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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디지털 법가, 감시 자본주의 신세계를 열다

등록 2020-11-24 16:56수정 2020-11-25 02:39

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11
2019년 5월 푸젠성 푸저우에서 열린 디지털 전시회에서 안면인식 장비가 방문객들의 나이·성별·머리 모양 등의 특징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보여주고 있다. 푸저우/로이터 연합뉴스
2019년 5월 푸젠성 푸저우에서 열린 디지털 전시회에서 안면인식 장비가 방문객들의 나이·성별·머리 모양 등의 특징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보여주고 있다. 푸저우/로이터 연합뉴스

최첨단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감시 시스템은 중앙권력이 ‘백성’ 개개인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진시황의 이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듯하다. 시진핑 주석은 “법을 받드는 이가 강하면 국가가 강해지고, 법을 받드는 이가 약하면 나라가 약해진다”고 했다. 모든 권력자들이 꿈꿨던 법가적 빅브러더 사회가 21세기 첨단기술로 실현되고 있다.

2012년 23살 대학원생 인치(印奇)가 베이징 중관춘(중국판 실리콘밸리)에서 친구 둘과 함께 안면인식 인공지능(AI) 관련 스타트업인 메그비(Megvii·曠視)를 설립했다. 그는 칭화대학교에서 이공계 분야 최고 수재들만 모이는 컴퓨터과학실험반을 졸업하고, 전액 장학금을 받아 미국 컬럼비아대학 컴퓨터공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야오반’(姚班)이라고 하는 칭화대 컴퓨터과학실험반은 세계적 컴퓨터 공학자인 야오치즈 교수가 중국 과학기술 분야 최고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메그비의 공동 설립자인 인치와 탕원빈, 양무는 모두 여기서 함께 공부한 동창생이다.

대학 시절 이들 셋이 재미 삼아 개발한 안면인식 앱이 주목을 받자, 사업 기회를 발견한 이들이 창업에 나섰다. 이들이 내놓은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안면인식 알고리즘 ‘Face++’는 ‘대박’을 터뜨렸다. 2016년 의 10대 혁신기술에 선정됐고,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이 기술을 이용해 안면인식 결제시스템을 채택했다. 식사나 쇼핑을 마친 뒤 전자결제시스템에 접속해 얼굴 셀카 사진을 찍으면 3초 안에 누구인지 인식해 연결된 계좌에서 자동으로 결제가 이뤄진다. 국내외에서 투자가 밀려들었고, 중국은행, 폭스콘, 중국 각지의 지방정부, 공항 등에서 이들의 기술을 도입했다. 은행이나 회사, 공항, 기차역 등에서도 스쳐 지나가며 자동으로 신분을 확인한다. 중국 인터넷 금융기업의 85% 이상이 메그비의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한다. 메그비는 4차 산업혁명이 싹트던 시대의 흐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 기술에 주목한 또 다른 주요 고객이 있었으니, 중국 공안기구다. 시진핑 시대 중국은 파업, 토지분쟁, 소수민족 저항 등 사회 불안에 대응해 감시·통제를 전면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법률위원회(정법위원회) 주도로 도시에서는 ‘톈왕’(天網), 향촌지역에서는 ‘쉐량’(雪亮) 공정을 시작했다. 톈왕은 도시 말단의 행정단위인 사구(社區)를 좀 더 작은 규모의 격자(網格)로 나눠 각각 관리인을 배치해 관할지역의 모든 상황을 관리·감시하게 했다. “군중의 눈은 눈(雪)처럼 밝다(亮)”는 마오쩌둥의 말에서 따온 쉐량 역시 각 지역 주민들이 이웃을 철저히 감시하도록 한 것이다. 메그비의 ‘페이스++’(Face++) 안면인식 알고리즘은 톈왕과 쉐량 공정을 완벽하게 만들 화룡점정의 기술이었다. 2015년 공안부는 2020년까지 전국에 완전한 영상 감시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중국 구석구석에 수억 대의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한 인민들의 얼굴 정보를 실시간 분석해 공안이 표적으로 삼은 대상을 식별해내고 있다. 안면인식, 빅데이터, 인공지능의 딥러닝 기술이 결합되는데, 정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2018년 장시성 난창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5만명 관중 가운데서 수배 중이던 남성을 곧바로 찾아내 검거했다. 어떤 사람이 계속 지하철역에 오는데 직원이 아니라면 도둑일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시스템이 스스로 분석해 이상 신호를 곧바로 공안에 전송한다. 공안부는 메그비의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해 2016년 이후 5천명 이상의 범죄자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안면인식 인공지능 스타트업 메그비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인치. 바이두 갈무리
안면인식 인공지능 스타트업 메그비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인치. 바이두 갈무리

이 거대한 감시 시스템에는 메그비 외에도 센스타임(商湯科技), 이투테크놀로지 같은 안면인식·인공지능 관련 민간 스타트업들, 음성인식 장비 기업인 아이플라이텍(iFlytek·科大訊飛), 세계 최대의 감시용 시시티브이(CCTV)를 제조하는 국유기업 하이크비전(海康威視)과 다화테크놀로지, 네트워크 기업 화웨이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 기술이 가장 집약적으로 사용된 곳이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다. 소수민족 위구르인 100만명을 ‘재교육 캠프’에 강제수용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된 이곳에서, 공안은 시장, 학교, 모스크 등 일상생활의 전 영역에 감시카메라와 데이터처리 장비, 클라우드 저장 장치, 드론 감시 시스템을 설치해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중국 당국이 신장의 감시 시스템에 투자하는 막대한 예산은 관련 기업으로 흘러들어가 이들 기업을 급성장시키고 기술을 더욱 업그레이드한다.

