다.

이런 구조에서는 회사의 이익은 급증할 수밖에 없다. 중국 내 음식 배달의 약 65%를 차지하는 메이퇀의 2019년 3분기 주문은 25억건인데 주문 한건당 이윤은 2018년 동기에 비해 0.04위안 늘었고, 비용은 0.12위안 줄었다. 2020년 2분기 메이퇀의 수익은 22억위안(373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5.5% 증가했다.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21세기 중국 청년들은 한국의 청년들과 나란히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통제 속에 갇힌 ‘동지’다. 중국에서도 언젠가 1980년대 한국과 같은 노동운동이 일어나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어느덧 낡아 버렸다. 많은 기업들이 동남아 국가 등으로 이전하면서 제조업 일자리는 줄고, 음식배달·택배 등 플랫폼으로 통제되는 노동이나 일용직으로 일하는 건설노동자, 서비스업 중심으로 일자리 구조가 바뀌고 있다. 윤종석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인문한국(HK)연구교수는 “80년대 한국의 대규모 노동운동은 산업 고도화와 대공장화, 중산층 확대를 기반으로 일어났고, 국제적 환경도 노동자들에게 유리했다”며 “지금 중국 노동자들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불안정 노동이 확대되고, 당·국가의 강력한 탄압 등 매우 복잡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중국 청년들은 도시의 복지 시스템에서 소외된 ‘농민공’이란 차별의 굴레를 벗기도 전에, 첨단기술의 통제와 국가의 강력한 감시라는 이중·삼중의 굴레에 매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 무렵까지는 중국 노동운동의 희망이 확산됐던 시기였다. 사람을 기계처럼 부리는 관리 체제와 노동환경 개선, 공정한 임금을 요구하는 파업의 물결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농민공들은 현실의 모순을 명확히 자각하고 더 나은 현실을 꿈꾸며 노동운동에서 길을 찾았고, <전태일 평전>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등을 읽으며 ‘취안타이이’(전태일의 중국 발음)가 준 희망의 불씨를 마음에 품었다.

중국어판 &lt;전태일 평전&gt;
중국어판 <전태일 평전>

시진핑 정부는 노동자들의 각성과 권리의식 성장을 ‘사회 불안정’ 요소로 판단했다.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운동가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했고, 2016년 자선법, 2017년 해외비정부조직관리법을 시행해 시민단체들이 모금을 하거나 홍콩·외국의 지원을 받는 것을 금지했다. ‘암흑시대’를 맞은 많은 노동운동가들은 체포되거나 지하로 숨어들었다. 판이라는 성만 밝힌 한 노동운동가는 지난 9월 좌파 사이트 궁차오(工潮)가 마련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노동자 조직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계속되는 당국의 괴롭힘과 체포, 억압 때문에 활동이 매우 힘들다. 노동운동에 참여하려는 조직가, 운동가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봇도 노동자들의 경쟁자로 등장했다. 중국 정부는 2014년께부터 산업용 로봇을 도입하는 자동화 캠페인을 적극 추진했다. 광둥성 둥관시 정부는 2014~19년 9만1천대 로봇을 설치해 28만명의 노동력을 줄였다고 밝혔다. 2019년 전세계 산업용 로봇 판매는 165억달러였는데 그 가운데 54억달러어치가 중국에 판매됐다.

중국 신세대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기계처럼 판에 박힌 노동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대규모 제조업 공장에서 하루 12~14시간씩 노동하던 1세대 농민공들의 자녀들인 지금의 신세대 농민공들은 좀 더 자유롭고, 보람과 성장이 있는 일자리를 갈망한다. 하지만 농민공들의 노동으로 건설되고 발전한 중국의 대도시는 이들에게 동등한 시민권과 임금, 복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노동은 한없이 불안정해지고, 권리를 외칠 목소리마저 억압당하는 사회에 절망으로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광둥성 대도시 선전의 싼허인력시장 주변에서 살아가는 ‘싼허청년’(三和靑年)들은 고정된 주거지도 없이, 돈이 떨어지면 배달이나 건설 일용직으로 버는 일당에 의지해 ‘하루 벌어 3일 노는’ 삶을 살아간다. 이들 가운데 신분증도 팔아버리고 가족과의 연락도 끊고 노숙 생활을 하면서 자포자기한 채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싼허다선’(三和大神·싼허의 신)으로 불린다.

싼허청년들의 생활을 연구해 <어찌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豈不懷歸)란 책을 펴낸 사회학자 톈펑은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싼허청년들은 어려서부터 도시의 생활을 봐왔기 때문에 생활에 대한 기대도 높고 권리의식도 강하고, 불공평에 대해서도 더욱 민감하다. 하지만 권리를 지킬 수단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항의 방식, 즉 대도시에서 아무렇게나 끼니를 때우며 죽음을 기다리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가 싼허청년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착취당하고 떼먹히고 차별당하기 싫어서 일하지 않는다”였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을 버린 국가’에 저항하고 있다.

변화를 향한 분투는, 힘겹지만 이어지고 있다. 특히 쉼 없이 유동하고 인터넷 사용에 능한 ‘21세기 무산계급’ 청년들인 음식배달·택배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많은 이들이 주목한다. <중국노동통신>(CLB)은 2018년부터 지금까지 배달노동자들의 집단행동, 시위, 파업 등이 확인된 것만 104건이라고 집계했다. 중국 최대 ‘쇼핑의 날’인 11일 광군제를 앞두고도 파업과 항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순펑, 윈다 등 대형 택배회사들의 무리한 가격 경쟁은 소규모 하청 택배회사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졌고, 몇달치씩 임금을 떼이게 된 노동자들이 항의에 나섰다. 중국의 휘황한 전자상거래를 떠받치는 모세혈관인 택배 노동자들의 1건당 배달 수수료는 5~7마오(85~120원)까지 떨어졌다고 <중국신문주간>은 전한다.

미-중 신냉전과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곳곳에서 ‘반중’의 격랑이 일자, 시진핑 지도부는 거대한 내수시장에 기대 자력갱생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쌍순환 전략’을 마련했다. 2억9천만 농민공들의 빈곤을 해결하지 않으면 ‘자력갱생을 지탱할 내수시장’은 신기루일 뿐이지만, 공정한 분배와 권리를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번번이 통제와 억압에 부서지고 있다. ‘21세기 중국의 전태일’들은 오늘도 빨간불이 켜진 길에서 손에 땀을 쥐고 배달 자전거를 탄다.

박민희 ㅣ 논설위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중국과 이란>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혐중’에 반대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공정한 이해와 동행을 희망한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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