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연 ㅣ 사회정책부장
“주무시는데 죄송해요. 저 16번지 (물량을) 안 받으면 안 될까 해서요. (중략) 저 너무 힘들어요.”
지난달 8일, 택배기사 김아무개씨가 회사 동료에게 새벽 4시28분에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다. 전날 아침에 집을 나선 그는 다음날 새벽에야 퇴근하는 길이었다. 하루에 그가 소화해야 했던 배송 물량은 무려 420개. 며칠째 장시간 근무에 시달린 정황도 보였다. 그로부터 나흘 뒤, 김씨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올해 김씨처럼, 과로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은 택배노동자는 모두 14명(협력업체 포함)이다. 지난달에만 6명이 세상을 등졌다. 대부분 건강에 큰 이상이 없는 30~40대였다. 배송을 하다가 쓰러지거나 야근 뒤 새벽 6시에 씻으러 가다가 쓰러진 경우도 있었다. 가족여행을 가기로 한 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 이도 있었다.
올해 택배노동자의 노동강도가 치명적인 수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이었다. 코로나19 유행의 장기화로 대면 활동이 줄어들면서 배송 물량은 폭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택배 물량은 지난해보다 20% 이상(고용노동부, 7월 기준) 늘었고, 이로 인해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9월)에 달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비책을 세우진 않았다. “추석 연휴가 포함된 9~11월은 택배 물량이 많은 시기라 과로사를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난 8월 전국택배연대노조의 호소를 귀담아듣는 이는 많지 않았다. 급기야 ‘택배 없는 날’(8월14일)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반짝’ 이슈에 그치고 말았다.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들은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택배사의 대리점과 업무위탁 계약을 맺고 배송 건당 수수료로 소득을 얻는다. ‘더 빠른 배송’을 경쟁력으로 삼는 본사, 당일 물량을 100% 소화하지 않으면 계약해지를 거론하는 대리점과의 관계에서 택배기사들은 을의 신분이다. 혼자서는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물량이 몰리더라도, 자칫 일감을 잃을라 스스로 물량을 줄이기 어렵다. 아프거나 사정이 생겼을 때 휴가를 마음 놓고 쓸 수도 없다. 업무 도중 쓰러진 한 택배노동자의 빈소에서 그의 아버지는 ‘왜 택배가 오지 않느냐’는 고객 문의가 빗발치는 아들의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고 한다.
최근 택배사들이 하나둘씩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을 멈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씨제이(CJ)대한통운은 이달부터 분류작업 인력 4천명을 투입한다는 떠들썩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인력 투입에 대한 비용 분담 문제가 정리되지 않아서다. 진입장벽이 낮아 구직자가 몰리고 있고 택배노동자들의 협상력이 턱없이 낮은 현재와 같은 구조에선,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대책들도 일선 현장에서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이쯤 되면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고민해야 한다. 택배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어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주 5일제도, 주 52시간 초과근무 금지도 비켜나 있다. ‘물량이 너무 많은 날은 일정 분량을 다음날 이어서 배송하도록 해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가 수용되려면, 이른바 ‘공짜노동’으로 불리는 분류작업 부담을 덜어주려면, 연속적인 심야노동의 위험에 노출되는 일을 줄여주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기존 법과 제도로 보호할 수 없다면, 더 포괄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규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때마침 정부는 지난달 ‘필수 노동자 안전 및 보호 강화’를 위한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 가동에 착수했다. 필수 노동자는 코로나19 국면에서도 감염 위험에 노출된 채, 사회 기능 유지를 위해 대면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이들을 말한다. 택배기사를 비롯해 배달 종사자, 환경미화원, 돌봄노동자 등이 해당된다. 감염병 국면 이전에도 저임금과 더불어, 비공식 노동인 ‘그림자 노동’ 상태가 지속되어온 분야들이다(이승윤 중앙대 교수). 복잡한 문제일수록 대책도 정교해야 한다. 방역물품을 전달하고 표준계약서나 안내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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