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혁 ㅣ 전국부장
21대 첫 정기국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지난 9일. 야당의 반발 속에 이른바 ‘입법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주요 법안들이 잇따라 가결돼 국회를 통과했다. 감사위원 선출에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 등 ‘공정경제 3법’, 검·경 수사권 조정의 경찰 쪽 후속조치를 담은 경찰법 개정안,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 관련 3법 등이 그것이다. 이들 법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한국 사회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뒷받침할 지방자치법 개정안도 이날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 통과 소식에 특례시 규정이 어떻게 됐는지부터 살폈다.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이하 특례시라고 한다)’(제198조 ②항의1).
경기 수원(119만명), 고양(108만명), 용인(107만명)과 경남 창원(104만명)은 앞으로 특례시가 된다는 얘기였다.
사실 ‘특례시’ 논의는 이들 4개 시 외에 다른 광역·기초단체들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봤던 사안이다.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렇다.
20대 국회 시절이던 올해 2월, 염태영 수원시장과 이재준 고양시장, 백군기 용인시장, 허성무 창원시장이 국회를 찾았다. 이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만난 이들은 ‘특례시 지정을 포함한 지방자치법 개정안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며 ‘공동 촉구문’을 전달했다. 행정안전부는 5개월 뒤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내놓으며 “인구 100만 이상 및 50만명 이상 대도시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도시에 ‘특례시’ 명칭을 부여”해 “그 위상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인구 50만명 이상 도시들도 덩달아 특례시 요구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에 나머지 시와 군들이 들고일어났다. 지난 10월 경기도 16개 시·군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이 ‘특례시 논의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했다가 당의 만류로 보류한 게 대표적이다. 충북권 9곳 시장·군수들도 비슷한 시기 기자회견을 열어 “특례시에 취득세·등록세·교부금 증액 등 재정특례가 이뤄지면 특례시와 작은 시·군들 사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광역단체가 걷던 세목 가운데 일부가 특례시에 넘어가면, 이들 시·군이 도에서 받는 교부금이 줄어들게 된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시도지사협의회(회장 송하진 전북도지사)도 10월 청와대 행사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방자치법 개정안에서 특례시 조항 삭제·분리를 공식 요청했다.
이런 반대를 뚫고 살아남은 특례시 규정이 신기해(?) 법안 논의 과정을 꼼꼼히 살펴봤다.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들이 자꾸 광역시로 해달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기 어려우니” “단순히 명칭만 특례시를 부여하는 취지에서 개정안을 마련했다”(이재영 행정안전부 차관)는 정부 쪽 제안설명을 읽으면서였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도 지난 2일 ‘특례시에 제공되는 특례가 다른 자치단체의 재원을 감소시키거나 권한을 침해하지는 못하도록 한다’는 부대조건을 달아 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실질은 없고 이름만 남은 ‘껍데기 특례시’였던 셈이다.
사실 4개 시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대전, 울산 등은 인구 100만명 돌파와 함께 광역시로 지정됐다.) 하지만 넓게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도시가 커질수록 자율권이 더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행정체계 개편은 전 국토적 차원에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뭔지 확인한 뒤 진행하는 게 맞기”(마강래 중앙대 교수) 때문이다. 인구 100만명 도시에 필요한 자율성과 특례가, 전 국가적 과제랄 수 있는 분권이나 균형발전, 지방소멸 위기대처보다 앞서는 가치일 수야 있겠는가.
개정안의 다른 조항들을 살펴보니, ‘32년 만의 전면개정안’답게 눈에 띄는 항목이 여럿이었다. 주민감사 청구인 수를 500명 이내에서 300명 이내로 낮췄고, 지역 여건에 따라 주민투표로 단체장 선임 방법을 별도로 정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지방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지자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중앙지방협력회의가 설치된다니, 100만명 이상 도시들에 더욱 필요한 제도들 아닐까. 그러니 ‘껍데기 특례시’에 너무 슬퍼할 일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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