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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코로나 입시와 투명가방끈 / 황보연

등록 2020-12-16 18:53수정 2020-12-17 09:35

황보연ㅣ사회정책부장

해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르는 날이 되면, 서울 도심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단체가 있다.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입시 거부를 선언한 4명의 학생은 “코로나 시대에도 입시로부터의 해방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고3은 좁은 공간에서 밀집된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존재가 되어야 했다. 재난은 학생들을 입시와 학벌의 피라미드 아래에서 그저 공부만 하는 존재 정도로 여기거나 그런 존재가 되길 강요하는 한국 사회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이었다”며 분노했다.

지난 3일 초유의 ‘코로나 수능’에 온통 여론의 관심이 쏠린 사이, 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교육 분야 취재를 담당하는 데스크인 나 역시도 무덤덤했다. 입시 거부 선언이 올해로 10년째 반복되는 사안이기도 했지만,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 구조적 문제는 편집국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이런 태도를 질책이라도 하듯, 우연히 접한 어느 활동가의 글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응원보다 사과가 먼저’(공현 투명가방끈 활동가)라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이나 고위 정치인, 교육감 등이 각기 수능 시험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쏟아냈지만, 서열과 차별을 만드는 입시제도에 사과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취지였다. ‘누구나 한번은 통과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의 터널’이라는 말을 우리 사회는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묻는다. 학령인구가 차츰 줄고 있으니 입시경쟁도 덜한 것 아니냐고. 물론 산술적으로는 그렇다. 2021학년도 대학 정원은 55만명(전문대 포함) 정도인데, 올해 수능 응시자는 약 42만6천명(결시자 제외)이다. 이미 몇해 전 예고된 것처럼, 대학 정원이 지원자를 역전하는 현상이 올해 본격화한 것이다.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없어질 것’이라는 위기감도 매년 고조된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선 입시경쟁이 외려 심화된 것으로 체감한다. 일단 과거와 다르게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고 전국 모든 수험생의 목표가 ‘인서울’(서울지역 소재 대학)로 좁혀지고 있다. ‘대학 간판’이 여전히 고용시장에서의 신분을 결정짓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서울에 있는 대학들의 정원은 수도권 집중화 우려로 거의 늘지 않았다. 서울의 주요 20개 대학 신입생 규모는 6만명 안팎에 그친다. 채효정(정치학자)은 <능력주의와 불평등>에서 “대학 졸업장의 사회적 가치는 떨어졌지만 그것이 경쟁을 둔화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체 대학 정원이 늘어나도 명문대는 늘지 않았기에 학벌 경쟁률은 더 높아졌고, 경쟁률이 높아질수록 가치도 높아지는 착시 효과가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수시 6번과 정시 3번의 기회를 주는 복잡한 입시제도는 학벌 피라미드의 맨 윗단으로 가려는 경쟁을 더 부추긴다. 대부분은 학종과 수능, 논술을 동시에 준비하면서 내신등급을 높이느라, 학생부에 넣을 스펙을 채우느라, 수능 공부를 하느라 쉴 틈이 없다. “지원 희망은 상층 대학부터 시작되어 그 탈락자들이 상위권에서 하위권으로 차례로 배치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체 지원자가 많아지면 꼭대기의 경쟁률은 더 치솟는”(채효정) 구조다. 3~4개씩의 학교 이름을 따서 만든 조어들이 대학 서열처럼 끝없이 줄 세워지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엔(n)수생’도 늘어난다. 서울 대치동의 한 재수종합학원에서 올해 재수생은 전체의 40%뿐이었다. 나머지는 삼수, 사수 혹은 삼반수(대학을 다니면서 삼수를 하는 것), 사반수 등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코로나19 유행이 닥친 뒤, 교육당국이 가장 힘을 쏟은 일은 초유의 ‘방역 수능’을 안전하게 치르는 일이었다. 지난 3월 당초보다 수능일을 2주 정도 미루기로 결정한 뒤 내내 그랬다. 빈번하게 학생들의 등교가 중지되고 원격수업으로 인한 학력격차 우려가 커지는 와중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교육당국의 관심은 ‘학교 방역’에만 갇히지 않았으면 싶다. 감염병 재난으로 사회 모든 분야의 일상이 재편되는 시점인데, 최소한의 균열을 내어볼 여지는 충분하지 않은가.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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