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김민형의 여담] 인간과 교육과 인공지능

등록 2020-11-18 18:30수정 2020-11-19 02:37

인지과학자 더글라스 호프스태더의 책 <괴델, 에셔, 바흐>의 영문 제목 첫 글자 지(G), 이(E), 비(B)를 활용한 문자디자인. 위키피디아
인지과학자 더글라스 호프스태더의 책 <괴델, 에셔, 바흐>의 영문 제목 첫 글자 지(G), 이(E), 비(B)를 활용한 문자디자인. 위키피디아

김민형 | 워릭대 수학과 교수

이달 서울에서 개최된 글로벌 인재포럼 연사 중 하나였던 미국 버클리대의 마이클 조던 교수는 인공지능 연구를 ‘데이터 과학’이라고 지칭할 것을 권장했다. ‘인공지능’이라는 말 자체가 공상과학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연구자로 하여금 현재 풀 수 있는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하기 어렵게 한다는 것이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 주장은 과학자와 공학자의 재미있는 관점 차이를 나타내주기도 했다.

나 자신이 인공지능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9년에 발행된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유명한 책 <괴델, 에셔, 바흐> 덕분이었다. 수학자, 화가, 작곡가가 제목에서부터 등장하는 이 책은 문화 융합의 중요성을 주 관심사로 갖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저자가 목표하는 바는 ‘인공지능이 가능한가’의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담론이다. 지금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이 책에서 제시하는 관점들이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청년 시절 잘 이해 못 하면서도 인상 깊게 읽었다. 그런데 출간 20주년 기념 발행본에 나오는 저자의 서문을 읽으면 인기 분야가 돼버린 당대의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불평으로 가득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인공지능 연구의 중요성을 주장하던 학자가 어째서 그렇게 부정적이 됐을까? 기계를 만드는 작업은 부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호프스태터는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 가능한가’ 알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지능적 행동과 결정을 실용적으로 재현하는 기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다. 그런 종류의 기계를 만든다면 그 목적도 그것이 지능과 의식의 일반적인 성질에 대해 제공할 수 있는 통찰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마이클 조던 같은 공학자와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입장이었다. 나는 호프스태터 같은 근본주의자가 아니라서 강력한 인공지능 기계를 만드는 공학자들을 존경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지능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지능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약간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2006년 싱귤래러티 서밋에서 강연하는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위키피디아
2006년 싱귤래러티 서밋에서 강연하는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위키피디아

지능의 문제는 또 하나의 인기 분야인 뇌 과학에서도 다루는데 그들은 자연 현상으로서의 지능을 뇌의 작용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묘사하려고 한다. 그런데 지능의 묘사가 지능의 정체와 경험이 어떤 것인지 알려줄 것인가 물을 수도 있다.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의 저서 <마인드 앤드 코스모스>에 다음과 같은 예시가 나온다. 전자계산기 자판의 단추들 가운데 ‘3’, ‘+’, ‘5’, 그리고 입력 단추를 차례로 누르면 화면에 ‘8’이 나오는 것을 관찰하고 나서 그 이유를 묻는다고 하자. 그때 계산기를 만든 사람이 회로의 설계를 자세히 보여주면서 전기의 흐름이 어떻게 그 현상을 일으키는지 철저하게 설명했을 때 네이글이 던지는 질문은 ‘그것이 현상의 완전한 설명인가’이다. 물질 분석적인 이해가 이해의 전부인가를 묻는 것이다. 네이글은 일생 동안 객관적인 묘사와 주관적인 경험 사이의 간극을 집요하게 탐구한 철학자이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을 이 책에서 길게 펼쳐낸다.

호프스태터의 책에서 다룬 괴델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수학적 진리를 기계적으로 파악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기계 자체도 ‘기계적’이지 않다는 것을 대부분 엔지니어는 알 것이다. 지금 현존하는 컴퓨터 시스템들은 이미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능가했다. 가령 전산 시스템이 망가졌을 때 회로와 코드의 근본을 철저하게 알아내서 고치려는 의도는 모든 세포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환자를 치료하려는 착상 수준으로 황당해졌다는 것이 테크놀로지의 현실이다. 어느 정도의 거시적인 관점과 제한적인 진단과 분해가 보통의 방법론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기본적인 미스터리로 돌아오자면 그것은 우리가 기계의 속마음조차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알파고를 비롯한 놀라운 기계들을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계가 어떻게 해서 그만큼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지 파악을 못 하기 때문에 기계의 효율성의 과학적 탐구가 새로운 주요 분야로 개발되고 있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사회와 산업에 미칠 다양한 영향을 주제로 한 이 포럼의 중요한 소주제 중 하나가 ‘인공지능과 교육’이어서 다소 이론적이고 인간적인 관점에서 여러 이슈를 생각해볼 기회도 가졌다. 우리가 만든 기계가 배우는 과정도 확실히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의 교육법을 확신을 가지고 논할 수 있을까? 결국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은 구체적인 방법론의 배경에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든 기계를 다 경이롭게 다룰 줄 아는 경외감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현시대 에이아이(AI)의 신비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 중 하나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이승만·박정희를 국립묘지에서 파묘하라 [왜냐면] 1.

이승만·박정희를 국립묘지에서 파묘하라 [왜냐면]

[홍세화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2.

[홍세화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사설] 여당·보수단체 민원이 100%, 이런 선방위 필요한가 3.

[사설] 여당·보수단체 민원이 100%, 이런 선방위 필요한가

이대로 3년 더 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아침햇발] 4.

이대로 3년 더 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아침햇발]

[사설] ‘채상병 사건’ 회수 몰랐다는 이종섭, 대통령실이 했나 5.

[사설] ‘채상병 사건’ 회수 몰랐다는 이종섭, 대통령실이 했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