2019년 10월8일 미국 상무부는 신장에서 위구르인들에 대한 인권 탄압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메그비, 센스타임, 화웨이 등 8개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미 상무부의 승인 없이는 반도체칩 등 미국 첨단기술 부품을 살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계속해서 투자를 끌어들이며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제 32살이 된 인치는 중국의 스타 기업인이다. 그는 2019년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인터뷰에서 “알고리즘은 아름답고 명료하고 우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장에서 인권 탄압에 그 기술이 사용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기술은 결코 잘못이 없으며, 책임은 사람이 져야 한다”고만 답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각광받는 안면·음성인식,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은 ‘감시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실은 ‘감시 자본주의’가 중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네이버, 카카오톡, 틱톡 등 수많은 첨단 정보기술 기업들이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실제로는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추출해, 개인들의 성향과 행동, 특징을 파악하고 상품화해 거액을 벌어들인다.

이 미래산업에서 중국 기업들은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 기업들을 제치고 선두 주자로 대약진했다. 우선 14억 인구에서 나오는 빅데이터를 기업과 정부가 제한 없이 활용하기 때문이다. 혼란을 두려워하고 안정을 원하는 인민이 감시 시스템이 등장한 뒤 범죄가 줄고, 생활이 편리해지는 것을 반기는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중국 당국은 범죄와 테러, 재난의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감시망을 구축했고 이를 통해 수집되는 방대한 데이터는 중국의 인공지능 관련 산업에 다른 나라 기업들은 상상하기 힘든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당국은 주민들의 얼굴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고 지문, 홍채 정보까지 등록시키고 있다. ‘중국제조 2025’ 정책을 통해 중국 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이들 미래산업에 전략적으로 투입해 전폭 지원한 것도 이들 기업이 세계 최강으로 급성장한 동력이 되었다.

감시카메라, 안면·홍채인식 등 바이오 감시 기술과 관련해 2017년 한 해 동안 중국 기업은 530건의 특허를 출원해 미국의 96건을 월등히 앞섰다. 국외에서 퉁팡이라는 중국 기업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드물지만, 이 회사의 자회사인 ‘눅텍’(Nuctech)는 100개국 이상의 공항과 국경의 보안 검색 장비를 판매했다. 하이크비전은 2010년에는 매출 기준 세계 10위의 감시카메라 제조업체였지만 2016년에서는 1위 업체가 됐다. 2018년 세계 20대 감시카메라 업체 가운데 6개가 중국 기업이다.

14억 인민을 상대로 모이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저장, 인공지능 분석이 핵심 기술이다. 더 철저히 감시하면 더 많은 빅데이터가 모이고, 기술과 사업은 더 급속도로 성장한다. 감시와 산업, 돈이 하나로 얽힌 ‘위대한 신세계’다. 2019년 저장성 항저우시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해 학생 개개인의 표정을 분석해 얼마나 수업에 집중하는지를 감시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많은 공장에선 노동자들의 표정과 동작, 작업량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얼마나 열심히 근무하는지를 감시한다.

시민이 견제·감시할 힘이 없는 중국에서 ‘4차 산업혁명’은 이처럼 ‘감시 자본주의’의 본질을 더욱 뚜렷이 드러내는 동안 기술은 더욱 급속하게 발전한다. 당은, 기업은, 권력, 질서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사회신용시스템’(社會信用體系)을 구축하고 있다. 2018년부터 여러 도시에서 시범 실시 중인 이 시스템은 개개인의 일상 행동에 점수를 매겨 혜택 또는 처벌을 하는 개념이다. 교통법규 위반은 감점, 은행 신용도가 높으면 점수가 올라가는 식이다. 사회신용점수 총점이 높은 사람은 은행에서 낮은 이자로 쉽게 돈을 빌리고, 점수가 낮으면 취업이나 대학 입시에서 감점을 당하거나, 비행기나 기차표를 살 수 없게 된다. 실제로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2019년 6월 발표한 통계에서 사회신용점수가 낮은 이들에게 2682만장의 비행기 티켓과 596만장의 고속열차표 구매가 거부되었다고 밝혔다. 이 시스템이 전면 도입되면, 스마트폰, 감시카메라, 디지털 화폐 사용 정보를 결합해, 14억 인민의 모든 행동과 이동, 소비, 금융, 의료 정보를 파악해 개개인의 신용을 점수화할 수 있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국가가 한 사람의 이동 기록, 친구 관계, 지인, 책과 글, 자료를 읽는 습관 등을 근거로 반정부 활동에 나설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해 제재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최첨단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감시 시스템은 중앙권력이 ‘백성’ 개개인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진시황의 이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듯하다. 2014년 전국인민대표대회 60주년 기념행사에서 시진핑 주석은 “법을 받드는 이가 강하면 국가가 강해지고, 법을 받드는 이가 약하면 나라가 약해진다”고 했다. 모든 권력자들이 꿈꿨던 법가적 빅브러더 사회가 21세기 첨단기술로 실현되고 있다.

박민희 논설위원 |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중국과 이란>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혐중’에 반대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공정한 이해와 동행을 희망한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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