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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부자가 되라 아니면 / 정영목

등록 2020-12-04 13:30수정 2020-12-05 02:32

정영목ㅣ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프랑수아 기조는 “스무살에 공화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다는 증거고 서른살에 공화주의자면 머리가 없다는 증거”라고 말했지만 1848년 예순살에 2월혁명으로 자신이 총리로 일하던 왕정이 무너지며 프랑스 제2공화정의 탄생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또 부자가 되라는 말에 공적 권위를 부여한 사람이라는 설도 있는데, 비록 자신은 가난하게 살고 죽었다 하나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던 프랑스에서 돈 벌기 광풍을 부추기며 부르주아지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부자 되기를 기독교인의 덕목으로까지 승격한 공로를 논할 때는 19세기 말 미국의 러셀 콘웰 목사를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콘웰은 템플대학의 설립자였으며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번역으로 읽을 수 있는 성공 지침서들의 저자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제작과 연출에 관여한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는 1920년대 금주법을 배경으로 범죄자들을 다루는데, 여기에 콘웰의 책 제목인 ‘다이아몬드의 땅’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 첫 장면에서 템플대학 학생들은 강당에 모여 눈을 반짝이며 축음기에서 나오는 콘웰의 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콘웰의 메시지는 “부자가 되는 것은 의무이고, 부자가 된 사람이 공동체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에게는 “돈을 버는 것이 곧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다. 강당의 학생들 가운데는 주인공의 조카도 있는데, 삼촌 너키는 그 시간에도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돈을 벌고 있다.

콘웰류의 성공 이데올로기는 여러 방식으로 변주되며 21세기까지도 이어지는데, 베트남계 미국 작가 오션 브엉의 자전적 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김목인 역)는 그것이 뒤틀린 방식으로 수용되는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농장에서 일하다 만난 백인 노동자 트레버를 도로변 이동식 주택으로 찾아가고, 그곳에서 이 젊은 황인과 백인 동성 연인은 흑인 래퍼 50센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몸을 흔든다. 이들이 듣는 앨범은 〈겟 리치 오어 다이 트라인>(Get Rich or Die Tryin’). 어떻게든 부자가 되라는 뜻이겠지만, 이 경우에는 마약과 총격에 얽혀 진짜 죽는 걸 가리킬 수 있기에 “부자가 되라, 아니면 되려고 애쓰다 죽어라”로 말 그대로 새겨봐도 괜찮을 듯하다. 브엉이 책에서 이 앨범 가운데 고른 노래 또한 아주 많은 사람이 내가 죽기를 바란다는 제목이며, 실제로 총소리가 들리면서 죽고 죽이는 내용이 나온다, 부자가 되려고.

이 앨범은 “무수히 지나가던 차와 아파트의 열린 창에서” 흘러나와 그가 살던 동네에서 “일종의 국가처럼” 메아리쳤다고 하는데, 실제로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이 강렬한 훅에 실린 묘하게 처절한 가사를 따라가며 몸을 흔들었다. 그 덕분에 50센트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큰돈을 벌었겠지만, 몸을 흔든 대다수는 죽으면 죽었지 부자는 되기 힘든 사람들이었고 스스로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 앨범이 대박 나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는 완전히 다른 리듬에 실린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광고에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사태의 여파 속에서 그 허황한 축원에 위로를 느낀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냐만 그 말 뒤에 이어지는 “아니면…”이라는 암묵적 위협에는 다수가 공포를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얼마 후 “국민성공시대”라는 신기루에 내 한 표를 던져보기도 했을 것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으게 만드는 이런 마음의 위축이 지금은 해소되었을까? 아니면 코로나로 더욱 오그라들었을까? 지금은 코로나 빙하에 덮여 잘 안 보이지만 그것이 녹으면 깊게 팬 상처들 사이에서 다시 그 노래가 메아리치는 것은 아닐까? “부자가 되라,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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