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모두 어디 갔어요? / 이주은

등록 2020-12-11 15:55수정 2020-12-12 02:34

윌리엄 파월 프리스, <1881년 왕립미술원의 관람>, 1883, 캔버스에 유채, 60×114㎝, 왕립미술원, 런던
윌리엄 파월 프리스, <1881년 왕립미술원의 관람>, 1883, 캔버스에 유채, 60×114㎝, 왕립미술원, 런던

이주은 l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1980년 12월8일, 전쟁이 없는 세상을 꿈꾸던 비틀스의 존 레넌이 난데없이 누군가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떴다. 지난 화요일은 레넌이 사망한 지 40년이 된 기일이었고, 뉴욕의 센트럴파크 스트로베리필즈 기념비 앞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매진’을 부르는 추모객의 발길로 부산했다고 한다. 그날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엠프티 가든’(Empty Garden)을 들으며 회상에 잠겼다. ‘엠프티 가든’은 1982년에 엘턴 존이 레넌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가 가버린 빈자리가 얼마나 쓸쓸한지 노래한 곡이다.

텅 빈 정원에 서서 ‘모두 어디 갔어요?’ 하고 외치고 싶은 느낌은 올해 누구라도 경험했을 것이다. 특히 사람들로 가득했었던 장소라면 말이다. 문화가 있는 장소는 늘 사람이 모이기를 기대하며 사람을 끌어모으는 기획을 해왔다. 얼마나 많이 다녀갔는가 하는 관객의 수치가 곧 작품의 성공 여부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이는 현상, 즉 군중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은 19세기 중반이었다. 그 무렵에 그려진 그림 속에는 군중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군중 이미지가 유행한 이유는 당시 도시에 인구가 집중하면서 삶의 이모저모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그 변화를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여겼다. 영국 왕립미술원 소속 화가였던 윌리엄 파월 프리스(1819~1909)가 그린 <1881년 왕립미술원의 관람>이 한 예이다.

여럿이 모여 있는 복잡한 도시 곳곳의 모습은 군중사회의 특징이다. 프리스의 그림에서도 전시장에 빽빽이 붙어 선 채 그림 관람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은 도록을 확인하기도 하고 돋보기로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감상한다. 과거에는 소수만 누릴 수 있던 미술품 관람의 기회가 이제는 모두에게 열렸다는 것을 말해주는 그림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공간에서 대규모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장면을 영국 사람들이 처음 본 것은 1851년 런던 박람회였다. 6개월에 채 못 미치는 박람회 기간 동안 6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다. 박람회도 세계 최초였지만, 영국 역사상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모인 것도 최초였다. 개인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군집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농촌, 소도시, 또는 대도시의 한 구역에서 고정된 장소를 점유하면서 자신과 관련 없는 일에는 관계하지 않으면서 서로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라는 무대의 안쪽에 가려져 있던 다수의 사람들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문화적 장소들이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 것이다.

사전에 박람회 개최를 반대하던 쪽에서는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이면 안 되는 이유를 댔다. 그중 하나는 성병이나 전염병이 돌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고, 또 하나는 시위의 불씨가 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다행히 별 탈 없이 런던 박람회는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계층 간 갈등이 심각하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놀랍게도 ‘구경’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달성하고 돌아갔다.

박람회를 위시로 가시화된 군집이라는 큰 덩어리의 사람들은 20세기 대중사회의 출현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제 이 대중사회는 또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 물리적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군중문화 대신, 이를 대체하여 ‘따로 또 같이’ 즐기는 개체문화의 시대가 열리려 하는 것이다. “밖으로 나와 놀 수 없나요?”라는 ‘엠프티 가든’의 후렴구처럼, 문화적 장소들은 한때는 북적대던 기억을 품은 채 지금은 텅 비어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나는 시골 ‘보따리상 의사’…평범한 의사가 여기까지 오려면 1.

나는 시골 ‘보따리상 의사’…평범한 의사가 여기까지 오려면

5평 토굴의 스님 “편하다, 불편 오래되니 ‘불’ 자가 떨어져 버렸다” 2.

5평 토굴의 스님 “편하다, 불편 오래되니 ‘불’ 자가 떨어져 버렸다”

우리집 냉장고의 반정부 양배추 [아침햇발] 3.

우리집 냉장고의 반정부 양배추 [아침햇발]

총선 참패에도 ‘도로 친윤’ 원내대표설, 반성 없는 여권 [사설] 4.

총선 참패에도 ‘도로 친윤’ 원내대표설, 반성 없는 여권 [사설]

체르노빌 원전 폭발…출동 소방관의 비극 5.

체르노빌 원전 폭발…출동 소방관의 비극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