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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평범하게 사는 즐거움 / 이주은

등록 2020-11-13 17:37수정 2020-11-14 02:32

자크루이 다비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800, 캔버스에 유채, 259×221㎝, 말메종과 부아프레오성 국립박물관(Musée national des châteaux de Malmaison et de Bois-Préau).
자크루이 다비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800, 캔버스에 유채, 259×221㎝, 말메종과 부아프레오성 국립박물관(Musée national des châteaux de Malmaison et de Bois-Préau).

자크루이 다비드(1748~1825)는 1800년 그림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불멸의 승리자 이미지로 탄생시켰다. 아주 오래전 <완전정복>이라는 중학교 참고서의 표지를 열면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나폴레옹의 명대사와 더불어 다비드의 그림이 컬러로 한 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영웅의 모습이 근사했는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나폴레옹’이라는 친구도 제법 있었다.

그림을 보고 만족스러웠던 나폴레옹은 후에 황제대관식 그림도 맡아달라고 다비드에게 부탁했다.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은 포효하는 말 위에서 오른손을 뻗어 “후퇴 없이 앞으로!”라고 지휘하고 있다. 군주 기마상은 보통 말이 한 발 앞으로 내딛는 포즈가 많은데, 가끔 말이 두 발을 쳐들고 있는 경우도 있다. 왕실 최대 규모의 베르사유궁전을 지은 프랑스 루이 14세의 기마상도 두 발을 쳐들고 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일구어낸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말도 그렇다. 아무나 포효하는 말 위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군주의 활약이 컸을 때, 이를테면 광활한 땅을 정복했다거나 왕국의 토대를 단단히 다졌을 때에 해당한다.

오늘날에는 국가의 수장들이 가끔 의도적으로 말을 탄다. 2009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베리아 벌판에서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낸 채 말을 타는 모습을 홍보했다. 야성적이고 저돌적인 지도자의 면모를 자랑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2019년에는 북한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백마를 타고 흰 눈이 쌓인 신령스러운 백두산을 활보하기도 했다.

사실 백마는 광야를 자유롭게 달리는 동물이라, 바위 많은 산악 지형에는 취약하다. 나폴레옹도 실제로는 노새를 타고 알프스 산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사방으로 파고 들어오는 눈보라를 막기 위해 멋진 예복 대신 보온용 외투에 바람을 막기 위한 거적까지 뒤집어쓴 상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예복을 입은 채 모델을 섰고, 노새 대신 흰색 말로 그려줄 것을 부탁했다. 승리자는 춥고 초췌해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관학교 출신의 장교였던 나폴레옹은 전투 전략에 뛰어나, 전쟁에 나가서 지는 법이 없었다. 출전했다 하면 무조건 아군을 승리로 이끌어 전쟁 영웅으로 이름을 날렸다. 수많은 지지자를 얻게 된 나폴레옹은 인기에 힘입어 황제로 등극했다. 하지만 그는 승리하는 법에는 최고였지만, 패배하는 데에 있어서는 노하우가 없었던 듯하다.

세상에 패배가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패배자에게는 늘 ‘좋은 패배자’의 미덕이 요구된다. 좋은 패배자란, 쉽지 않겠지만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제 그만 경쟁을 포기하고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이들을 보듬어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 미덕을 행하지 못했기에 나폴레옹의 말년은 쓸쓸했다.

폴 들라로슈, &lt;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gt;, 1850, 캔버스에 유채, 279.4×214.5㎝, 워커 아트 갤러리, 리버풀.
폴 들라로슈,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850, 캔버스에 유채, 279.4×214.5㎝, 워커 아트 갤러리, 리버풀.

나폴레옹이 죽은 뒤 약 30년이 흐른 1850년에 폴 들라로슈(1797~1856)는 다비드의 그림을 사실적인 버전으로 바꾸어 소개했다. 주변은 온통 눈이고 바닥은 얼어 미끄러운 가운데, 초라한 노새 위에는 추위를 견디느라 다소 경직된 표정의 나폴레옹이 앉아 있다. 시린 오른손은 평소의 습관대로 조끼 안에 고이 넣어 두었다. 소심하고 평범한 사람 같아 보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전 부인이 트럼프를 향해, 패배를 선언하고 인생을 즐기라며, 플로리다로 내려가 골프를 치며 평범하게 살도록 조언했다. 은퇴 후에는 치열하게 애쓰기보다는 느긋하게 지내고 싶은 평범한 일반인에겐, 사실 그 평범한 노후의 모습이 평생의 꿈인 것이다.

이주은ㅣ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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