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기ㅣ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
최근 김회승 논설위원의 칼럼(
‘홍남기 위로금’을 지지한다) 잘 읽었습니다. 현 전세난과 관련하여 “신규 세입자의 어려움을 최소화하면서 과도기적 계곡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다만 다음 평가 일부에는 의견을 달리합니다.
“일부에선 모든 게 ‘임대차 3법’ 때문이라고 맹공한다. 정부는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잘 안된다’고 반박한다. 전자는 과도한 정치적 공세로, 후자는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하지만 정부의 반박은 “궁색한 변명”이 아닙니다. 해당 칼럼에는 정부 반박이 왜 “궁색한 변명”인지가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탓에 저는 기자님 평가의 논거를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상의 평가를 문제 삼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면, 어떤 <한겨레> 독자는 정말로 정부가 “궁색한 변명”을 했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정부 입장이 왜 ‘참’인지를 논증합니다.
쉬운 문제부터 풀어보겠습니다. 전세가가 오르는 현상의 ‘근본 원인’은 임대차 3법이 아닌 집값 급등에 있습니다. 전세가는 집값을 넘을 수 없고, 임대인은 최대치의 전세금을 받고자 하므로, 집값이 오르면 (거주 환경이 양호한 주택은) 그에 따라 전세가도 오르게 됩니다. 즉, “문재인 정부 들어서 집값이 오르더니 전세가까지 올랐다!”라는 식의 세간의 말은 동어반복입니다.
이제 특히 보수·경제매체에서 선도하는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세 매물이 부족하다”는 보도의 사실관계를 따져봅니다.
이건 따질 게 많으니 미괄식으로 적겠습니다.
우선 ‘절대적 전세난’과 ‘상대적 전세난’을 구분해야 합니다. 100가구가 전세를 사는 작은 세상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100가구의 전세 계약이 동시에 끝납니다. 그럴 경우 한 가구가 매물이라고 느끼는 전세 물량은 ‘무려!’ 99개입니다.
이번에는 그 작은 세상에 임대차 3법에 의한 계약갱신요구권제가 도입되어서 (원래대로라면 동시에 전세 계약이 끝났어야 할 100가구 중에) 95가구가 전세 계약을 갱신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한 가구가 매물이라고 느끼는 전세 물량은 ‘고작!’ 4개입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입니다. 수급 비율에는 변화가 없는데, 체감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겁니다.
한편, 살기 좋은 곳일수록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큽니다. 가령 내가 새로 지은 아파트의 첫번째 전세 입주자인데, 1년 반 정도 살고 나니 법이 바뀌어서 2년 더 살 수 있다고 해봅시다. 그럼 당연히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때문에 그 새 아파트에는 전세 매물이 많이 풀리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하지요. 다른 낡은 아파트 등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 전세가 끝날 때 즈음하여 ‘신규 전세 매물 나온 거 뭐 없나?’ 하고 그 새 아파트를 기웃하게 됩니다. 그러다 전세 매물이 하나라도 나오면 다들 거기에 몰리는 겁니다. 현재 일부 아파트에 전세를 구하려고 줄을 서는 현상은 그래서 생기는 것입니다. 요컨대 지금의 전세난은 ‘체감적 전세난’, ‘상대적 전세난’입니다. ‘절대적 전세난'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있었습니다.
계약갱신요구권 행사로 인해 상대적 전세난이 발생한다는 것은, 우리네 주거세입자의 주거권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주거세입자의 2년 주기 떠돌이 생활을 끝내겠다는) 임대차 3법 개정 취지에 공감하는 언론사라면, 이전대로라면 내쫓겼어야 할 가구가 새로 도입된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여 내쫓기지 않은 현장을 찾아가 취재해야 할 것입니다. 한데 지금 거의 모든 언론사는 그 반대의 현장만을 찾고 있습니다.
사실 계약갱신요구권 행사로 인해 전세 매물이 시장에 나오지 않는 것 말고는, 전세 매물 소멸 현상과 임대차 3법 사이에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전세의 존속과 소멸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집값’이기 때문입니다(‘전세 놓기’는 미래에 집값이 오를 것 같으니 주거세입자의 보증금을 이용해 현재 가격에 집을 ‘찜’하는 행위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그 어떤 전문가도 임대차 3법을 이유로 왜 전세가 소멸하는지를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주장만 있고 논증은 없는 형국인 겁니다. 비이성적 흥분을 멈춥시다. 임대차 3법에 의한 전세난 논란은 코미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