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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민주화 시대의 ‘방종’ / 김삼웅

등록 2020-12-17 15:36수정 2020-12-18 09:56

김삼웅ㅣ전 독립기념관장

1세기 전 이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를 선포한 이래 ‘민주화’는 국가의 정체성이 되었다. 해방 후 국민은 3년의 전쟁과 40년의 백색·군사독재, 9년의 그 아류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국민의 자유를 짓밟은 이승만의 자유당, 민주공화제를 유린한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민주와 정의라는 고귀한 용어마저 회칠한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그리고 그 후계자들의 반민주 정권에 국민은 피를 흘려 싸웠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은 대의기관인 국회가 아닌 국민(시민)의 힘으로 해냈다. 4·19혁명, 반유신운동,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승만·박정희·전두환·박근혜를 몰아내고 노태우와 이명박을 감옥에 보냈다.

우리는 국민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 국제사회가 선망하는 민주주의 제도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내부를 살펴보면 이제 겨우 ‘낮은 단계의 민주화’일 뿐이다. 도처에 ‘방종’이 활개 친다. 일본 강점 유산과 군사독재의 시혜를 받은 한국형 브라만 계급이 기득권 동맹체제를 형성하면서 민주화의 걸림돌 정도가 아니라 저해 역할을 하고 있다.

총독부에 탯줄을 대고 군사독재와 야합으로 급성장한 족벌언론, “털어서 명성 얻고 덮어서 돈을 번”(어느 변호사의 표현) 그리고 “거악을 척결하고자 들어갔는데 그곳이 바로 거악이더라”는 (어느 검사의) 개탄이 담긴 검찰, 독재정권의 온갖 특혜로 공룡화된 일부 재벌 기업, 본회퍼를 욕보이는 사이비 목회자로 상징되는 일부 대형 교회….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가치집단의 이익집단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의 힘은 막강하다.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오고 혁명의 열기가 보이면 움츠렸다가 개혁의 단계가 되면 어김없이 동일체가 되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준다. 그리고 개혁을 저지·좌초시켰다.

민주정부에는 건건이 조롱하고 모욕 주고 저주·악담을 퍼붓고 왜곡하고, 독재정권이나 사이비 민간정부는 덮어주고 아양 떨고 선도한다. 국회·검찰·사법·재계·학계·언론·종교계에 깊고 넓게 똬리를 틀고 있어 개혁의 칼을 대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 하나에도 저토록 힘겨워하는 것은 한국형 브라만 계급의 집단저항 때문이다. “무장한 불의는 가장 다루기 어렵다.”(아리스토텔레스)

어느 평자의 말이다. “한국 현대사는 역사가 아닌 정신분석학의 영역”이라고, 친일 음악인을 청산하자는 광복회장의 발언을 용공으로 몰고, 법무장관의 지휘를 받는 검찰총장이 부하가 아니라고 저항하고, 권력남용·뇌물수수·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20년과 17년, 벌금 180억원과 130억원을 각각 선고받은 박근혜·이명박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면하라는 아우성은 가히 ‘정신분석학’의 영역이다.

국경없는기자회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를 보면 올해 한국의 순위는 180개국 중 42위인데, 한국 언론 신뢰도는 40개국 중 40위(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리포트 2020')다. 공정한 언론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고, 더욱 분통 터지는 일은 공정하지 않은 언론(사)들의 광고 수주가 가장 높다는 점이다. 부패한 재벌·기업의 협찬성 광고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입법·사법·행정·정치·경제 등 포괄적인 설문조사를 통해 분석한 국가별 부패인식조사 결과 전 세계 180개국 중에서 한국은 올해 39위, 오이시디(OECD) 회원국 중에서는 최하위권이다. 민생은 어려운데 힘센 자들의 부패는 사그라지지 않고 검찰과 감사원은 내로남불이다.

민주화에 역행했던 세력이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방종’에 빠져 개혁을 해코지하고 있다. 공수처법 개정안이 어렵사리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나 출범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적지 않다. 기득권 동맹의 ‘방종’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촛불혁명이 민주화운동의 정점이지만 종점은 아니다. 민주화 시대의 방종은 반민주 행위 바로 그것이고 국정농단 세력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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