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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위안부 문제, 이제 법원이 답할 차례다 / 양성우

등록 2020-12-06 15:44수정 2020-12-07 02:41

양성우 ㅣ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의 1심 선고가 곧 내려진다. 국제법을 위반하면서까지 3년간 소장 송달을 거부했던 일본 정부는 작년 11월 첫 재판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국가면제를 이유로 이번 소송이 각하돼야 한다는 입장만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국가면제는 ‘국내 법원이 외국 국가에 대한 소송에 관하여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 원칙이다. 주권을 지닌 국가 간에는 서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고 외교 등의 방식으로 해결하라는 취지로, 이 원칙이 적용되면 법원은 심리하지 않고 각하 판결을 할 수 있다. 일본 측은 이 원칙을 믿고 지금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해온 것이다.

국가면제는 만고불변의 원칙일까? 그렇지 않다. 국가면제에 관한 통일되고 일관된 국가 관행은 없으며, 대다수 국가 역시 19세기 말부터 상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하는 등 각국에 따라 국가면제 개념이 상대적으로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탈리아와 그리스 대법원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자국민에게 행한 불법행위가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독일이 주장하는 국가면제를 부인하고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적어도 반인도적·반인권적 범죄에서는 가해자가 국가면제 뒤에 숨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독일은 이에 불복해 2008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012년 이탈리아 사법부가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시하여 이탈리아 대법원과는 다른 판단을 했다. 국가면제의 적용을 인정한 것이다. 이후 이탈리아 정부와 법원은 국제사법재판소 결정을 받아들여 더 이상 관련 소송을 심리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극적인 반전이 있었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2014년 재판관 12명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국가면제를 이유로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의 재판청구권을 부인한 것은 위헌’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서까지 국가면제를 확대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보호’ 및 ‘재판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이탈리아 헌법과 충돌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탈리아 헌재 결정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일 우리 법원이 국가면제를 받아들여 원고들의 재판권 행사를 부인하고 소를 각하한다면, ‘위안부’ 피해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배상청구권을 실현하기 위해 최후 수단으로 선택한 이 소송은 끝내 일본국에 대해 아무런 법적 책임도 묻지 못한 채 종결하게 된다. 이는 우리 헌법 질서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우리 헌법 역시 ‘인간의 존엄과 가치’(헌법 제10조) 및 ‘재판청구권’(헌법 제27조)을 보장하고 있어, 무조건적 국가면제의 적용은 우리 헌법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형식적인 법 논리를 앞세워 우리 헌법 질서에 반하는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현재 16명이고, 평균 연령은 93세에 이른다.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은 현재의 외교적, 정치적 상황 속에서 국제 연대 및 국가기구를 통한 해결을 위해 노력했고, 가해국인 일본 법원에서도 소송 등의 노력을 다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마지막 변론기일에 나와 “이제 믿을 곳이 오로지 법밖에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 법에 절박한 마음으로 호소한다”며 이번 재판이 일본에 법적 책임을 묻고 피해 회복을 위한 마지막 수단임을 강조했다.

20세기 최대 인권침해 범죄로 꼽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가해국인 일본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제는 사실의 존재마저 부정하고 있다. 우리 법원은 이 재판을 통해 국제질서 속에서 외면됐던 한 인간으로서의 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제 법원이 그 호소에 답할 차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왼쪽 셋째) 할머니가 지난해 11월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본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첫 변론기일을 맞는 피해자 및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왼쪽 셋째) 할머니가 지난해 11월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본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첫 변론기일을 맞는 피해자 및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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